우르비노의 비너스
Venus of Urbino
- 분류
- Painting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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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르비노의 비너스》(이탈리아어: Venere di Urbino, 영어: Venus of Urbino)는 이탈리아 화가 티치아노 베첼리오의 유화로, 호화로운 르네상스 양식의 궁전을 배경으로 소파 또는 침대에 누워 있는 벌거벗은 젊은 여인을 묘사하며, 전통적으로 이 여인을 여신 베니스로 여긴다. 이 그림에 대한 작업은 1532년 또는 1534년부터 시작된 것으로 보이며, 1534년에 완성되었을 수도 있지만 1538년이 되어서야 판매되었다. 누워있는 비너스로도 알려져 있으며 현재 피렌체의 우피치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다.
여인은 보는 사람을 똑바로 바라봐요. 민망함도, 시선을 피하려는 기색도 없이, 오른손엔 장미 한 다발을 쥔 채로요. 16세기 베네치아 화가 티치아노가 그린 '우르비노의 비너스'는 그렇게 관람자에게 정면으로 다가옵니다.
이 그림의 자세는 조르조네의 '잠자는 비너스'에서 비롯되었어요. 하지만 조르조네의 비너스가 눈을 감고 자연 속에 잠들어 있다면, 티치아노는 그 여인을 실내로 데려와 눈을 뜨게 했습니다. 더 이상 신화 속 존재가 아니라, 이쪽을 바라보는 살아 있는 인물로 바꾼 셈이에요.
그림을 주문하거나 구입한 인물이 누구인지에 대한 기록이 남아 있어요. 우르비노 공국의 상속자 귀도발도 2세 델라 로베레는 1538년 초 티치아노의 작업실에 초상화를 그리러 왔다가 이 그림을 발견하고 극구 사들였습니다. 그가 주고받은 편지에는 '나체 여인'이라고만 적혀 있고, 다른 사람에게 팔릴까 몹시 걱정하는 마음이 담겨 있어요.
1880년, 미국 작가 마크 트웨인은 여행기 『해외 유랑기』에서 이 그림을 '세상이 소장한 그림 가운데 가장 더럽고, 가장 추잡하고, 가장 외설적인 그림'이라 불렀어요. 동시에 그는 '공공 미술관 말고는 걸릴 곳이 없다'고 덧붙이며, 그림엔 관대하고 문학엔 엄격한 시대의 이중성을 비꼬았습니다. 비난인지 찬사인지 묘하게 경계를 흐리는 문장이었죠.
그 여인의 시선은 지금도 달라지지 않았어요. 피렌체 우피치 미술관 앞에 서면, 그림 속 비너스는 여전히 이쪽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 마주하는 시선 — 침대에 비스듬히 누운 여인이 고개를 베개에 기댄 채 우리를 부드럽게 바라봐요. 부끄러움 없는 그 눈빛이 이 자세를 신화에서 현실로 끌어내려요.
- 화면을 가르는 어둠 — 여인 뒤로 드리운 어두운 휘장과 기둥이 화면을 세로로 갈라요. 앞쪽 누운 공간과 뒤쪽 밝은 방이 나뉘며 그림에 깊이가 생겨요.
- 발치의 개 — 여인의 발끝에 작은 개가 동그랗게 웅크려 잠들어 있어요. 오래전부터 정절을 뜻하던 이 작은 동물을 놓치지 마세요.
- 뒤쪽의 일상 — 오른쪽 밝은 방에서 두 하녀가 큰 궤를 뒤지고 있어요. 무릎 꿇은 하녀와 선 여인의 평범한 동작이, 이곳이 신화의 영역이 아닌 실제 침실임을 일러 줘요.
- 따뜻한 색 — 여인의 살결, 붉은 침구, 흰 시트가 어우러지는 색의 조화를 천천히 음미하세요. 손에 쥔 작은 장미 꽃다발이 그 따뜻함에 한 점을 더해요.
같은 자세인데, 이 여인의 분위기는 올랭피아의 도발과 어떻게 다르게 느껴지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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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너스라는 이름의 여인
화려한 르네상스 궁전을 배경으로, 한 젊은 여인이 침대 위에 비스듬히 누워 우리를 똑바로 바라봅니다. 전통적으로 '비너스'라 불리지만, 사실 이 그림에는 신화를 가리키는 표지가 거의 없어요. 여신의 상징도, 알레고리도 없이 그저 아름다운 여인이 실내에 누워 있을 뿐이죠. 그래서 학자들의 해석은 둘로 갈려요. 한쪽은 그녀를 당대 베네치아의 이름난 고급 매춘부로 보고, 다른 한쪽은 결혼을 기념하는 그림으로 읽어요. 티치아노 자신도 이 그림을 그저 "벌거벗은 여인"이라 불렀다고 하니, 어쩌면 신화는 처음부터 핑계였는지도 몰라요. 이 자세는 조르조네가 그린 《잠자는 비너스》에서 비롯됐지만, 티치아노는 비너스를 야외의 잠에서 깨워 실내로 데려오고, 눈을 떠 관람객과 시선을 맞추게 했어요.
결혼의 암호들
이 그림을 결혼 그림으로 읽는 이들은 화면 곳곳의 디테일을 근거로 들어요. 여인이 오른손에 쥔 장미 꽃다발, 발치에 웅크린 작은 개 — 개는 오래전부터 정절의 상징이었죠. 무엇보다 오른쪽 배경에서 두 하녀가 '카소네'라 불리는 큰 궤를 뒤지는 장면이 있는데, 이 궤에는 신부가 혼수로 받은 옷가지를 넣어 두곤 했어요. 그래서 이 그림이 한 귀족 여성의 침실, 그것도 결혼이라는 사건의 한복판을 그린 것이라는 해석이 나와요. 실제로 이 그림을 손에 넣은 사람은 우르비노 공작의 아들 귀도발도 델라 로베레였어요. 그는 1538년 자기 초상을 그리러 티치아노의 작업실에 왔다가 이 "벌거벗은 여인"에 반해, 남이 채갈까 안달하며 기어이 사들였죠. 훗날 그가 우르비노 공국을 물려받으면서 그림에 '우르비노의 비너스'라는 이름이 붙었어요.
올랭피아의 어머니
이 그림은 미술사에서 길고 긴 후예들을 낳았어요. 가장 유명한 자식이 에두아르 마네의 《올랭피아》예요. 마네는 거의 똑같은 자세를 빌려 오되, 신화를 벗기고 당대의 매춘부를 앉혀 1865년 파리를 충격에 빠뜨렸죠. 두 그림을 나란히 놓으면 미술이 어떻게 과거를 인용하며 새로워지는지가 한눈에 보여요. 한편 이 그림이 늘 찬사만 받은 건 아니에요. 미국 작가 마크 트웨인은 1880년 여행기에서 이 작품을 두고 "세상이 가진 가장 추잡하고 외설적인 그림"이라며 짐짓 분개하기도 했는데, 사실은 회화에는 허용되던 표현이 문학에는 금기였던 당대의 모순을 꼬집은 농담에 가까웠어요. 그만큼 이 누드가 오래도록 사람들의 마음을 흔들었다는 증거죠. 이 그림은 1633년 메디치 가문의 컬렉션에 들어갔고, 1736년부터 줄곧 우피치 미술관에 자리 잡고 있어요.
관람 포인트
먼저 여인의 시선을 마주해 보세요. 부끄러움 없이 관람객을 바라보는 그 눈이, 이 자세를 신화에서 현실로 끌어내린 장본인이에요. 그다음 화면을 가르는 어두운 휘장에 주목하세요 — 그 휘장이 누운 여인의 앞쪽 공간과 하녀들이 있는 뒤쪽 공간을 나누며 그림에 깊이를 만들어요. 발치에 잠든 작은 개와, 오른쪽 배경에서 궤를 뒤지는 하녀들의 일상적인 동작도 찾아보시고요. 마지막으로 티치아노 특유의 따뜻하고 풍부한 색, 특히 여인의 살결과 붉은 침구, 흰 시트가 어우러지는 색의 조화를 천천히 음미해 보세요.

조르조네가 페스트로 죽자 티치아노가 그 미완성 비너스를 완성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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