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랭피아
Olymp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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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랭피아》(Olympia)는 에두아르 마네가 1863년에 그린 유화로, 침대에 누워있는 벌거벗은 백인 여성("올랭피아")과 그녀를 시중드는 흑인 하녀를 묘사하고 있다. 1890년 프랑스 정부는 클로드 모네가 조직한 대중 모금 운동을 통해 이 그림을 구입했다. 이 그림은 현재 파리의 오르세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다.
1865년 파리 살롱, 작품 하나가 전시되자마자 군중이 몰려들었어요. 그런데 탄성 대신 야유가 터져 나왔어요. 누드화는 늘 있어 왔는데, 이 그림 속 여자는 달랐어요. 신화의 여신도 아니고, 눈을 내리깐 오달리스크도 아니에요. 19세기 파리의 실제 여인이, 침대에 비스듬히 기댄 채 관객을 정면으로 응시하고 있어요.
그녀의 이름은 '올랭피아' — 당시 파리에서 매춘부에게 흔히 붙던 이름이에요. 목의 검은 리본, 귀의 진주 귀고리, 머리의 난초꽃. 하나하나가 그녀의 직업을 가리키는 기호였고, 관객은 그걸 알아봤어요. 티치아노의 '우르비노의 비너스'에서 영감을 받은 자세지만, 마네는 정숙한 시선 대신 도발적인 눈빛을 선택했어요. 왼손은 부드럽게 몸을 가리는 게 아니라, 접근을 막듯이 위치해 있어요.
한 신문은 이 그림이 훼손될까 봐 경비원이 붙었다고 전했어요. 비평가 앙토냉 프루스트는 '캔버스가 파괴되지 않은 건 순전히 행정 조치 덕분'이라고 회고했고요. 그러나 작가 에밀 졸라는 달랐어요. '다른 화가들이 비너스를 그릴 때 자연을 고쳐 거짓말을 한다. 마네는 왜 거짓말하냐고 물었다'고 썼어요.
1890년 클로드 모네가 모금 운동을 벌여 이 그림을 프랑스를 위해 매입했어요. 그림 자체가 세상을 떠난 친구 마네를 기리는 방법이기도 했어요. 지금 이 그림은 오르세 미술관에 있어요. 그녀의 시선은 여전히 흔들림이 없어요.
- 시선 — 베개에 기대 누운 여인이 고개를 살짝 들어 우리를 똑바로 마주봐요. 건네받는 꽃다발도, 하녀도 아닌 곧장 화면 밖을 향한 그 눈이 이 그림의 심장이에요.
- 왼손 — 허벅지 위에 단단히 누른 그 손에 주목하세요. 가리는 듯하면서 시선은 조금도 굽히지 않아, 부드러움보다 단호함이 먼저 읽혀요.
- 작은 표지들 — 목을 조인 검은 리본, 머리에 꽂은 꽃, 손목의 금팔찌, 한쪽만 걸친 슬리퍼 — 신화의 여신이 아니라 동시대 한 여인임을 가리키는 작은 단서들이에요.
- 오른쪽 그늘 — 어두운 배경에서 분홍 옷의 하녀가 종이에 싼 꽃다발을 내미는데, 여인은 거들떠보지도 않죠. 침대 끝에는 등을 곧추세운 검은 고양이가 어둠에 거의 묻혀 있어요.
- 살결 — 중간 그림자를 지운 평평한 조명 탓에 몸이 배경에서 도드라져요. 둥글게 깎아내는 대신 빛으로 납작하게 펼친 이 처리가 당시엔 낯설고 도발적이었어요.
이 여인의 눈빛, 당신을 맞이하는 걸까요 아니면 막아서는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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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발하는 시선
침대에 비스듬히 기댄 여인이 관람객을 똑바로 바라봅니다. 당돌하고 거침없는 그 시선이 1865년 파리 살롱을 발칵 뒤집어 놓았어요. 모델은 빅토린 뫼랑이라는 열아홉 살 여성이었는데, 마네는 그녀를 신화 속 여신이 아니라 동시대 파리의 한 여인으로 그렸어요. '올랭피아'라는 이름부터가 1860년대 파리에서 고급 매춘부를 떠올리게 하는 이름이었고, 머리에 꽂은 난초, 진주 귀고리, 팔찌, 비스듬히 깔린 동양풍 숄, 목을 조인 검은 리본까지 — 모든 디테일이 그 읽힘을 향해 있었어요. 누드 자체는 새로울 게 없었어요. 정작 사람들을 분노케 한 건, 그녀가 신화 속 인물이 아니라 부끄러움 없이 자신을 드러내는 동시대의 실제 여성으로 그려졌다는 점이었죠. 당시 기준으로는 그 마른 몸매마저 외설스럽다고 여겨졌어요.
티치아노를 뒤집다
마네는 티치아노의 《우르비노의 비너스》를 노골적으로 참조하면서, 그 안의 상징을 하나하나 뒤집었어요. 티치아노의 비너스가 왼손으로 부드럽게 유혹하는 자세라면, 올랭피아의 왼손은 단호하게 몸을 가로막아요 — 대가를 치러야 열리는 문처럼요. 충실함을 뜻하던 발치의 강아지는 밤의 문란함을 상징하는 검은 고양이로 바뀌었고, 결혼과 정절을 뜻하던 배경의 화분 속 도금양은 값싼 종이에 싸인, 곧 시들어 버려질 꽃다발로 대체됐어요. 흑인 하녀 로르가 건네는 그 꽃다발을, 올랭피아는 거들떠보지도 않죠. 화법 또한 도발이었어요. 넓고 빠른 붓질, 중간 톤을 지워 버린 강한 조명, 얕은 깊이 — 같은 해 카바넬이 그린 매끈한 이상적 누드와는 정반대였어요.
스캔들에서 국보로
보수적인 비평가들은 이 그림을 '부도덕'하고 '천박'하다고 비난했고, 한 기자는 "그림이 파괴되지 않은 건 오직 당국이 취한 조치 덕분"이라고 회고했을 정도예요. 그런 와중에 훗날 대문호가 된 에밀 졸라는 마네의 정직함을 옹호했어요. "다른 화가들이 비너스를 그릴 때 자연을 고쳐 거짓말을 한다면, 마네는 왜 거짓말을 하느냐 자문하고 진실을 택했다"면서요. 그리고 반전이 일어납니다. 마네가 세상을 떠난 뒤 그의 미망인이 그림을 미국에 팔려 한다는 소식을 들은 클로드 모네가, 1년에 걸쳐 모금 운동을 벌여 2만 프랑을 모았어요. 드가, 르누아르, 피사로, 로댕, 말라르메까지 약 100명이 돈을 보탰죠. 그렇게 1890년 그림은 프랑스의 소유가 되었고, 1907년 클레망소 총리의 명으로 루브르에, 1986년에는 마침내 오르세 미술관에 자리 잡았어요. 한편 모델 빅토린 뫼랑은 훗날 어엿한 화가가 되어 살롱에 작품을 여러 차례 전시했어요. 그림 속 그녀가 우리를 응시하던 그 당당함이, 우연이 아니었던 셈이죠.
관람 포인트
먼저 올랭피아의 왼손에 주목해 보세요. 가리는 듯하면서도 가리지 않는 그 손이 이 그림의 핵심입니다. 그다음 발치의 검은 고양이를 찾아보세요 — 등을 곧추세운 그 자세가 당시엔 노골적인 농담이었어요. 오랫동안 '배경'으로만 여겨졌던 하녀 로르의 표정과, 그녀가 든 꽃다발에도 눈길을 주시고요. 마지막으로 한 걸음 물러나 빛을 보면, 중간 그림자 없이 평면적으로 펼쳐진 살결이 얼마나 낯설고 당돌했는지 느껴질 거예요. 130센티미터가 넘는 이 큰 화면이 원래 역사화나 신화화에나 허락되던 크기였다는 사실도 함께 떠올려 보세요.

1863년 낙선전의 스캔들 — 나체보다 더 충격적인 건 그 직접적인 눈빛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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