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리 부는 소년
The Fi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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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리 부는 소년》(프랑스어: Le Fifre)은 프랑스의 화가 에두아르 마네의 1866년 작품이다. 프랑스 파리 오르세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다.
1865년, 마네는 스페인으로 여행을 떠나 프라도 미술관에서 벨라스케스의 그림들과 마주쳤어요. 그것은 그에게 일종의 계시 같은 경험이었습니다. 파리로 돌아온 이듬해, 그는 그 충격을 한 소년의 모습에 담았어요.
화면 속 소년은 나폴레옹 3세 근위대 군악대의 어린 피리 연주자예요. 지휘관 르조스네가 마네에게 보내준 이 소년은, 벨라스케스가 스페인 귀족을 그리듯 '스페인의 대귀족처럼' 대우받았다고 전해집니다. 마네는 그를 거의 아무것도 없는 회색빛 단색 배경 앞에 세워 놓았어요. 벨라스케스 궁정 초상화의 방식을 빌려와 뒤집은 구도였습니다.
배경이 없으니 공간감도 없어요. 소년이 얼마나 큰지, 얼마나 멀리 있는지 가늠할 수가 없습니다. 짙은 검은 재킷과 붉은 바지, 흰 띠가 두꺼운 물감 터치로 선명하게 도드라질 뿐이에요. 이 평평하고 단호한 그림 앞에서 1866년 살롱 심사위원들은 고개를 저었습니다.
낙선 소식에 분개한 이는 젊은 소설가 에밀 졸라였어요. 그는 신문 '레베느망'에 연이어 기사를 써 마네의 사실주의적 시각과 현대적 내용을 옹호했습니다. 마네 자신도 1867년 만국박람회장 가장자리에 자비로 전시관을 열어 이 그림을 포함한 자신의 작품들을 직접 선보였어요. 당시 언론은 그 특이한 붓질과 불가해한 공간 처리를 조롱했지만, 그 소년은 지금도 변함없이 그 자리에 서서 피리를 불고 있습니다.
- 텅 빈 바닥 — 회색 배경 어디에도 벽선이나 그림자가 없어, 소년이 어디에 발 딛고 섰는지 가늠되지 않아요. 깊이를 일부러 지운 화면이지요.
- 색의 노래 — 새카만 윗옷과 새빨간 바지, 흰 멜빵이 무채색 바탕 위에서 또렷이 도드라져요. 단 세 색만으로 화면이 살아나죠.
- 금빛 피리집 — 허리춤에 매달린 금빛 통이 빛을 받아 반짝여요. 검은 옷의 어둠 속에서 유일하게 광택이 도는 자리예요.
- 또렷한 윤곽 — 인물의 가장자리가 선으로 오려낸 듯 선명해, 마치 일본 판화처럼 형상이 화면 위에 납작하게 떠올라요.
- 무심한 눈 — 피리를 문 채 정면을 향한 얼굴이 어떤 표정도 짓지 않아요. 이름 없는 한 아이가 무심히 우리를 마주 보지요.
이 소년은 지금 우리 앞에 서 있는 걸까요, 아니면 그저 화폭 위에 떠 있는 하나의 형상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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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에서 가져온 충격
1865년, 에두아르 마네는 스페인으로 여행을 떠났어요. 그가 프라도 미술관에서 만난 디에고 벨라스케스의 그림은 그야말로 하나의 계시였지요. 이듬해 파리로 돌아온 마네는 곧장 새 작품에 매달렸어요. 바로 이 「피리 부는 소년」이랍니다. 그림 속 소년은 나폴레옹 3세 친위대 군악대에 속한 이름 없는 십 대 악사였어요. 르조느라는 지휘관이 마네에게 모델로 보내 준 아이였지요. 마네는 이 평범한 소년을, 벨라스케스가 스페인 궁정의 귀인을 그리듯 당당하게 화폭에 세웠답니다. 한 연구자의 말을 빌리면, 소년은 마치 '스페인의 대공'처럼 대접받은 셈이에요.
깊이를 지워 버린 배경
이 그림에서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건 텅 빈 배경이에요. 벨라스케스가 그랬듯, 마네는 화면의 깊이를 극도로 얕게 만들었어요. 수직면과 수평면이 거의 구분되지 않는, 단 하나의 중성적인 색면만이 소년을 감싸지요. 그 덕분에 우리는 소년이 실제로 얼마나 큰지, 어디에 서 있는지 가늠할 수가 없어요. 인물의 진짜 크기와 위치를, 그래서 그 중요성마저 일부러 흐려 놓은 거예요. 미술사가 페터 파이스트는 이 그림이 '뚜렷한 윤곽선으로, 배경 면 앞에 놓인 하나의 커다란 인물이 빚어내는 장식적 효과'를 보여 준다고 했지요.
그 말처럼 소년의 형태는 또렷한 윤곽선으로 화면 위에 도드라져요. 마네는 색을 두툼하게 쌓아 올리는 임파스토 기법으로, 새카만 윗옷과 구두, 새빨간 바지, 흰 멜빵과 각반을 선명하게 살려 냈어요. 한 연구자는 이 인물이 '단단하고, 매끄럽고, 살아 있는 듯' 서 있다고 했지요. 마치 일본 판화처럼 평평하고 장식적인 이 단순함이, 당시 사람들에겐 무척 낯설었답니다.
살롱이 거부한 그림
1866년, 「르 피프르」라는 제목으로 살롱에 출품된 이 그림은 심사위원단에게 가차 없이 거부당했어요. 그 결정에 분노한 젊은 작가 에밀 졸라는 신문 『레베느망』에 마네의 사실주의 양식과 현대적 소재를 옹호하는 글을 잇따라 실었지요. 마네는 굴하지 않고, 쿠르베가 그랬던 것처럼 1867년 만국박람회장 한편에 자비로 자기 작품만의 전시관을 세웠어요. 그 자리에 이 그림도 걸렸지만, 대중 언론은 낯선 붓질과 알 수 없는 공간 처리를 두고 조롱을 퍼부었답니다.
오랜 세월이 흘러, 이 작품은 마지막 개인 소장자였던 카몽도 백작의 유산에서 세금 대신 프랑스 정부에 넘겨졌어요. 1911년 국가 컬렉션에 들어온 뒤, 1914년부터 루브르에 걸렸고, 1983년 마네 서거 100주년 회고전을 거쳐, 1986년부터는 19세기 미술의 전당인 오르세 미술관에 자리 잡았지요. 흥미롭게도 소년의 얼굴에서는 마네가 즐겨 그린 모델 빅토린 뫼랑과 레옹 렌호프의 모습이 비친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답니다.
관람 포인트
먼저 배경을 오래 들여다보세요. 아무것도 없는 그 회색 면이 어디까지가 벽이고 어디부터가 바닥인지, 도무지 알 수 없지요? 마네는 일부러 그 경계를 지워 깊이를 없앴답니다. 그러니 소년이 어떤 공간에 서 있는지 가늠하려 애쓰지 말고, 그저 화면 위에 떠오른 하나의 형상으로 바라보세요. 다음으로 색의 대비를 즐겨 보세요. 새카만 윗옷과 새빨간 바지, 흰 멜빵이 회색 바탕 위에서 얼마나 또렷이 노래하는지 느껴 보는 거예요. 물감을 두껍게 올린 자리들을 가까이서 살피면, 붓이 지나간 결까지 보인답니다. 마지막으로 소년의 얼굴을 살펴보세요. 누구의 얼굴인지 끝내 알 수 없는, 이름 없는 한 아이의 표정이 무심한 듯 우리를 마주 본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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