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미신
Three Grac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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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Three Graces is an oil painting by the Italian painter Raphael in the Musée Condé in Chantilly, France. The date of origin has not been positively determined, though it seems to have been painted at some point after his arrival to study with Pietro Perugino in about 1500, possibly 1503-1505. According to James Patrick in 2007's Renaissance and Reformation, the painting represents the first time that Raphael had depicted the nude female form in front and back views.
라파엘로가 페루지노의 문하에 들어간 것은 1500년 무렵이었어요.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캔버스에 세 여인을 세웠습니다. 고대 신화 속 은총의 여신들, 그라티아이였죠. 각각 황금 사과를 손에 들고 앞과 뒤를 번갈아 보이며 서 있는 이 구성은, 라파엘로가 처음으로 여성 누드를 정면과 후면 동시에 그린 시도로 기록됩니다.
세 여인이 누구를 표현하는지에 대해서는 오랫동안 논쟁이 이어져 왔어요. 한편에서는 왼쪽의 허리를 동여맨 인물을 순결(Chastitas), 오른쪽 인물을 관능(Voluptas)으로 읽어 여성의 발달 단계를 담았다고 해석합니다. 또 1930년 에르빈 파노프스키는 이 그림이 '기사의 비전'이라는 작품과 한 쌍을 이루는 이부화(二部畵)였을 것이라고 주장하며, 세 인물을 헤라클레스가 훔쳐 온 황금 사과를 지키는 헤스페리데스로 보았습니다.
그러나 반론도 만만치 않았어요. 로저 존스와 니콜라스 페니는 두 작품 사이의 인물 크기 차이를 들어 이부화 구성에 회의를 표했고, 마이클 웨인 콜은 두 그림이 '한 쌍임은 분명하지만 이부화는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습니다. 콜은 세 여인을 비너스의 시녀들로 해석하며, 그들이 든 황금 사과가 비너스의 속성임을 강조했어요. 덕(Virtus)과 사랑(Amor)의 올바른 결합을 선언하는 도상이라는 것이죠.
영감의 원천에 대해서도 의견이 갈립니다. 시에나 대성당 피콜로미니 도서관에 전시된 로마 시대 대리석 조각상에서 착안했다는 것이 오랜 통설이었지만, 줄리아 카트라이트는 고전 조각보다 페라라 화파의 영향이 더 짙게 배어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라파엘로가 무엇을 보았든, 세 여인은 지금 프랑스 샹티이의 콩데 미술관에서 조용히 황금 사과를 쥐고 있어요.
- 앞과 뒤 — 가운데 여신은 우리에게 등을 보이고, 양옆 두 여신은 정면을 향해요. 한 화면에서 인체의 앞뒤를 동시에 보여주려 한 거죠.
- 둥근 원 — 세 사람이 서로의 어깨에 손을 얹어 팔과 팔이 부드럽게 얽혀요. 그렇게 화면 가운데로 자연스러운 원이 그려지죠.
- 황금 구슬 — 양옆 두 여신이 작은 황금빛 구슬을 손에 들고 있어요. 헤스페리데스 정원의 황금 사과일지 모를, 그림의 작은 수수께끼죠.
- 붉은 목걸이 — 오른쪽과 가운데 여신의 목엔 붉은 구슬 목걸이가 걸려 있어요. 부드러운 살빛 위에서 작지만 또렷한 색의 점이 되죠.
- 잔잔한 풍경 — 인물들 뒤로 물길과 나지막한 언덕이 멀리 펼쳐져요. 젊은 라파엘로 특유의 부드러운 균형 감각이 여기 이미 싹터 있죠.
세 여신을 한 바퀴 둘러본다면, 가장 오래 머무르게 되는 자리는 어디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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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루지노의 공방을 막 나선 청년
라파엘로 하면 바티칸의 거대한 벽화나 원숙한 성모상을 먼저 떠올리시죠? 그런데 이 작은 그림 《삼미신》은 그가 아직 스무 살 안팎의 풋풋한 청년이던 시절, 스승 페루지노 곁에서 배움을 마치고 막 자기 길을 찾던 무렵에 그려졌어요. 정확한 제작 연대는 끝내 확정되지 못했지만, 대략 그가 페루지노에게 배우러 온 1500년 이후, 어쩌면 1503년에서 1505년 사이로 보는 견해가 많답니다.
흥미로운 건, 미술사학자들이 이 그림을 라파엘로가 '여성의 누드를 앞모습과 뒷모습으로 동시에 담아낸 첫 작품'으로 꼽는다는 점이에요. 한 화면 안에서 한 여인의 등을, 또 다른 여인의 정면을 함께 보여 줌으로써, 젊은 화가가 인체를 사방에서 파악하려 한 야심이 고스란히 드러나지요. 자그마한 화면이지만 그 안에 담긴 포부는 결코 작지 않답니다.
고대 조각인가, 페라라의 영향인가
오랫동안 사람들은 라파엘로가 시에나 대성당의 피콜로미니 도서관에 있던 낡은 로마 대리석 군상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이야기해 왔어요. 세 여신이 어깨를 맞대고 둥글게 선 고전적 구도가 그 조각과 닮았다는 거죠. 19세기의 한 미술사가는 그 조각이 솜씨 좋은 작품은 아니었다고 평하기도 했답니다.
그런데 모든 학자가 여기에 동의하는 건 아니에요. 줄리아 카트라이트 같은 연구자는 오히려 이 그림이 고대 조각보다 페라라 화파의 영향을 훨씬 짙게 보여 준다고 주장했어요. 삼미신이라는 주제 자체가 당시 이탈리아에서 무척 인기 있던 소재였으니, 라파엘로가 굳이 그 조각 하나만을 본떴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는 거죠. 어느 쪽이든, 청년 라파엘로가 여러 원천을 자기 식으로 녹여 냈다는 사실만은 분명해 보여요.
처녀에서 성숙으로, 그리고 황금 사과
세 여신이 손에 든 작은 황금 구슬은 그저 장식이 아니랍니다. 학자들은 이것을 헤스페리데스의 정원에 열린 황금 사과로 읽기도 해요. 또 어떤 이들은 세 인물이 여인의 인생 단계를 상징한다고 보았는데, 왼편에 천을 두른 여신은 순결한 처녀(Chastitas)를, 오른편의 여신은 무르익은 성숙(Voluptas)을 나타낸다는 해석이지요.
1930년에는 미술사학자 에르빈 파노프스키가 이 그림을 라파엘로의 《기사의 꿈》과 한 쌍을 이루는 작품으로 보았어요. 다만 두 그림 속 인물의 크기 차이 때문에 진짜 한 쌍의 패널화였는지는 학자들 사이에 이견이 남아 있답니다. 그럼에도 두 그림이 '덕(Virtus)'과 '사랑(Amor)'이라는 주제로 서로 짝을 이룬다는 점에는 많은 이가 고개를 끄덕이지요. 작은 그림 한 점에 이토록 풍성한 이야기가 겹쳐 있다는 게 놀랍지 않나요?
관람 포인트
먼저 가운데 여신의 등과 양옆 여신의 정면을 번갈아 보세요. 한 몸을 앞뒤로 동시에 보여 주려 한 청년 화가의 의도가 또렷이 느껴질 거예요. 다음엔 세 사람이 서로의 어깨에 살며시 얹은 손을 따라가 보세요. 팔과 팔이 부드럽게 얽히며 화면 가운데로 자연스러운 원을 그려 낸답니다. 그러고 나서 각자의 손에 들린 작은 황금 구슬에 눈을 멈춰 보세요. 헤스페리데스의 사과일지 모를 이 작은 알맹이가 그림 전체의 수수께끼를 푸는 열쇠랍니다. 마지막으로 뒤편으로 잔잔히 펼쳐진 풍경과 인물들의 부드러운 살결을 함께 보세요. 훗날 라파엘로 특유의 우아한 균형 감각이, 이 이른 시기에 이미 싹트고 있었음을 확인하실 수 있을 거예요.

그림 맨 아래 지루한 표정의 두 아기 천사가 그림보다 더 유명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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