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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기아리 전투

The Battle of Anghiari

레오나르도 다 빈치

분류
Paintings
지역
서양
라이선스
Public domain (Wikimedia Commons)
작품 소개

The Battle of Anghiari (1505) is a lost fresco painting by Leonardo da Vinci in the Salone dei Cinquecento in the Palazzo Vecchio, Florence. Its central scene would have depicted four men riding raging war horses engaged in a struggle for possession of a standard at the Battle of Anghiari in 1440.

도슨트 이야기

피렌체 팔라초 베키오 '오백인의 방', 천장 높이 12미터에 바사리가 그린 전투 프레스코 한켠에 초록 깃발을 든 병사가 보여요. 그 깃발에는 '찾는 자는 찾으리라(CERCA TROVA)'는 글귀가 적혀 있어요. 연구자 마우리치오 세라치니는 이것을 바사리가 남긴 암호로 보았어요. 그 벽 뒤에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앙기아리 전투'가 숨어 있다는 단서라고요.

이야기는 1504년으로 거슬러 올라가요. 레오나르도는 이 방의 동쪽 벽을 장식하는 의뢰를 받았고, 반대편 벽은 미켈란젤로의 몫이었어요. 르네상스 두 거장이 한 방에서 경쟁하는 유일한 순간이었지요.

레오나르도는 프레스코를 피하고 싶었어요. '최후의 만찬'에서 이미 쓴맛을 본 터였거든요. 두꺼운 밑칠 위에 유성 물감을 실험했지만 물감이 흘러내렸어요. 숯불로 빠르게 건조하려 했으나 아랫부분만 건졌을 뿐, 결국 포기했어요. 미완성 벽화는 수십 년간 남아 숱한 화가들의 찬사를 받다가, 16세기 중반 바사리의 프레스코로 교체되었어요.

세라치니 팀은 레이더와 열화상 카메라로 조사한 끝에, 바사리가 원래 벽 앞에 새 벽을 세워 그 위에 그림을 그렸음을 확인했어요. 두 벽 사이 공간은 1~3센티미터—2012년 내시경 카메라가 들여다본 안쪽 벽에는 레오나르도의 다른 작품과 화학 성분이 유사한 안료 흔적이 있었어요.

그러나 2020년 다른 연구자들은 레오나르도의 기법 자체가 벽에 물감이 붙기 어려운 방식이라, 애초에 그림이 시작조차 되지 않았을 수 있다고 반박했어요. '앙기아리 전투'는 사라진 채로, 찾는 자를 기다리고 있어요.

이렇게 보세요
  • 엉킨 손들화면 한가운데, 군기 하나를 움켜쥐려 서로를 향해 뻗은 기사들의 팔이 한 점에서 충돌해요. 이 손들이 전체 구도의 폭풍의 눈이랍니다.
  • 군마의 표정말들이 콧구멍을 한껏 벌리고 이를 드러낸 채 서로 물어뜯을 듯 날뛰어요. 사람만큼이나 말도 분노에 휩싸인, 다 빈치의 관찰력이 살아 있는 대목이에요.
  • 바닥의 병사들말발굽 아래로 쓰러진 병사들이 짓밟히고 있어요. 위에서 뒤엉킨 격투와 아래의 무력한 패배가 한 화면에 겹쳐 전쟁의 광기를 이루죠.
  • 갈색 소묘원작 벽화는 사라지고, 지금 보는 건 갈색 잉크와 담채로 그린 후대의 모사예요. 색이 거의 없는데도 휘몰아치는 힘의 흐름이 먼저 와닿아요.

이 한 덩어리로 뭉친 소용돌이에서, 사람과 말의 경계가 어디인지 가려지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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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걸작, 두 거장의 맞대결

《앙기아리 전투》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피렌체 베키오 궁의 '오백인 대회의실'에 그리려 했던 거대한 벽화예요. 그런데 우리는 이 그림을 직접 볼 수 없어요. 끝내 완성되지 못하고 사라져 버린, 미술사에서 가장 유명한 '잃어버린 걸작' 가운데 하나거든요. 화면 중심에는 1440년 앙기아리 전투에서 네 명의 기사가 군기 하나를 두고 사납게 날뛰는 말 위에서 뒤엉켜 싸우는, 전쟁의 광기 그 자체가 담길 예정이었어요.

이 그림이 특별한 이유는 또 있어요. 1504년 곤팔로니에레 피에로 소데리니가 의뢰하고 마키아벨리가 계약서에 서명한 이 작업에서, 다 빈치는 같은 방의 맞은편 벽을 맡은 미켈란젤로와 나란히 일하게 되었거든요. 막 《다비드》를 끝낸 젊은 미켈란젤로는 《카시나 전투》를 맡았어요. 두 천재가 한 공간에서 작업한 것은 평생 이때가 유일했고, 작품이 마주 보고 있다는 사실은 둘의 경쟁심을 더욱 불타게 했지요. 르네상스 최고의 두 거장이 벌인 '예술의 결투'였던 셈이에요.

기법이 부른 비극

그런데 왜 이 위대한 시도는 실패했을까요? 이미 밀라노에서 《최후의 만찬》을 그리며 프레스코에 쓰라린 경험을 했던 다 빈치는, 이번에는 벽에 유화 물감을 쓰고 싶어 했어요. 그래서 밀랍을 섞었을 것으로 짐작되는 두꺼운 밑칠을 시도했는데, 그 위에 색을 올리자 물감이 흘러내리기 시작한 거예요.

그는 황급히 그림을 말리려고 커다란 숯 화로를 가까이 가져다 댔어요. 그 결과 낮은 부분만 가까스로 살아남고, 위쪽은 미처 마르지 못해 색이 서로 뒤섞여 버렸지요. 결국 1505년, 다 빈치는 작업을 포기하고 맙니다. 미완성으로 남은 두 거장의 그림은 거의 십 년 동안(1505–1512) 같은 방을 함께 장식했어요. 안타깝게도 미켈란젤로의 밑그림은 1512년 시기심에 찬 누군가의 손에 조각조각 잘려 나갔다고 전해진답니다. 2020년에는 일부 미술사가들이 '레오나르도가 끝내 적합한 기법을 발명하지 못했으니 그림은 애초에 실행조차 되지 못했다'고 주장하기도 했어요.

모사본과 숨겨진 벽의 미스터리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이 휘몰아치던 힘을 짐작할 수 있을까요? 바로 후대 화가들이 남긴 모사를 통해서예요. 중심 장면을 가장 잘 보여 주는 것은 16세기에 그려진 한 소묘인데, 훗날 루벤스가 사들여 가장자리를 덧그렸어요. 지금 루브르에 소장된 이 그림은 '군기를 둘러싼 전투'라 불리며, 원작에 담겼을 격렬한 분노와 힘의 감각을 생생히 전해 주지요. 바사리는 자신의 책에서 레오나르도가 말의 대담함과 근육, 우아한 아름다움을 어떤 거장보다 뛰어나게 그려냈다고 격찬했어요.

더 흥미로운 건 '숨겨진 벽' 미스터리예요. 오늘날 그 자리에는 1563~65년에 그려진 바사리의 프레스코가 걸려 있는데, 그중 한 작품 위쪽 12미터 높이에 한 병사가 '체르카 트로바', 곧 '찾는 자는 발견하리라'라는 글귀가 적힌 초록 깃발을 흔들고 있어요. 2012년 마우리치오 세라치니가 이끄는 연구진은 이 글귀를 단서 삼아, 바사리가 세운 칸막이벽 뒤에 레오나르도의 원작이 보존되어 있다고 발표했어요. 다만 이 시도는 벽에 구멍을 뚫었다는 격렬한 비판과 관계자들의 이견 속에 그해 중단되고 말았답니다.

관람 포인트

원작이 사라진 만큼, 루브르에 있는, 루벤스가 손본 16세기 모사 소묘를 마음의 눈으로 떠올리며 감상해 보세요. 먼저 화면 한가운데, 군기를 움켜쥐려 서로의 손을 향해 뻗은 네 기사의 팔에 시선을 모아 보세요. 깃발 하나를 두고 뒤엉킨 그 손들이 전체 구도의 폭풍의 눈이랍니다. 그다음 말들의 얼굴을 보세요. 콧구멍을 한껏 벌리고 이를 드러낸 채 서로 물어뜯을 듯 날뛰는 군마의 표정에, 바사리가 감탄한 레오나르도의 관찰력이 고스란히 담겨 있어요. 마지막으로, 인물과 말이 한 덩어리로 소용돌이치듯 뭉쳐 있는 구성을 멀찍이서 바라보세요. 개별 형상보다 그 휘몰아치는 힘의 흐름이 먼저 와닿을 거예요. 그것이 바로 다 빈치가 벽에 새기려다 끝내 놓쳐 버린, 전쟁의 광기 그 자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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