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수대 위의 까치
The Magpie on the Gallo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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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ainting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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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Magpie on the Gallows is a 1568 oil-on-wood panel painting by the Netherlandish Renaissance artist Pieter Bruegel the Elder. It is now in the Hessisches Landesmuseum, in Darmstadt.
1568년에 그려진 이 그림은 브뤼헐이 이듬해 세상을 떠나기 직전의 작품이에요. 그림 속 농민들은 교수대 바로 옆에서 백파이프 소리에 맞춰 춤을 추고 있어요. 교수대 위에는 까치 한 마리가 태연히 앉아 있고, 바닥 돌 위에는 또 한 마리가 내려앉아 있습니다. 사람들은 그저 즐겁게 보이지만, 죽음의 냄새가 나는 그늘 아래에서 춤추고 있어요.
브뤼헐은 죽음을 앞두고 아내에게 몇 점의 그림을 태워버리라 부탁했습니다. 그러나 이 그림만큼은 아내가 직접 간직하라고 말했어요. 어떤 의미가 담겼기에 그랬을지, 기록은 전해지지 않습니다.
그림에는 네덜란드 속담의 냄새가 진하게 배어 있어요. 교수대에서 춤춘다는 말은 권력을 비웃는다는 뜻이고, 까치는 수다쟁이를 가리켜 '가십이 교수대로 이어진다'는 경고이기도 했어요. 그림이 그려진 1568년은 스페인 왕이 보낸 군대가 네덜란드의 반란을 짓밟던 바로 그 시절이었습니다.
그림 오른쪽에는 십자가 하나가 조용히 서 있고, 그 뒤로 물레방아가 돌아가고 있어요. 멀리는 강과 마을과 성이 보이는 평화로운 풍경입니다. 폭력과 일상, 죽음과 삶이 한 화면에 공존해요.
농민들은 위험을 알면서도 춤을 멈추지 않아요. 그것이 저항인지 무지인지는 보는 사람의 몫이에요. 브뤼헐이 이 그림을 아내 곁에 두고 싶었던 이유도, 아마 그 모호한 자리 어딘가에 있지 않았을까요.
- 어긋난 교수대 — 화면 정중앙의 교수대를 가만히 들여다보세요. 기둥 밑동은 나란한데 가로대는 비스듬히 멀어지고 각도가 어긋나, 현실에선 세울 수 없는 '불가능한 구조물'처럼 보여요.
- 그 위의 점 하나 — 가로대 위에 앉은 작은 까치를 찾아보세요. 너른 풍경 한복판, 화면을 좌우로 가르는 정확한 중심에 놓여 시선을 붙들어요.
- 죽음 곁의 춤 — 교수대 바로 왼쪽 아래, 풀밭에서 손을 맞잡고 춤추는 사람들을 보세요. 처형의 도구와 삶의 흥취가 한 뼘 거리에서 태연히 어깨를 맞대고 있죠.
- 멀어지는 색 — 짙은 갈색의 우거진 앞쪽 숲에서, 초록 들판을 지나, 강이 흐르는 옅은 푸른빛 골짜기와 바위 위 성으로 색이 점점 옅어져요. 가까운 죽음에서 먼 평화로 시선이 깊이 빨려 들어가요.
- 숨은 짓궂음 — 왼쪽 그늘진 덤불 쪽을 자세히 보면, 한 사내가 슬그머니 볼일을 보고 있어요. 점잖은 풍경 속에 숨겨 둔 화가의 짓궂은 풍자랍니다.
같은 들판에서 춤추는 사람들과 까치, 당신에겐 어느 쪽이 먼저 보이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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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을 앞둔 거장의 마지막 풍경
대 피터르 브뤼헐이 1568년에 호두빛 패널 위에 그린 이 작은 그림은, 그의 생애 거의 마지막 작품으로 꼽혀요. 이듬해인 1569년에 세상을 떠났으니, 어쩌면 붓을 놓기 직전의 풍경일지도 모르죠. 전하는 이야기에 따르면 브뤼헐은 임종을 앞두고 아내에게 자기 그림 몇 점을 태워 달라고 부탁했다는데, 유독 이 《교수대 위의 까치》만은 '당신이 간직하라'고 일렀다고 해요. 그만큼 화가 자신에게 각별했던 그림인 셈이죠. 어째서, 또 누구를 위해 그렸는지는 끝내 밝혀지지 않았지만, 그 사연 덕분에 우리는 거장이 마지막까지 곁에 두고 싶어 한 풍경을 마주하게 된 거예요. 지금은 독일 다름슈타트의 헤센 주립미술관에 걸려 있답니다.
춤추는 농부와 외로운 까치
화면 한복판에는 들판에 외따로 선 교수대가 우뚝 서 있어요. 그 가로대 위에 까치 한 마리가 앉아 있고, 바로 아래 풀밭에서는 세 사람이 백파이프 소리에 맞춰 흥겹게 춤을 추고 있죠. 죽음의 도구와 삶의 흥취가 한 화면에서 태연히 어깨를 맞대고 있는 거예요. 교수대 발치 바위에는 또 다른 까치 한 마리와 짐승의 두개골이 놓여 있고, 왼쪽 그늘에서는 한 사내가 볼일을 보고 있어요. 점잖은 풍경 같지만 곳곳에 짓궂은 풍자가 숨어 있죠. 사람의 형상은 모두 왼쪽 앞부분에만 모여 있고, 오른쪽에는 십자가 하나와 그 뒤로 물레방아가 서 있어요. 춤추는 이들 뒤로는 두 그루의 나무가 서로 얽혀 솟아 있는데, 이는 브뤼헐이 곰들이 노니는 숲을 그린 옛 데생에서 이미 써 본 모티프랍니다. 멀리로는 강이 흐르는 골짜기와 바위 절벽 위의 성, 마을과 탑이 아스라이 펼쳐지면서 광활한 '세계 풍경'이 완성됩니다.
수다가 부른 교수대
당시 네덜란드에서 까치는 '수다쟁이'를 뜻하는 새였어요. 함부로 떠도는 험담이 결국 사람을 교수대로 보낸다는 속담이 있었죠. 그러니 까치가 앉은 교수대는 곧 '말의 무서움'에 대한 경고이기도 합니다. 게다가 '교수대 위에서 춤춘다' '교수대 위에서 볼일을 본다'는 표현은 권력을 비웃는다는 뜻이었어요. 이 그림이 그려진 1568년은, 스페인 왕 펠리페 2세가 보낸 알바 공작이 네덜란드의 반란과 신교를 가혹하게 짓밟던 시기였죠. 교수대는 그 처형의 공포를 떠올리게 하고, 화가는 '교수대로 가는 길조차 즐거운 들판을 지난다'는 쓸쓸한 진실을 한 폭에 담아낸 거예요.
관람 포인트
먼저 화면 정중앙의 교수대를 가만히 들여다보세요. 기둥의 밑동은 나란히 박혀 있는데 가로대는 비스듬히 멀어지고, 빛의 방향도 어긋나 있어요. 마치 펜로즈의 삼각형처럼 현실에서는 세울 수 없는 '불가능한 구조물'이죠. 다음으로 그 위에 앉은 까치를 찾아 보세요. 화면을 좌우로 가르는 정확한 중심에 놓여 있답니다. 그러고 나서 왼쪽 아래 춤추는 세 사람과 그늘 속 사내의 짓궂은 행동을 견주어 보고, 마지막으로 갈색의 짙은 전경에서 초록의 중경을 지나 옅은 푸른빛 하늘로 멀어지는 색의 흐름을 좇아 보세요. 가까운 죽음에서 먼 평화로, 시선이 자연스레 깊이 빨려 들어갈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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