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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의 놀이

Children's Games

대 피터르 브뤼헐

분류
Paintings
지역
서양
라이선스
Public domain (Wikimedia Commons)
작품 소개

Children's Games is an oil-on-panel by Flemish Renaissance artist Pieter Bruegel the Elder, painted in 1560. It is now in the Kunsthistorisches Museum in Vienna. The entire composition is full of children playing a wide variety of games. Over 90 different games that were played by children at the time have been identified.

도슨트 이야기

1560년 플랑드르 르네상스의 거장 피터르 브뤼헐은 나무 패널 하나에 어린이들이 즐기는 놀이를 90가지 넘게 빼곡히 담았어요. 팽이를 돌리고, 죽마를 타고, 굴렁쇠를 굴리고, 돼지 방광을 불어 공처럼 가지고 놀고, 물구나무서기와 장님놀이까지 — 그야말로 당시 아이들의 놀이 백과사전이에요.

하지만 브뤼헐의 속내는 단순한 기록이 아니었어요. 아이들은 하나같이 진지한 표정으로 놀이에 몰입해 있어요. 마치 어른들이 자신의 일에 빠져드는 것처럼요. 광장을 가득 채운 아이들 뒤로는 시청이나 중요한 공공 건물로 보이는 큰 건물이 서 있고, 아이들은 그 건물까지 점령해 버렸어요. 이 배치 하나로 브뤼헐은 소리 없이 묻고 있었던 거예요. '어른들의 일이 아이들의 놀이보다 정말 더 중요한가?'

그림은 1604년 카를 판 만데르가 처음 문헌에 기록했고, 1594년에는 오스트리아 대공 에른스트가 구입했어요. 일각에서는 이 그림이 '인간의 나이' 연작의 첫 번째 작품으로 기획된 것, 즉 '청년기'를 상징하는 것이었을 거라 추측하지만, 이어지는 연작의 흔적은 남아 있지 않아요.

지금 빈 미술사 박물관에 걸린 이 그림 앞에 서면, 수백 년 전 아이들의 함성이 들리는 듯해요. 그리고 그 소란 속에서 브뤼헐이 남긴 질문은 여전히 조용히 울려요. 신의 눈으로 보면, 아이의 놀이와 어른의 근심은 과연 얼마나 다를까요?

이렇게 보세요
  • 빈틈없음광장도 골목도 지붕 위까지 아이들로 빼곡해, 눈 둘 곳을 정하기 어려울 만큼 화면이 가득 차 있어요.
  • 내려다본 시점마치 높은 창에서 광장을 굽어보듯 위에서 비스듬히 내려다본 구도라, 멀리까지 펼쳐진 거리가 한눈에 들어와요.
  • 앞쪽의 놀이화면 아래쪽에서 커다란 나무통을 굴리는 아이, 굴렁쇠를 굴리는 아이, 물구나무선 아이가 또렷이 보여요.
  • 트인 한 구석왼쪽 위 모퉁이만 초록 나무와 강가로 트여 있는데, 그 멀리서도 아이들이 물가에 모여 놀고 있지요.

당신은 이 빼곡한 화면에서 가장 먼저 어느 놀이에 눈이 닿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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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화면에 담은 아이들의 우주

1560년, 플랑드르의 거장 대 피터르 브뤼헐은 작은 떡갈나무 패널 위에 유화로 이 그림을 그렸어요. 지금은 빈의 미술사 박물관에 걸려 있지요. 화면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마을 광장과 거리, 골목 어귀까지 발 디딜 틈 없이 아이들로 가득 차 있답니다. 굴렁쇠를 굴리고, 죽마를 타고, 목마를 흉내 내며 달리고, 물구나무를 서고, 인형을 안고, 돼지 오줌보를 불어 공처럼 가지고 노는 아이들. 가짜 마상 시합을 벌이고, 등넘기와 술래잡기에 빠진 아이들도 있어요. 학자들이 헤아려 보니, 그 시절 아이들이 즐기던 놀이가 무려 여든 가지 넘게 이 한 화면에 담겨 있다고 해요.

이 그림이 기록에 처음 등장한 것은 1604년, 카럴 판 만더르의 글에서였어요. 그보다 앞선 1594년에는 오스트리아의 대공 에른스트가 이 작품을 사들였지요. 한 가지 흥미로운 이야기가 전해 와요. 이 그림이 본래 '인간의 나이'를 주제로 한 연작의 첫 작품, 곧 '유년기'를 나타내려던 것이 아니었을까 하는 추측이지요. 만약 그랬다면 브뤼헐은 그 계획을 더 잇지는 못했나 봐요. 뒤따르는 짝 그림에 대한 기록이 어디에도 남아 있지 않거든요.

놀이라는 이름의 진지함

언뜻 이 그림은 그저 즐겁고 떠들썩한 놀이 풍경처럼 보여요. 하지만 브뤼헐의 뜻은 그보다 훨씬 깊고 진지했답니다. 그는 아이들이 놀이에 푹 빠져 있는 모습을, 마치 어른들이 제 일에 몰두하듯 더없이 진지하게 그려 냈어요. 여기에는 조용한 깨우침이 숨어 있지요. 신의 눈으로 보면, 아이들의 놀이와 어른들의 그 대단해 보이는 일들 사이에 과연 무슨 차이가 있겠느냐는 거예요.

그래서 화면 한가운데를 차지한 커다란 건물도 예사롭지 않아요. 시청이나 그에 버금가는 중요한 공공 건물로 보이는 이곳마저, 아이들이 점령하듯 차지하고 놀고 있거든요. 세상사를 다스리는 어른들도 신 앞에서는 결국 아이와 다름없다는 뜻이 여기 담겨 있어요. 사실 이런 생각은 그 시대 문학에 낯설지 않은 것이었어요. 1530년 안트베르펀에서 나온 한 익명의 플랑드르 시는, 어리석은 놀이와 걱정에 온통 빠져 있는 아이들에 인간을 빗대기도 했지요.

백과사전 같은 화면

브뤼헐의 화면은 마치 한 권의 백과사전처럼 촘촘해요. 그는 높은 곳에서 광장을 내려다보는 듯한 시점을 택해, 걸음마를 갓 뗀 아기부터 제법 자란 소년소녀까지 온갖 나이의 아이들을 한눈에 펼쳐 보였지요. 그 빼곡함 속에서도 답답함을 덜어 주는 숨통이 있어요. 화면 왼쪽 위 모퉁이로 풍경이 살짝 트여 있거든요. 그런데 그 멀찍한 강가에서마저 아이들은 물놀이를 하고 강둑에서 뛰놀고 있답니다. 어디 한 군데 노는 아이가 없는 곳이 없는 셈이에요.

그래서 이 그림 앞에 서면, 우리는 한 점의 그림을 보는 게 아니라 16세기 어느 마을의 하루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듯한 기분이 들어요. 브뤼헐은 굳이 한 주인공을 내세우지 않았어요. 누구 하나가 이야기의 중심이 되는 대신, 모든 아이가 저마다의 놀이에 똑같이 몰두해 있지요. 그 덕분에 우리 눈길도 한곳에 머무르지 못하고 화면 곳곳을 끝없이 헤매게 된답니다. 바로 그 헤맴이야말로 이 그림이 우리에게 건네는 가장 큰 즐거움이에요.

관람 포인트

먼저 화면 어디에도 빈자리가 없다는 사실에 놀라 보세요. 그러고는 왼쪽 아래 구석에서부터 시선을 천천히 옮겨 가며, 아이들이 무슨 놀이를 하고 있는지 하나하나 찾아보는 거예요. 굴렁쇠와 죽마, 목마, 물구나무, 등넘기, 돼지 오줌보 공까지, 오늘 우리가 아는 놀이와 닮은 것을 발견하는 재미가 쏠쏠하답니다. 다음으로 화면 한가운데의 커다란 공공 건물에 눈을 두세요. 어른들의 공간이어야 할 그곳마저 아이들이 차지하고 있다는 점이, 브뤼헐이 숨긴 뜻을 일러 줘요. 마지막으로 왼쪽 위 모퉁이로 트인 강가 풍경을 찾아보세요. 그 먼 곳에서도 물놀이하는 아이들이 보일 거예요. 빼곡한 화면 속에서 잠시 숨을 돌리게 해 주는, 그러나 끝내 놀이로 가득한 작은 창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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