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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철학자

The Three Philosophers

조르조네

분류
Paintings
지역
서양
라이선스
Public domain (Wikimedia Commons)
작품 소개

세 철학자는 이탈리아 전성기 르네상스 화가 조르조네의 작품으로 알려진 캔버스 유화이다. 젊은 철학자, 중년의 철학자, 노년의 철학자 세 명을 묘사하고 있다.

도슨트 이야기

1509년경 완성된 이 그림은 처음부터 '세 철학자'라는 이름으로 불리지는 않았어요. 화가가 세상을 떠난 뒤 몇 해가 지나 베네치아의 한 저술가 마르칸토니오 미키엘이 어느 귀족 저택에서 이 작품을 보고 그 이름을 기록하면서부터예요.

화면 왼쪽에는 젊은 남자가 땅에 앉아 무언가를 측량하듯 도구를 들고 동굴 입구를 바라보고 있어요. 가운데에는 아랍풍의 복식을 한 중년 인물이 서 있고, 오른쪽에는 수염 기른 노인이 천문 도표가 담긴 종이를 쥐고 있지요. 노인의 종이에는 '일식'이라는 단어와 천문 도표가 보인다고 해요.

셋이 누구인지는 지금도 논쟁 중이에요. 고대 그리스 철학에서 이슬람 번역을 거쳐 르네상스로 흘러온 '지식의 전달'을 표현한다는 해석이 있고요. 동방박사나 피타고라스의 스승들, 심지어 솔로몬 왕과 그의 동료라는 주장도 나왔어요. 젊은이가 바라보는 동굴이 플라톤의 동굴 우화를 가리킨다는 시각도 있지요.

미술사가 톰 니콜스는 이 그림이 의도적으로 열린 해석을 유도한다고 봤어요. 조르조네가 '보는 이의 호기심을 가두는 시각적 덫'을 놓은 것이라고요.

동굴 안은 어둡고, 세 사람의 눈빛은 저마다 다른 곳을 향해 있어요. 무엇을 기다리는지, 무엇을 알고 있는지 — 조르조네는 우리에게 묻기만 하고 대답하지 않아요.

이렇게 보세요
  • 셋의 세대오른쪽에 세 남자가 나란히 서요. 흰 수염의 노인, 흰 터번을 두른 중년, 그리고 바위에 앉은 젊은이 — 한 화면에 인생의 세 나이가 함께 담겼지요.
  • 빛과 어둠왼쪽은 거대한 바위 동굴이 시커멓게 입을 벌리고, 오른쪽은 노을빛 들판이 환하게 트여요. 세 사람은 그 어둠과 빛의 경계에 서 있답니다.
  • 젊은이의 시선앉은 젊은이는 손에 도구를 들고 왼쪽 동굴의 어둠을 가만히 들여다봐요. 무언가를 재는 듯한 그 자세가 그림의 수수께끼를 엽니다.
  • 손에 든 종이노인과 젊은이는 각각 도표가 그려진 종이를 쥐고 있어요. 천문과 측량의 그림자가 이 만남 위에 드리워 있음을 일러 주지요.
  • 트인 배경동굴 너머 멀리 마을과 산, 옅게 물든 하늘이 펼쳐져요. 어둠과 밝음이 한 화면에서 만나, 답을 정해 주지 않는 고요한 사색을 남긴답니다.

이 세 사람은 지금 막 만난 걸까요, 아니면 헤어지려는 참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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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절한 천재의 마지막 수수께끼

베네치아 르네상스를 이야기할 때 빠지지 않는 이름이 조르조네예요. 그런데 그에 대해 우리가 아는 건 놀랄 만큼 적어요. 짧게 살다 일찍 세상을 떠났고, 확실하게 그의 손으로 인정되는 작품도 손에 꼽을 정도지요. 이 《세 철학자》는 그가 세상을 뜨기 한 해 전, 1509년 무렵 완성한 만년의 그림으로 전해져요. 한동안은 제자 세바스티아노 델 피옴보가 마무리했다는 설도 있었지만, 새로 촬영한 적외선 사진은 그 주장을 뒷받침하지 않는다고 해요.

이 그림은 베네치아의 귀족 타데오 콘타리니가 의뢰했을 가능성이 있어요. 상인이면서 오컬트와 연금술에 깊은 관심을 가진 인물이었지요. '세 철학자'라는 제목도 사실 조르조네가 붙인 게 아니에요. 베네치아의 한 별장에서 이 그림을 직접 본 마르칸토니오 미키엘이 남긴 기록에서 비롯된 이름이랍니다. 그러니 우리가 부르는 제목조차 후대가 붙여 준 것이고, 그림이 진짜로 무엇을 말하려는지는 처음부터 열려 있는 셈이에요.

동굴 곁에 선 세 사람

화면을 볼까요. 바위 동굴 곁에 세 남자가 서 있어요. 한 사람은 흰 수염을 길게 늘어뜨린 노인, 한 사람은 페르시아나 아랍 사람처럼 보이는 중년, 그리고 한 사람은 바위에 앉은 젊은이예요. 이들은 자연 풍경 속에 둘러싸여 있고, 배경 멀리에는 마을과 산이 보이지요. 산자락에 칠해진 푸른 영역이 무엇을 뜻하는지는 아직 아무도 모른답니다.

젊은이는 왼쪽 동굴을 가만히 들여다보며 어떤 도구로 그 어둠을 재는 듯한 자세를 취하고 있어요. 19세기 말까지만 해도 사람들은 이 세 사람을 아기 예수의 동굴 앞에 모인 동방박사로 여겼어요. 하지만 그 뒤로 학자들은 여러 근거를 들어 그 해석을 물렸지요. 노인이 든 종이에는 'eclipsis(식·蝕)'라는 단어와 천문 도표가 그려져 있는데, 이 작은 단서 하나가 또 다른 해석의 문을 열어 주기도 한답니다.

답이 없는 것이 답인 그림

이 그림만큼 해석이 분분한 작품도 드물어요. 가장 널리 받아들여지는 풀이 중 하나는 '지식의 전승'이에요. 고대 그리스 철학이 아랍 학자들의 번역을 거쳐 이탈리아 르네상스에서 되살아난 그 흐름을 세 인물로 그렸다는 거죠. 노인은 플라톤 같은 그리스 철학자, 중년은 아비센나나 아베로에스 같은 이슬람 황금기의 학자, 그리고 젊은이는 과거에 뿌리를 둔 새로운 르네상스의 학문을 가리킨다는 해석이에요. 동굴의 빈 어둠은 아직 밝혀지지 않은 비밀, 혹은 플라톤의 '동굴의 비유'를 떠올리게 하지요.

하지만 이게 전부가 아니에요. 세 인물을 인생의 세 단계(청년·중년·노년)로 보는 사람, 유럽 문명의 세 시대(고대·중세·르네상스)로 보는 사람, 세 일신교를 가리킨다고 보는 사람도 있어요. 솔로몬 왕이라는 설, 피타고라스의 스승들이라는 설까지 끝없이 이어지지요. 미술사가 톰 니콜스는 이 모호함이야말로 조르조네가 일부러 놓아둔 '시각적 덫', 보는 이의 호기심과 사색을 붙잡으려는 장치라고 했어요. 그러니 답을 못 찾았다고 아쉬워할 필요가 없어요. 답을 정해 주지 않는 것, 그게 바로 이 그림이 우리에게 건네는 답이니까요.

관람 포인트

먼저 세 인물의 나이와 차림새를 하나씩 견주어 보세요. 흰 수염의 노인, 동방의 옷을 두른 중년, 바위에 앉은 젊은이 — 이 세대의 차이가 그림 읽기의 출발점이에요. 다음으로 노인이 손에 든 종이를 자세히 보세요. 'eclipsis'라는 글자와 천문 도표가 작게 그려져 있어, 이 그림에 천문과 점성의 그림자가 드리워 있음을 알려 준답니다. 그리고 젊은이의 시선이 향하는 왼쪽 동굴, 그 텅 빈 어둠을 함께 들여다보세요. 그가 무엇을 재고 있는지 상상해 보면 그림이 한층 깊어져요. 마지막으로 배경 멀리 산자락의 푸른 영역으로 눈을 옮겨 보세요. 의미가 끝내 밝혀지지 않은 이 신비로운 색이야말로, 답을 주지 않는 조르조네의 시정(詩情)을 가장 잘 보여 주는 대목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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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인과 젖 먹이는 여인, 500년이 지나도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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