휘슬러의 어머니
Whistler's Moth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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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ainting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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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휘슬러의 어머니》(Whistler's Mother), 《화가의 어머니의 초상》또는 《회색과 검은색의 배열 제1번》(Arrangement in Grey and Black No. 1)은 미국 출신의 화가 제임스 애벗 맥닐 휘슬러가 1871년에 제작한 캔버스 유화이다. 이 그림의 주제는 휘슬러의 어머니인 안나 맥닐 휘슬러이다. 그림의 크기는 144.3 x 162.4 cm이며, 휘슬러가 직접 디자인한 액자에 담겨 전시되고 있다. 1891년 프랑스 정부가 구입하여 현재 파리의 오르세 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다. 이 작품은 미국 화가가 미국 밖에서 그린 그림 중 가장 유명한 작품 중 하나이다. 이 그림은 미국의 아이콘으로 다양하게 묘사되어 왔으며, 빅토리아 시대의 모나리자라고도 불린다.
1871년 런던, 첼시의 작업실. 휘슬러는 서 있는 모델을 그릴 작정이었어요. 그런데 그날 예약된 모델이 나타나지 않았고, 대신 어머니 애나가 자리를 채워줬어요. 오랫동안 서 있기 힘들었던 어머니는 결국 의자에 앉았고, 그 앉은 자세가 그대로 캔버스에 남았어요.
휘슬러가 이 그림에 붙인 이름은 '회색과 검정의 배열 1번'이었어요. '예술을 위한 예술'을 믿었던 그는 그림이 어머니의 초상이라는 사실 자체보다 색과 구성의 조화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거든요. 1872년 왕립예술원에 출품했을 때도 '초상화'라는 부제를 억지로 덧붙여야 했고, 그나마 낙선 직전에 간신히 걸렸어요.
아이러니는 그 다음에 찾아왔어요. 사람들은 색의 배열이 아니라 의자에 앉아 두 손을 모은 여인의 모습에서 어머니를 떠올렸어요. 미국에서는 1934년 우체국이 이 그림을 담은 우표를 '미국 어머니들을 기리며'라는 문구와 함께 발행했고, 대공황 무렵 한 마을에서는 2.4미터짜리 동상까지 세웠어요.
휘슬러는 훗날 이 그림을 전당포에 맡겨야 할 만큼 궁핍한 시절을 보냈어요. 그리고 1891년 파리 뤽상부르 미술관이 그림을 사들였을 때, 그는 편지에 이렇게 썼어요. '내 그림이 뤽상부르 벽에 걸려 있다 — 영국에서 겪은 모든 것을 생각하면, 마치 꿈만 같아요.' 화가가 '배열'이라 불렀던 그림은, 결국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어머니의 얼굴이 됐어요.
- 옆모습의 거리감 — 어머니가 정면이 아닌 완전한 옆모습으로 앉아 시선을 화면 왼쪽으로 보내요. 그래서 인물과 우리 사이에 고요한 거리가 생기죠.
- 절제된 색 — 잿빛 벽, 검은 드레스, 짙은 커튼—거의 회색과 검정뿐이에요. 색을 덜어낸 자리에 형태와 균형만 또렷이 남았죠. 그래서 원제가 '회색과 검은색의 배열'이에요.
- 화면을 나누는 사각형 — 벽에 걸린 액자, 점점이 무늬 박힌 커튼, 발밑의 발판이 검은 드레스의 큰 덩어리와 어우러져 화면을 음악의 마디처럼 나눠요.
- 흰 손길 — 어두운 화면 속에서 흰 모자와 무릎 위에 포갠 손수건이 밝게 빛나, 눈길을 차분히 인물에게로 모아 줘요.
색을 이렇게 덜어냈는데도 위엄이 느껴지는 건 무엇 때문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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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상화가 아니라 '배열'이라 불린 그림
이 그림을 처음 마주하면 그저 단정한 노부인의 초상처럼 보이실 거예요. 하지만 화가가 직접 붙인 정식 제목은 뜻밖에도 《회색과 검은색의 배열 제1번(Arrangement in Grey and Black No. 1)》이랍니다. 1871년 미국 태생의 화가 제임스 애벗 맥닐 휘슬러가 런던 첼시의 집에서 어머니 안나 맥닐 휘슬러를 모델로 그렸어요. '예술을 위한 예술'을 신봉했던 그에게 이 그림은 어머니의 얼굴을 기록하는 일이라기보다, 회색과 검정이라는 절제된 색조로 화면을 어떻게 조율할 수 있는지를 실험하는 무대였습니다. 그래서 그는 사람들이 자꾸 이 작품을 '초상화'로만 보려는 태도를 답답해했어요. 1890년 저서 《적을 만드는 우아한 기술》에서 그는 "내게는 어머니의 그림으로서 흥미롭지만, 대중이 모델의 정체에 대해 무엇을 신경 써야 하느냐"고 적기도 했답니다.
위엄을 빚어낸 절제
원래 휘슬러는 어머니를 서 있는 자세로 그리려 했지만, 오래 서 계시기 힘들어하셔서 지금처럼 옆모습으로 앉은 구도가 되었다고 전해져요. 어쩌면 이 우연이 작품에 깊은 정적과 위엄을 선사했는지도 모릅니다. 화면은 잿빛 벽과 검은 드레스, 짙은 커튼으로 채워졌고, 색채를 과감히 덜어낸 자리에 형태와 균형만이 또렷이 남았어요. 이런 화면은 동시대 프랑스 작곡가 클로드 드뷔시에게도 깊은 인상을 남겨, 그는 자신의 《녹턴》을 '회화에서 회색의 연구가 그러하듯, 하나의 색에서 끌어낼 수 있는 여러 조합의 실험'이라 표현했답니다.
거절당할 뻔한 그림에서 미국의 아이콘으로
이 작품은 1872년 런던 왕립 아카데미 전시에서 가까스로 거절을 면하고 걸렸어요. 빅토리아 시대 관객들은 '배열'이라는 추상적인 제목을 받아들이기 어려워했고, 그래서 '화가의 어머니 초상'이라는 설명이 덧붙으며 오늘날의 별칭 '휘슬러의 어머니'가 굳어졌습니다. 한때 휘슬러는 이 그림을 전당포에 맡기기도 했지만, 1891년 프랑스 정부가 사들여 파리에 두면서 운명이 바뀌었어요. 영국에서 홀대받던 그림이 프랑스 국립 미술관에 걸린 일을, 휘슬러는 '아카데미를 향한 통쾌한 따귀'라며 꿈만 같다고 적었답니다. 이후 이 그림은 모성과 가족의 상징이 되어, 1934년 미국 우표에는 '미국 어머니들을 기리며'라는 문구와 함께 등장하기도 했어요.
관람 포인트
먼저 어머니의 옆얼굴에서 흘러내리는 시선을 따라가 보세요. 정면을 향하지 않은 이 옆모습이 화면에 고요한 거리감을 만들어 냅니다. 그다음 무릎 위에 단정히 포갠 손과 발밑의 발판, 벽에 걸린 액자, 점점이 무늬가 박힌 커튼을 차례로 짚어 보세요. 거의 검정과 회색뿐인데도 이 사각형들이 화면을 음악의 마디처럼 나누고 있다는 걸 느끼실 거예요. 마지막으로 휘슬러가 직접 디자인한 액자까지 작품의 일부로 바라보시면, 이 그림이 왜 '초상'이 아니라 '배열'로 불리길 원했는지 비로소 고개가 끄덕여진답니다.

조롱으로 던진 '인상'이라는 말이 한 시대의 이름이 됐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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