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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마태오를 부르심

The Calling of Saint Matthew

카라바조

분류
Paintings
지역
서양
라이선스
Public domain (Wikimedia Commons)
작품 소개

《성 마태오를 부르심》(이탈리아어: Vocazione di San Matteo, 영어: The Calling of Saint Matthew)은 이탈리아의 바로크 거장 카라바조의 유화 작품으로, 예수 그리스도가 세금 징수원 마태오에게 자신을 따르라고 부르는 순간을 묘사한다. 1599–1600년에 로마의 프랑스 교단인 산 루이지 데이 프란체시 성당의 콘타렐리 예배당을 위해 완성되었으며, 현재도 그곳에 남아 있다. 이 작품은 카라바조의 다른 두 마태오 그림인 《성 마태오의 순교》 와 《성 마태오의 영감》 (1602년)과 함께 걸려 있다.

도슨트 이야기

1599년 로마, 산 루이지 데이 프란체시 성당. 카라바조는 프랑스 추기경이 남긴 유언의 돈으로 꾸며진 콘타렐리 예배당 옆벽에 두 그림을 그려야 했어요. 그 중 하나가 '세관원 마태오를 부르시다'였어요. 카라바조 생애 첫 대형 교회 위탁 작품이었어요.

그림 속 방은 거의 어두워요. 탁자에 다섯 남자가 앉아 돈을 세고 있는데, 문 쪽에서 예수와 베드로가 들어서며 한쪽으로 손을 뻗어요. 그 순간 빛이 사람들의 얼굴 위로 떨어져요. 놀란 이들이 고개를 드는 순간, 누가 마태오인지를 두고 미술사가들은 여전히 의견이 갈려요. 수염 난 남자가 '저요?'라고 묻는 건지, 아니면 옆의 젊은이를 가리키며 '쟤요?'라고 반문하는 건지.

예수의 손에 주목한 학자들은 이 손짓이 시스티나 천장의 '아담의 창조'와 거의 같은 모양이라고 지적해요. 카라바조의 본명이 '미켈란젤로'였으니, 그 메아리는 우연이 아닐 수 있어요. 창세기에서 신이 아담에게 생명을 불어넣었다면, 복음서에서 그리스도는 마태오에게 새 삶을 불러내는 거예요.

훗날 프란치스코 교황은 젊은 시절 이 그림 앞에 자주 섰다고 말했어요. 그리고 그리스도의 뻗은 팔과 마태오의 반응을 떠올리며 이렇게 말했어요. '바로 나예요 — 주님이 시선을 돌린 죄인.' 어둠을 가른 빛 한 줄기가 사람의 마음에 닿는 그 찰나를, 카라바조는 400년이 넘도록 살아 있게 만들었어요.

이렇게 보세요
  • 어둠 속 한 줄기 빛화면 대부분이 짙은 어둠인데, 오른쪽 위에서 비스듬히 들어온 빛 한 줄기가 벽을 가르며 탁자 쪽을 비춰요. 이 빛이 곧 이야기의 주인공이에요.
  • 빛 끝의 손가락오른쪽 그늘 속에서 한 인물이 팔을 뻗어 손가락으로 탁자 쪽을 가리켜요. 빛과 손짓이 같은 방향을 향하며, 우리 시선을 부름받은 사람들에게로 데려가요.
  • '설마 저를요?'탁자에 둘러앉은 사람들 중, 수염 난 남자가 손가락으로 자기 가슴께를 가리키며 놀란 듯 고개를 들어요. 뜻밖의 부름 앞에서 되묻는 그 순간이 얼굴에 그대로 살아 있어요.
  • 돈에 빠진 사람들왼쪽 끝, 고개 숙인 사람들은 빛이 와도 아랑곳없이 탁자 위 동전에만 눈을 두고 있어요. 부름을 알아챈 이와 못 알아챈 이가 한 화면에 나뉘어요.
  • 평범한 방깃털 모자, 칼, 낡은 창틀까지 그 시대 사람들의 평범한 옷과 일상의 방이에요. 그래서 먼 옛날 성경 이야기가 바로 곁에서 일어난 일처럼 가깝게 느껴져요.

가리키는 손가락은 정말 자기 자신을 향한 걸까요, 아니면 옆 사람을 가리키는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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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을 가르는 빛

어둑한 방 안, 다섯 남자가 탁자에 둘러앉아 돈을 세고 있어요. 그때 오른쪽에서 두 사람이 들어서고, 한 줄기 빛이 어둠을 비스듬히 가르며 탁자 위로 쏟아져요. 그 빛을 따라 예수가 손을 들어 한 사람을 가리켜요. 세금을 걷던 마태오를 향해 "나를 따르라"고 부르는, 성경 속 그 찰나의 순간이에요. 카라바조가 1599년에서 1600년 사이에 그린 이 그림은, 빛과 어둠의 극적인 대비로 이야기를 전하는 바로크 회화의 걸작이에요. 화려한 천상의 광채가 아니라, 평범한 방에 들어온 한 줄기 빛이 한 사람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꾸는 순간을 비추죠. 이 그림은 로마의 산 루이지 데이 프란체시 성당 콘타렐리 예배당을 위해 그려졌고, 지금도 그 자리에 그대로 걸려 있어요.

"설마 나를요?"

이 그림에는 흥미로운 수수께끼가 하나 있어요. 다섯 사람 가운데 누가 마태오일까요? 가장 널리 받아들여지는 해석은, 수염 난 남자가 손가락으로 자기 가슴을 가리키며 "설마 저를요?"라고 되묻는 거라는 거예요. 그런데 다른 해석도 있어요. 그 남자가 사실은 탁자 끝에 고개를 숙인 채 돈에 빠져 있는 젊은이를 가리키며 "쟤를요?"라고 묻는 거라는 거죠. 카라바조가 일부러 모호하게 그렸다고 보는 이들도 있어요. 어느 쪽이든, 뜻밖의 부름을 받은 순간의 그 놀라움과 망설임이 화면 가득 생생하게 살아 있어요. 평범한 차림의 인물들과 일상적인 공간 덕분에, 먼 옛날의 성경 이야기가 마치 바로 우리 곁에서 일어난 일처럼 가깝게 느껴져요.

그리스도의 손

이 그림에서 가장 의미심장한 건 예수의 손이에요. 마태오를 가리키는 그 손의 모양은, 미켈란젤로가 시스티나 성당 천장에 그린 《아담의 창조》 속 아담의 손과 거의 똑같아요. 교회가 그리스도를 '두 번째 아담'이라 부른 것을 떠올리게 하는 장치죠. 다만 첫 번째 아담이 신에게서 생명을 받았다면, 그리스도는 마태오에게 새로운 삶을 건네는 쪽이에요. 어둠 속에서 한 줄기 빛만으로 인물을 떠오르게 하는 이 강렬한 명암법을 '테네브리즘'이라 불러요. 이 작품은 카라바조가 처음으로 맡은 큰 교회 의뢰였고, 같은 예배당에는 《성 마태오의 순교》와 《성 마태오의 영감》이 나란히 걸려 마태오의 일생을 이어 들려줘요. 훗날 교황 프란치스코는 젊은 시절 이 그림 앞에 자주 머물렀다며, "주님이 눈길을 던진 죄인, 그게 바로 나"라고 말하기도 했어요.

관람 포인트

먼저 화면 오른쪽 위에서 비스듬히 들어와 탁자를 비추는 한 줄기 빛을 따라가 보세요. 그 빛이 곧 예수의 부름이고, 이 그림의 진짜 주인공이에요. 그다음 빛이 가리키는 끝, 수염 난 남자의 손가락에 주목하세요 — 자기를 가리키는 걸까요, 아니면 옆 사람을 가리키는 걸까요? 직접 판단해 보는 것도 이 그림의 재미예요. 마태오를 부르는 예수의 손과, 《아담의 창조》 속 손을 머릿속에서 겹쳐 보시고요. 마지막으로 돈에 정신이 팔린 사람들과, 막 그들에게 닿은 빛의 대비를 보면, 평범한 일상에 갑자기 찾아온 부름의 순간이 가슴에 와닿을 거예요. 누구에게나 그런 순간이 한 번쯤 찾아오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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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라바조

카라바조는 피로 자신의 이름을 썼다 — 도망 중인 살인자가 남긴 유일한 서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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