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모의 죽음
Death of the Virg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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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ath of the Virgin is an oil on canvas painting by the Italian Baroque master Caravaggio, from c. 1604-1606. It is a depiction of the death of the Virgin Mary. It is part of the collection of the Musée du Louvre, in Paris.
카라바조가 로마에서 활동한 지 15년이 되던 무렵, 트라스테베레의 산타 마리아 델라 스칼라 성당을 위한 제단화가 의뢰되었어요. 성모의 죽음을 그려야 했지요. 카라바조는 붓을 들어 성모를 눕혔어요—소박한 붉은 드레스를 입고, 팔은 축 늘어지고, 발은 부어 퍼진 채로요. 전통적인 성인 도상에서 찾을 수 있는 장엄함이나 신성의 표지는 모두 사라졌어요. 실처럼 가는 후광 하나만 남긴 채.
교회 측은 이 그림을 받아들이지 않았어요. 당대 기록들은 이유를 제각각 전하는데, 줄리오 만치니는 카라바조가 창부를—어쩌면 자신의 정부를—성모의 모델로 썼다고 보았고, 조반니 발리오네와 잔 피에트로 벨로리도 성모의 외양이 거부 이유였다고 기록했어요. 무엇이 맞는지 단정하기는 어렵지만, 그림이 너무 날것 그대로였다는 것은 분명해요.
그 자리에는 카라바조의 추종자 카를로 사라체니의 작품이 대신 걸렸어요. 하지만 거절당한 그림은 곧 다른 운명을 맞이했어요. 피테르 파울 루벤스가 이 작품을 카라바조의 최고작 중 하나라며 적극 추천했고, 만토바 공작 빈첸초 곤차가가 구입했어요. 로마를 떠나기 전 단 일주일 남짓 일반에 공개되었는데, 복제는 엄격히 금지되었어요.
그림은 이후 영국 왕 찰스 1세의 컬렉션으로 넘어갔다가, 왕의 처형 후 매각되었고, 마침내 루이 14세의 왕실 컬렉션에 들어갔어요. 프랑스 혁명 후 국가 재산이 된 이 작품은 지금 루브르 미술관에 있어요.
제단을 꾸미기에 너무 인간적이었던 성모는, 그래서 오히려 살아남았어요. 카라바조는 이 그림이 거절당할 무렵 이미 로마에서 도망친 상태였어요. 칼부림 끝에 사람을 죽였기 때문에요. 그의 그림처럼 그의 삶도 성자와 거리가 멀었지만—그 거리가 그림을 지금도 생생하게 만들어요.
- 누인 시신 — 화면 한가운데, 붉은 옷의 마리아가 침상에 힘없이 누워 있어요. 툭 젖혀진 머리와 늘어뜨린 팔이 천상의 기적 없는 진짜 죽음을 보여 주지요.
- 맨발 — 화면 앞쪽으로 향한 두 맨발을 보세요. 부어오른 채 드러난 발이, 이 죽음이 얼마나 가난하고 사실적인지를 단번에 말해 줘요.
- 가려진 얼굴 — 둘러싼 사도들이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고개를 숙여요. 표정을 감춤으로써 오히려 더 깊어지는 침묵의 오열이 흐르지요.
- 붉은 휘장 — 위쪽에 핏빛 붉은 천이 무대의 막처럼 드리워져요. 어두운 화면 전체에서 이 붉은색이 드라마를 한껏 끌어올린답니다.
- 빛의 길 — 앞쪽 웅크린 여인의 환한 등에서 시작된 빛이 마리아의 얼굴을 지나 어둠 속 사도들에게로 빨려 들어가요.
이 어둠 속에서, 당신의 눈은 어디에 가장 먼저 닿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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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당이 거부한 그림
카라바조가 1604년 무렵 그린 이 《성모의 죽음》은, 의뢰한 성당이 인수를 거부한 것으로 유명한 그림이에요. 교황청 변호사 라에르치오 케루비니가 트라스테베레의 카르멜회 산타 마리아 델라 스칼라 성당에 있는 자신의 예배당을 위해 주문했지요. 그런데 완성된 그림을 본 성당 신부들은 '예배에 적합하지 않다'며 받기를 거절했어요. 전하는 이야기로는, 줄리오 만치니는 카라바조가 성모의 모델로 매춘부를, 어쩌면 자신의 정부를 썼다고 했고, 다른 이들은 성모의 모습 자체가 너무 적나라하다는 점을 문제 삼았다고 해요. 결국 이 그림은 카라바조의 추종자 카를로 사라체니의 작품으로 교체되고 말았답니다. 카라바조는 로마에서 이미 십오 년을 일해 온 무르익은 화가였지만, 거리에서의 잦은 싸움 끝에 한 사내를 칼로 찔러 죽이고 로마를 떠나, 이 그림이 공개될 무렵엔 다시 그곳에 돌아오지 못하는 처지였지요.
신성을 비운 죽음
무엇이 그토록 파격이었을까요. 카라바조는 성모의 거룩함을 나타내는 전통적 도상을 깡그리 걷어 냈어요. 천상의 영광도, 승천하는 기적도 없어요. 인물들은 거의 실물 크기인데, 마리아는 그저 소박한 붉은 옷을 입고 침상에 힘없이 누워 있어요. 툭 젖혀진 머리와 늘어뜨린 팔, 부어오른 채 벌어진 맨발이 인간의 죽음을 날것 그대로 보여 주지요. 경건한 신앙화에 으레 담기던 공손한 표현은 이 버려진 듯한 몸 어디에도 남아 있지 않아요. 거룩함을 알리는 건 실처럼 가느다란 후광 하나뿐이지요. 이 그림이 그려질 무렵 마리아의 승천 교리는 아직 정식으로 선포되기 전이었지만, 17세기 들어 대다수 화가들은 성모가 고통 없이 산 채로 승천했다고 그렸어요. 그래서 마리아를 분명한 '시신'으로 그린 이 작품은, 성모를 또렷이 죽은 모습으로 담은 마지막 주요 가톨릭 미술로 꼽힌답니다.
침묵하는 슬픔
화면은 중앙에 누인 마리아를 중심으로 짜여 있어요. 막달라 마리아와 사도들이 슬픔에 짓눌린 채 그를 둘러싸고, 뒤편으로 또 다른 이들이 천천히 모여들지요. 흥미로운 건 카라바조가 큰 슬픔을 더 격한 표정이 아니라 '얼굴을 가리는 것'으로 표현했다는 점이에요. 곡소리 요란한 통곡 대신, 얼굴 없는 침묵의 오열이 흐르지요. 빛과 그림자의 처리 역시 절묘해서, 앞쪽 막달라 마리아의 목덜미에서 시작된 시선이 마리아의 얼굴을 지나 사도들의 손과 머리로 깊숙이 빨려 들어가요. 화면 위쪽에 드리운 핏빛 붉은 휘장은 무대의 막처럼 드라마를 한층 끌어올린답니다.
관람 포인트
먼저 마리아의 맨발을 보세요. 부어오른 채 화면 밖으로 향한 두 발이, 이 죽음이 얼마나 사실적이고 가난한지를 단번에 말해 줘요. 다음으로 그를 둘러싼 이들의 가려진 얼굴을 살펴보세요. 표정을 감춤으로써 오히려 더 깊어지는 슬픔의 역설을 느낄 수 있을 거예요. 그리고 마리아의 머리 위, 거의 보이지 않는 실 같은 후광을 찾아보세요. 이 작은 선 하나가 그가 성모임을 알려 주는 유일한 표식이랍니다. 끝으로 위쪽의 붉은 휘장이 빚어내는 무대 같은 효과를 음미해 보세요. 루벤스가 카라바조 최고의 작품으로 꼽으며 만토바 공작에게 사들이도록 추천했던 이 그림은, 지금 파리 루브르 박물관에 걸려 있답니다.

어둠을 가른 빛 한 줄기와 뻗은 손 — 미켈란젤로의 창조가 울려 퍼졌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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