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란 옷을 입은 소년
The Blue Boy
- 분류
- Paintings
- 지역
- 서양
- 라이선스
- Public domain (Wikimedia Commons)
《파란 옷을 입은 소년》(The Blue Boy, 1770년경)은 토머스 게인즈버러가 그린 전신 유화 초상화로, 캘리포니아주 샌마리노에 있는 헌팅턴 도서관이 소장하고 있다.
18세기 영국 화단에는 공공연한 규칙이 있었어요. 왕립미술원 원장 조슈아 레이놀즈 경은 강의에서 단언했죠. '화면의 빛은 반드시 따뜻한 색조—노랑, 빨강, 황백색—이어야 하며, 파랑이나 초록은 그 열기를 받쳐 주는 보조 색에 그쳐야 한다.' 학계가 앞다퉈 따르던 권위 있는 가르침이었어요.
그런데 토머스 게인즈버러는 달랐어요. 궁정 초상화 주문도 마다하고 왕립미술원 행사에도 나타나지 않던 그가, 온통 파란 새틴 의상을 걸친 소년 한 명을 캔버스 가득 세워 놓았어요. 17세기 반다이크 풍의 복고 의상을 입은 이 소년은 누구인지조차 논란이에요. 오랫동안 부유한 철물상의 아들 조너선 버텀이라 알려졌지만, 최근 연구는 게인즈버러의 조카 게인즈버러 듀퐁일 가능성을 더 높게 봐요.
훗날 이 그림이 레이놀즈의 강의에 '대항'하여 그려졌다는 이야기가 널리 퍼졌어요. 두 화가의 대조적인 성격—규율의 레이놀즈 대 자유로운 게인즈버러—이 사람들의 상상을 자극한 거예요. 사실 그림은 레이놀즈의 강의보다 8년 앞서 완성됐지만, '너무 좋은 이야기'라 아무도 포기하지 않았고, 그 덕에 그림은 국제적 명성을 얻었어요.
세월이 흘러 1921년, 캘리포니아 철도 재벌 헨리 에드워드 헌팅턴이 웨스트민스터 공작에게 이 그림을 사들였어요. 영국을 떠나기 전 런던 내셔널갤러리에 잠깐 공개됐을 때 무려 9만 명이 작별 인사를 하러 왔어요. 지금 이 소년은 미국 캘리포니아 헌팅턴 미술관에 소장돼 있어요. 파랑이 절대 중심이 될 수 없다던 시대에, 가장 파란 그림이 가장 멀리 여행한 셈이에요.
- 온통 파랑 — 화면 한가운데를 차지한 청색 새틴 옷이 먼저 눈을 끌어요. 빛을 받은 어깨와 무릎은 은빛으로 반짝이고, 옷 주름의 골은 깊은 남색으로 가라앉아 같은 파랑인데도 결이 살아 있죠.
- 차가움과 따뜻함 — 뒤편 풍경은 온통 흐릿한 갈색과 황토빛이에요. 그 따뜻한 어둠 덕분에 차가운 파랑의 소년이 한 발 앞으로 튀어나온 듯 도드라져요.
- 당당한 자세 — 한 손은 허리에 척 얹고 다른 손엔 깃털 달린 검은 모자를 늘어뜨려 들었어요. 어린 나이인데도 어른스러운 위엄이 자세에 배어 있죠.
- 발끝의 표정 — 시선을 아래로 내려보면 무릎 아래 양말과 신발에 묶인 파란 리본 매듭이 보여요. 화려한 상의에 호응하듯 발끝까지 빈틈없이 차려입었네요.
이 소년의 눈빛, 당신에겐 자신감으로 보이나요 아니면 어딘가 쓸쓸함이 비치나요?
도슨트 심화더 깊이 보기 ↓접기 ↑
온통 파란색
화려한 청색 새틴 옷을 차려입은 한 소년이, 자연스러운 야외 풍경을 배경으로 당당하게 서 있어요. 18세기 영국 초상화의 거장 토머스 게인즈버러가 1770년 무렵에 그린 전신 초상화예요. 거의 실물 크기인 이 그림은, 게인즈버러가 먼저 다른 그림을 그렸다 지운 캔버스 위에 새로 그린 것이기도 해요. 그림의 주인공이 누구인지는 지금도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어요. 오랫동안 철물상의 아들 조너선 버탈로 여겨졌지만, 게인즈버러의 조카 게인즈버러 뒤퐁이라는 주장도 있죠. 사실 이 그림은 한 인물의 초상인 동시에, 17세기풍 의상을 입혀 옛 거장에게 바치는 일종의 '의상 연구'이기도 해요. 소년이 입은 옷은 게인즈버러가 깊이 존경하던 화가 반 다이크의 초상화 속 소년들을 떠올리게 하죠.
레이놀즈에 맞선 그림?
이 그림에는 유명한 이야기가 하나 따라다녀요. 게인즈버러가 라이벌이던 조슈아 레이놀즈의 가르침에 맞서려고 일부러 이 그림을 그렸다는 설이에요. 왕립미술원장이던 레이놀즈는 "그림에서 밝은 부분은 늘 노랑이나 빨강 같은 따뜻한 색이어야 하고, 파랑이나 초록 같은 찬 색은 그것을 받쳐 주는 데만 써야 한다"고 강의했거든요. 그런데 게인즈버러는 화면 한가운데를 온통 차가운 파랑으로 채워, 그 가르침을 보란 듯이 뒤집은 것처럼 보였죠. 다만 사실 이 그림은 레이놀즈의 그 강의보다 8년이나 앞서 완성됐어요. 이야기는 사실이 아니었지만, 너무 그럴듯해서 사람들은 그 이야기를 놓지 않았고, 덕분에 이 그림은 오히려 더 유명해졌어요.
대서양을 건넌 소년
이 그림은 여러 손을 거치며 점점 더 큰 명성을 얻었어요. 19세기 내내 영국 귀족 그로스베너 가문이 소장하며 여러 전시에 빌려주었고, 그때마다 평소 미술에 관심 없던 사람들까지 이 '파란 소년' 앞으로 모여들었죠. 도자기 인형과 광고, 무도회 의상으로까지 끝없이 복제되며 영국에서 가장 사랑받는 그림이 되었어요. 그러다 1921년, 이 그림은 미국의 철도 부호 헨리 헌팅턴에게 팔려 대서양을 건너게 돼요. 영국을 떠나기 전 런던 내셔널 갤러리에 잠시 전시됐을 때는 무려 9만 명이 작별 인사를 하러 찾아왔고, 그 상실감은 노래와 공연의 소재가 되기도 했어요. 그리고 정확히 100년 뒤인 2022년, 이 그림은 떠난 바로 그날에 맞춰 잠시 런던으로 돌아와 전시되기도 했죠. 지금은 미국 캘리포니아의 헌팅턴 미술관에 자리하고 있어요.
관람 포인트
먼저 소년이 입은 청색 옷에 빛이 어떻게 부서지는지 보세요. 게인즈버러는 단 하나의 파랑이 아니라, 은빛으로 반짝이는 부분부터 깊은 남색 그늘까지 수많은 푸른 색조로 새틴의 광택을 살려 냈어요. 그다음 그 차가운 파랑이, 뒤편의 따뜻한 갈색 풍경과 어떻게 대비를 이루며 소년을 도드라지게 하는지 눈여겨보시고요. 한 손은 허리에 얹고 다른 손엔 깃털 달린 모자를 든 당당한 자세도 살펴보세요. 마지막으로 이 그림이 영국에서 태어나 대서양을 건너 캘리포니아에 자리 잡았다는 사연을 떠올리면, 한 폭의 초상화가 품은 긴 여정이 새삼 흥미롭게 다가올 거예요.

자기 영지 앞에 앉은 젊은 부부, 부인의 무릎만 홀로 텅 비어 있다.
이어 보기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