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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몽

The Nightmare

헨리 푸젤리

분류
Paintings
지역
서양
라이선스
Public domain (Wikimedia Commons)
작품 소개

《악몽》(The Nightmare)은 1781년 스위스 출신 영국 화가 헨리 푸젤리의 유화이다. 팔을 아래로 던진 채 깊은 잠에 빠져 악몽을 꾸는 여인이 그려져 있으며, 거의 숨겨진 말(악마를 뜻하는 "나이트메어")이 지켜보는 가운데 악마 또는 유인원 같은 인큐버스가 여인의 가슴 위에 웅크리고 있다. 이 작품은 강박관념을 에로틱하고 생생하게 그려내어 푸젤리에게 획기적인 성공을 가져다주었다. 비평가들은 노골적인 성적 표현에 놀라워했으며, 이는 이후 분석심리학의 창시자인 카를 융의 무의식에 대한 생각을 예견한 것으로 해석되었다.

도슨트 이야기

1781년, 푸젤리는 잊을 수 없는 한 여인을 생각하며 붓을 들었습니다. 취리히에서 만난 안나 란트홀트는 친구의 조카였고, 그는 1779년 그녀에 대한 뜨거운 감정을 편지에 쏟아냈어요. 하지만 란트홀트의 아버지는 청혼을 받아들이지 않았고, 그녀는 곧 다른 남자와 결혼했습니다. '악몽'은 그 잃어버린 사랑의 초상이었어요.

화면 속 여인은 침대 끝에 축 늘어져 있습니다. 목이 드러나도록 고개를 뒤로 젖힌 채, 두 팔은 힘없이 아래로 늘어졌어요. 그 가슴 위에는 유인원을 닮은 악령이 웅크리고 앉아 관람자를 정면으로 바라봅니다. 그리고 커튼 사이를 비집고 눈동자 없는 흰 눈의 말이 고개를 들이밀고 있어요. '나이트메어(nightmare)'는 밤(night)과 고통을 주는 여성 정령 '마라(mara)'가 합쳐진 말입니다. 말(mare)과 발음이 겹치는 이 단어를 푸젤리는 시각적 언어유희로 화폭에 새겨 넣었어요.

1782년 왕립 아카데미에 처음 걸렸을 때, 이 그림은 당혹스럽고 매혹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졌습니다. 노골적인 에로티시즘에 비평가들은 충격을 받았지만, 작품은 삽시간에 유명해졌어요. 조각이 나돌았고, 나폴레옹·윌리엄 피트 같은 정치인들을 조롱하는 풍자화에도 같은 구도가 쓰였습니다.

프로이트의 빈 자택에는 이 그림의 복제가 걸려 있었고, 칼 융도 저서에 이 작품을 실었습니다. 푸젤리는 일찍이 '꿈은 예술이 가장 덜 탐험한 영역 중 하나'라고 했어요. 그 말처럼, 이 그림은 의식과 무의식의 경계를 넘나들며 240년이 넘도록 보는 이를 끌어당기고 있습니다.

이렇게 보세요
  • 늘어진 몸흰옷의 여인이 침대 끝으로 머리를 떨군 채 상체를 거꾸로 늘어뜨렸어요. 길게 드러난 목과 힘없이 바닥으로 흘러내린 팔이 무력함의 절정이지요.
  • 가슴 위의 악마그 가슴 위에 원숭이 같은 인큐버스가 웅크려 앉아 우리를 빤히 노려봐요. 그 시선 때문에 보는 우리까지 이 악몽 속으로 끌려드는 듯하지요.
  • 어둠 속의 말화면 왼쪽, 붉은 휘장이 갈라진 틈에서 동공 없는 말 한 마리가 불쑥 고개를 내밀어요. '나이트메어'라는 말장난을 화면 위에 새긴 장치랍니다.
  • 부딪치는 명암잠든 여인의 환한 살빛과 흰 천이, 짙은 붉은빛으로 가라앉은 배경과 강렬하게 맞부딪쳐요. 그 극적인 대비가 공포를 빚어내지요.
  • 방 안의 소품침대 곁 작은 탁자 위에 거울과 약병이 놓여 있어요. 세련된 실내의 일상 한가운데로, 이 악몽이 불쑥 찾아든 셈이지요.

이 장면은 여인이 꾸는 꿈일까요, 아니면 실제로 일어나는 일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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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의식을 앞서 본 스위스 화가

헨리 푸젤리는 스위스 출신으로 영국에서 활동한 화가예요. 본래 목사로 서품까지 받은 사람이었지만, 그의 상상력은 성경의 테두리를 훌쩍 넘어 꿈과 환상, 어두운 욕망의 세계로 뻗어 나갔지요. 《악몽》은 1781년에 그린 유화로, 푸젤리에게 평생 잊지 못할 성공을 안겨 준 작품이에요. 한 여인이 침대에 몸을 축 늘어뜨린 채 깊은 잠에 빠져 있고, 그 가슴 위에는 악마 같은 인큐버스가 웅크려 앉아 우리를 빤히 노려보지요. 어둠 속에서는 눈먼 말 한 마리가 불쑥 고개를 내밀고요.

푸젤리는 그전까지 런던 왕립 아카데미에 여러 번 출품했지만 별다른 반응을 얻지 못했어요. 그런데 1782년 전시에서 이 그림을 선보이자, 비평가들은 경악과 매혹이 뒤섞인 반응을 보였답니다. 노골적인 성적 분위기에 다들 흠칫했지만, 바로 그 충격 덕분에 《악몽》은 그의 첫 상업적 성공작이 되었어요. 인기가 얼마나 대단했던지 화가가 직접 여러 다른 버전을 그렸고, 판화로도 널리 퍼져 나갔지요.

빛과 어둠으로 빚은 공포

이 그림이 으스스한 까닭은 화면 구성에 있어요. 잠든 여인의 환한 살빛이, 짙은 붉은색과 황토색으로 가라앉은 배경과 강렬하게 부딪치지요. 푸젤리는 키아로스쿠로, 곧 명암의 극적인 대비로 빛과 그늘을 또렷이 갈라 놓았답니다. 방 안은 당시 유행하던 세련된 실내인데, 작은 탁자 위에는 거울과 약병, 책이 놓여 있어요. 침대 뒤로는 붉은 벨벳 휘장이 드리워져 있고, 그 갈라진 틈에서 동공 없는 말의 머리가 불쑥 솟아오릅니다.

흥미롭게도 이 말은 처음부터 있던 게 아닐지도 몰라요. 밑그림 격인 초기 스케치에는 말이 보이지 않거든요. 푸젤리가 나중에 덧붙인 것으로 보이는데, 이는 영어 단어 '나이트메어(nightmare)'에 담긴 '메어(mare, 암말)'를 시각적으로 풀어낸 일종의 말장난이랍니다. 으스스한 분위기를 한층 짙게 만드는 영리한 장치이기도 하지요.

가위눌림과 이루지 못한 사랑

'악몽'이라는 말의 뿌리를 따라가면 흥미로운 이야기가 나와요. 영어 'nightmare'는 잠든 이를 짓누르고 숨 막히게 한다는 스칸디나비아 신화 속 정령 '마라(mara)'에서 비롯되었어요. 옛사람들이 겪던 가위눌림, 곧 가슴을 짓누르는 무게감과 몸을 움직일 수 없는 마비, 숨 막히는 공포가 이 그림 안에 고스란히 담겨 있는 셈이지요. 혼자 잠든 이를 악마나 마녀가 찾아온다는 게르만족의 민담도 그 바탕에 깔려 있답니다.

이 그림에는 화가의 개인사도 어른거려요. 푸젤리는 취리히에서 안나 란트홀트라는 여인에게 마음을 빼앗겼지만, 그 사랑은 끝내 이루어지지 못했고 그녀는 다른 사람과 결혼해 버렸어요. 미술사가 H. W. 잰슨은 잠든 여인이 바로 안나이고, 가슴 위의 악마는 푸젤리 자신이라고 해석한답니다. 실제로 이 그림 캔버스 뒷면에는 그녀로 짐작되는 미완성 소녀 초상이 그려져 있어, 그 짐작에 무게를 더해 주지요.

관람 포인트

먼저 잠든 여인의 자세를 살펴보세요. 침대 끝으로 머리를 떨군 채 길게 드러난 목과, 힘없이 늘어진 팔이 빚어내는 무력함이 그림 전체의 불안을 떠받친답니다. 다음으로 그 가슴 위에 웅크린 인큐버스의 눈길을 마주해 보세요. 우리를 똑바로 노려보는 그 시선 때문에, 보는 사람마저 이 악몽 속으로 끌려 들어가는 듯하지요. 그리고 붉은 휘장이 갈라진 틈에서 솟아오른 눈먼 말의 머리를 찾아보세요. 동공 없는 그 눈이 '나이트메어'라는 말장난을 화면 위에 새겨 놓습니다. 마지막으로 환한 살빛과 어두운 배경이 맞부딪치는 경계를 천천히 훑어보시면, 무의식의 어둠을 한 세기나 앞서 들여다본 푸젤리의 상상력이 생생히 느껴지실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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