앤드류씨 부부
Mr and Mrs Andrews
- 분류
- Paintings
- 지역
- 서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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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lic domain (Wikimedia Commons)
Mr and Mrs Andrews is an oil on canvas portrait of about 1750 by Thomas Gainsborough, now in the National Gallery, London. Today it is one of his most famous works, but it remained in the family of the sitters until 1960 and was very little known before it appeared in an exhibition in Ipswich in 1927, after which it was regularly requested for other exhibitions in Britain and abroad, and praised by critics for its charm and freshness. By the post-war years its iconic status was established, and it was one of four paintings chosen to represent British art in an exhibition in Paris celebrating the Coronation of Queen Elizabeth II in 1953. Soon the painting began to receive hostile scrutiny as a paradigm of the paternalist and capitalist society of 18th-century England, but it remains a firm popular favourite.
1750년, 스물세 살의 토머스 게인즈버러는 고향 서퍽으로 돌아와 초상화로 생계를 잇고 있었습니다. 그 무렵 의뢰가 들어왔어요. 막 결혼한 로버트 앤드류스와 프랜시스 앤드류스 부부를 그려달라는 요청이었지요. 로버트는 스물두 살, 프랜시스는 열여섯 살로 1748년 11월 서드버리에서 혼례를 치렀습니다.
게인즈버러는 두 사람을 실내가 아닌 드넓은 영지 앞에 세웠습니다. 로버트는 총을 들고 나무에 기댄 채 편안하게 서 있고, 프랜시스는 로코코 양식 벤치에 등을 꼿꼿이 세우고 앉아 있어요. 뒤로 펼쳐진 밀밭은 당시 혁신 농법인 제스로 툴의 씨앗 파종기로 가꾼 모습이고, 저 멀리로는 두 사람이 결혼식을 올린 교회 첨탑도 보입니다. 로버트가 소유한 땅을 이만큼이나 화면에 담은 초상화는 이 시기 게인즈버러 작품 중 드문 경우예요.
그런데 프랜시스의 무릎 위에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파란 드레스가 칠해지지 않은 채 밝은 바탕이 그대로 남아 있어요. 꿩을 올려놓으려 했다는 설, 자수 바구니라는 설, 아직 태어나지 않은 아이라는 설 등 여러 추측이 있지만 정확한 이유는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1751년 첫째 딸이 태어났고, 두 사람은 9명의 자녀를 두었지요.
그림은 1960년이 돼서야 후손의 손을 떠나 세상에 알려졌고, 런던 내셔널 갤러리가 사들였습니다. 빈 무릎이 뭘 담으려 했는지 우리는 여전히 모릅니다. 그 비어 있음이 오히려 이 그림을 오래 들여다보게 만드는 이유일지도 몰라요.
- 둘로 나뉜 화면 — 왼쪽엔 떡갈나무 아래 자리한 부부가, 오른쪽엔 황금빛 들판이 끝없이 펼쳐져요. 초상화와 풍경화가 한 화면에서 만나지요.
- 엇갈린 자세 — 남편은 총을 끼고 다리를 꼰 채 느긋이 기대섰는데, 부인은 푸른 드레스 차림으로 벤치에 꼿꼿이 앉았어요. 두 태도가 묘하게 어긋나죠.
- 가지런한 이랑 — 오른쪽 밀밭의 줄이 자로 잰 듯 가지런해요. 새 파종기로 일군 현대적인 농장이라는, 말 없는 자랑이랍니다.
- 비워 둔 자리 — 부인의 무릎께를 보면 푸른 천이 칠해지지 않은 빈자리가 있어요. 무언가 들어갈 뻔하다 끝내 비워진, 수수께끼 같은 공백이죠.
- 뒤엉킨 하늘 — 인물 위쪽 떡갈나무 너머로 회색 구름이 무겁게 몰려와요. 오른쪽 햇살 든 들판과 사뭇 다른 기운이 감돌죠.
이 두 사람은 자연 속에 머무는 걸까요, 아니면 자기 땅을 내려다보며 서 있는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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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물세 살 화가의 고향 그림
토머스 게인즈버러가 이 그림을 그린 1750년 무렵, 그는 겨우 스물세 살이었어요. 런던에서 프랑스 화가 그라블로에게 로코코 양식을 배우고, 임신한 아내 마거릿과 함께 고향 서퍽의 서드베리로 막 돌아온 참이었지요. 그림 속 부부 로버트 앤드루스와 프랜시스 역시 같은 고장 사람이었어요. 로버트는 화가와 같은 문법학교를 두 살 터울로 함께 다닌 사이였답니다. 두 사람은 1748년 11월, 스물둘과 열여섯의 나이로 혼인했어요. 그림 속 너른 들판은 신부의 지참금에 포함된 영지로, 신혼의 두 사람이 막 손에 넣은 땅이었지요.
초상화이면서 풍경화
이 그림은 무척 보기 드문 작품이에요. 당시 흔하던 두 가지 그림, 곧 부부를 담은 이중 초상화와 영국 시골 풍경화를 나란히 한 화면에 결합했거든요. 게인즈버러는 평생 이 두 갈래를 오갔지만, 가로로 길게 뻗은 이런 구도로 둘을 맞붙인 건 그의 작품을 통틀어 이 한 점뿐이랍니다. 사실 그는 잘 팔리는 초상화가 자신이 진정 사랑하는 풍경화로부터 자꾸 자기를 떼어 놓는다고 불평하곤 했어요. 그러니 이 너른 들판은, 어쩌면 풍경을 향한 그의 갈망과 땅을 자랑하고 싶던 의뢰인의 바람이 함께 빚어낸 결과일지도 몰라요.
흥미롭게도 화면 속 밀밭은 가지런한 평행 이랑으로 그려져 있어요. 이는 제스로 툴이 발명한 혁신적인 파종기로 일군 밭이라는 표시예요. 더없이 현대적이고 효율적인 농장이라는 뜻이지요. 농사에 진심이던 로버트의 생각이 반영되었을 거예요. 부부가 기댄 떡갈나무도 그저 배경이 아니랍니다. 떡갈나무는 영국다움과 안정, 대를 이어 이어지는 가문의 연속성을 상징하니까요.
비워 둔 자리, 그리고 엇갈린 평가
프랜시스의 무릎께를 자세히 보면, 푸른 드레스로 칠하지 않고 비워 둔 자리가 있어요. 갈색 붓질 하나가 남아 있어서, 오래도록 그곳에 수꿩을 그려 넣으려 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져요. 하지만 자수 도구나 책, 부채, 무릎 위 강아지, 혹은 곧 태어날 아기를 위한 자리였을 수도 있지요. 부부의 첫아이인 딸은 이듬해인 1751년에 태어났답니다.
이 그림은 1748년 혼인한 부부의 영지에서 막 손에 넣은 땅을 자랑하지만, 정작 세상에 알려진 건 한참 뒤예요. 1960년까지 후손의 손에 머물렀고, 1927년 입스위치 전시에 나오기 전까지는 거의 알려지지 않았지요. 그러다 매력과 신선함으로 평론가들의 사랑을 받아, 1953년 엘리자베스 2세 대관식을 기념하는 파리 전시에서 영국 미술을 대표하는 네 점 중 하나로 뽑히기도 했답니다. 하지만 훗날 존 버거 같은 비평가는 이들이 '자연 속의 한 쌍이 아니라 땅을 소유한 지주'이며, 주위를 향한 소유욕이 자세와 표정에 드러난다고 비판했어요. 반면 어떤 이는 이 그림을 두고 황금빛 들판과 푸른 숲을 향한 화가의 애정이 담긴, '미술사에서 가장 톡 쏘면서도 서정적인 그림'이라 불렀답니다.
관람 포인트
먼저 화면을 좌우로 나누어 보세요. 왼쪽엔 떡갈나무 아래 자리한 부부가, 오른쪽엔 황금빛 밀밭이 끝없이 펼쳐지지요. 초상화와 풍경화가 한자리에 만나는 이 보기 드문 결합을 음미해 보세요. 다음으로 밀밭의 가지런한 이랑을 살펴보세요. 새 파종기로 일군 그 줄들이, 부부가 가진 농장의 현대적인 자부심을 말없이 전한답니다. 두 사람의 자세도 견주어 보세요. 로버트는 사냥 외투를 헐겁게 걸친 채 느긋이 서 있는데, 프랜시스는 꼿꼿이 곧추앉아 있지요. 마지막으로 프랜시스의 무릎 위 비워 둔 자리를 찾아보세요. 무엇이 들어갈 뻔했을까, 그 빈자리가 오히려 상상을 불러일으킨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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