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먼 소녀
The Blind Gi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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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Blind Girl is an oil on canvas painting by John Everett Millais, from 1856. It depicts two itinerant beggars, presumed to be sisters, one of whom is a blind musician, her concertina on her lap. They are resting by the roadside after a rainstorm, before travelling to the town of Winchelsea, visible in the background.
소녀의 목에는 '눈먼 이를 불쌍히 여기소서'라는 팻말이 걸려 있습니다. 곁에는 아마 자매일 여자아이가 함께 앉아 고개를 돌리고 있어요. 빗속을 걸어온 두 사람은 길가에서 잠시 쉬고 있고, 그 뒤로 막 갠 하늘에 쌍무지개가 피어올랐습니다.
그런데 정작 그 무지개를 보는 사람은 눈 뜬 소녀뿐입니다. 눈먼 소녀는 얼굴을 들어 햇볕을 느끼고, 손가락으로 풀잎을 어루만지고 있어요. 그녀의 어깨 위에는 나비 한 마리가 앉아 있는데, 밀레이는 그 나비를 통해 그녀가 얼마나 고요히 앉아 있는지를 보여 줍니다.
1856년 처음 전시됐을 때, 그림에 대한 지적이 하나 들어왔습니다. 쌍무지개에서 바깥 무지개는 색의 순서가 안쪽과 반대여야 하는데, 밀레이가 같은 순서로 그렸다는 것이었어요. 그는 지적을 받아들여 실제로 바깥 무지개의 색 순서를 바꿔 수정했습니다. 화가가 그림을 완성한 뒤에도 과학적 사실 앞에서 붓을 다시 든 거예요.
이 그림은 감각의 대비를 이야기합니다. 빛과 색을 보지 못하는 소녀는 대신 온기와 촉감과 소리로 세계를 만집니다. 우리가 당연하게 보아 넘기는 무지개가, 그녀에게는 영영 닿지 않는 것으로 남아 있어요.
- 기댄 두 머리 — 붉은 머리의 언니는 눈을 감고 햇볕을 향해 고개를 들고, 금발 동생은 그 어깨에 폭 기대 두 사람이 하나의 덩어리처럼 묶여요.
- 엇갈린 시선 — 동생만이 손을 들어 무언가를 가리며 하늘을 올려다보고, 언니의 두 눈은 끝내 감겨 있어 같은 자리에서 서로 다른 세상을 만나지요.
- 무릎의 손풍금 — 언니 무릎엔 작은 손풍금이 놓이고 그 위에 두 손을 가만히 모았어요. 거리에서 연주하며 사는 삶이 손끝에 담겼지요.
- 뒤편의 쌍무지개 — 짙은 초록 들판 위로 두 겹 무지개가 떠올라, 보지 못하는 언니의 등 뒤에서 가장 눈부신 빛이 펼쳐지는 애틋한 대비를 만들어요.
- 노란 들판 — 화면 전체가 비 갠 뒤 물기 머금은 샛노란 풀밭으로 차 있고, 멀리 양 떼와 마을이 또렷이 박혀 있네요.
보지 못하는 사람 뒤에 가장 아름다운 무지개를 둔 화가는,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고 싶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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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갠 길가의 두 자매
1856년, 라파엘전파의 화가 존 에버렛 밀레이는 떠돌이 걸인으로 보이는 두 소녀를 화폭에 담았어요. 자매로 짐작되는 둘 가운데 언니는 눈먼 거리의 악사로, 무릎 위엔 작은 손풍금 콘서티나가 놓여 있지요. 막 지나간 소나기 뒤, 두 사람은 길가에 잠시 앉아 쉬고 있답니다. 저 멀리 배경에는 이들이 향하는 마을 윈첼시가 보여요.
언니의 목에는 작은 팻말이 걸려 있는데, 거기엔 '눈먼 이를 가엾이 여겨 주세요'라는 글귀가 적혀 있답니다. 떠돌이 악사로 살아가는 두 자매의 고단한 처지가, 이 짧은 한 줄에 고스란히 담겨 있지요.
보는 것과 보지 못하는 것
이 그림은 흔히 '감각의 알레고리'로 읽혀요. 눈먼 언니와 앞을 보는 동생, 두 자매의 서로 다른 경험을 나란히 견주기 때문이지요. 언니는 얼굴에 와 닿는 햇볕의 따스함을 느끼고, 손끝으로 가만히 풀잎을 어루만져요. 보는 대신 다른 감각으로 세상을 받아들이는 거예요. 한편 동생은 햇빛인지 빗방울인지로부터 눈을 가리며, 막 떠오른 쌍무지개를 올려다보고 있지요.
바로 이 쌍무지개가 그림의 가장 애틋한 대목이에요. 동생은 그 눈부신 아름다움에 고개를 돌리지만, 눈먼 언니는 끝내 그것을 볼 수가 없으니까요. 어떤 평론가들은 이 무지개를 성경 창세기 9장에 나오는 하느님의 언약, 그 증표로 읽기도 한답니다. 보지 못하는 이의 곁에 떠오른 약속의 무지개라니, 그 대비가 더없이 깊은 여운을 남기지요.
그래서 이 그림은 단순한 풍경이 아니라, 눈먼 이와 보는 이가 세상을 받아들이는 두 갈래 방식에 관한 조용한 명상이기도 해요. 한쪽은 햇볕의 온기와 풀잎의 감촉으로, 다른 한쪽은 눈부신 무지개의 빛깔로 같은 세상을 만나지요. 보는 일이 전부가 아님을, 밀레이는 이 한 화면에 담담히 담아 두었답니다.
라파엘전파의 정직한 눈
밀레이는 자연을 그릴 때 한 치의 거짓도 없으려 했어요. 그런 정직함을 보여 주는 일화가 있답니다. 1856년 이 그림이 처음 전시되었을 때, 누군가 밀레이에게 쌍무지개에서는 바깥쪽 무지개가 안쪽과 색의 순서가 뒤집힌다는 사실을 일러 주었어요. 본디 밀레이는 두 무지개를 같은 색 순서로 그려 두었는데, 그 지적을 듣고는 과학적으로 정확하도록 곧바로 색을 고쳐 칠했지요.
또 하나, 눈먼 언니의 숄 위에는 작은멋쟁이나비 한 마리가 앉아 있어요. 이 작은 나비는 그가 얼마나 미동도 없이 가만히 앉아 있는지를 말없이 일러 준답니다. 라파엘전파다운 세심한 관찰이지요.
관람 포인트
먼저 두 자매의 시선이 어디를 향하는지 견주어 보세요. 동생은 무지개를 올려다보고, 언니는 눈을 감은 채 햇볕과 풀잎으로 세상을 느끼고 있답니다. 뒤편의 쌍무지개에서는 안쪽과 바깥쪽 무지개의 색 순서가 서로 뒤집혀 있는지 살펴보세요. 밀레이가 일부러 고쳐 칠한, 과학적으로 정확한 무지개니까요. 언니의 숄 위에 살포시 앉은 작은 나비도 찾아보세요. 그가 얼마나 숨죽인 듯 가만히 있는지를 일러 주는 표시랍니다. 마지막으로 언니의 목에 걸린 작은 팻말을 들여다보세요. '눈먼 이를 가엾이 여겨 주세요'라는 그 한 줄을 읽고 나면, 이 고요한 풍경 속에 깃든 삶의 무게가 새삼 마음에 와 닿을 거예요.

욕조 속 모델이 감기에 쓰러지도록, 화가는 붓을 놓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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