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필리아
Ophel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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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필리아》(Ophelia)는 영국의 화가 존 에버렛 밀레이가 1851년~1852년에 그린 그림으로, 현재 런던 테이트 브리튼에 소장되어 있다. 이 그림은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희곡 《햄릿》의 등장인물인 오필리아가 강에 빠져 죽기 전에 노래를 부르는 모습을 묘사하고 있다.
1851년 여름, 밀레이는 영국 서리주 호그스밀 강가에 자리를 잡았어요. 그는 하루 열한 시간씩, 주 6일, 다섯 달에 걸쳐 그 자리를 지켰어요. 강물에 날벌레가 달려들고, 지주에게 불법 침입으로 고소 위협을 받고, 바람에 물에 빠질 뻔하면서도요.
풍경이 완성되자 이번엔 인물을 그릴 차례였어요. 모델은 스물두 살의 엘리자베스 시달이었어요. 밀레이는 그녀를 런던 고워 스트리트 작업실의 욕조에 눕혀 완전히 옷을 입힌 채 포즈를 잡게 했어요. 욕조 아래 오일램프를 켜 물을 데웠지만, 작업에 몰두한 나머지 램프가 꺼지는 것도 몰랐죠. 시달은 결국 심한 감기에 걸렸고, 아버지는 밀레이에게 치료비 50파운드를 청구하는 편지를 보냈어요.
그림 속 오필리아 주변에 흩어진 꽃들은 하나하나 의미를 품고 있어요. 셰익스피어가 묘사한 오필리아의 화환에 맞춰 고른 꽃들이고, 빅토리아 시대 '꽃말' 전통을 따라 각각 상징을 담았죠. 셰익스피어 원문에는 없는 빨간 양귀비도 보이는데, 그것은 잠과 죽음을 뜻해요.
오필리아의 팔은 벌어져 있고 시선은 위를 향해요. 성인(聖人)의 순교 도상과 닮은 그 자세는, 강물에 잠기면서도 자신의 위험을 알아채지 못하는 여인의 마지막 순간을 담아요. 욕조에서 떨며 견딘 시달의 수고와, 강변에서 파리 떼와 싸운 밀레이의 집착이 합쳐져, 지금 테이트 브리튼에 걸린 그 고요한 물 위의 장면이 태어났습니다.
- 위를 향한 얼굴 — 강물에 누운 여인의 얼굴만 창백하게 떠올라 있어요. 입을 살짝 벌리고 위를 바라보는 표정이, 죽음을 앞두고도 노래하는 중인 듯 묘하게 평온하죠.
- 벌어진 두 손 — 수면 위로 솟은 두 손바닥이 가만히 펼쳐져 있어요. 저항도 발버둥도 없이 그저 물에 자신을 맡긴 손이라, 더 애틋해요.
- 떠다니는 꽃 — 가슴과 물 위로 데이지·팬지·붉은 꽃이 흩어져 떠 있어요. 빅토리아 시대 '꽃의 언어'로 저마다 생각·순수·죽음을 뜻한다고 해요.
- 빽빽한 초록 — 강가의 풀과 잎, 들장미가 도감처럼 한 잎 한 잎 또렷해요. 다섯 달간 야외에서 직접 보고 그린 라파엘전파의 정밀함이에요.
- 생명과 죽음 — 창백한 인물과 강렬하게 무성한 초록이 정면으로 부딪쳐요. 죽음의 순간이 가장 푸르른 생명 한복판에 놓여 있죠.
이 무성한 풀과 꽃이, 슬픔을 덜어 주나요 아니면 더 깊게 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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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물 위의 비극
한 젊은 여인이 꽃을 손에 쥔 채 강물 위에 누워, 노래를 부르며 천천히 가라앉고 있어요. 셰익스피어의 비극 《햄릿》에 나오는 오필리아예요. 사랑하던 햄릿이 자기 아버지를 죽이자 실성한 그녀가, 버드나무 가지에 꽃을 걸려다 강물에 빠지고 마는 장면이죠. 존 에버렛 밀레이가 1851년에서 1852년에 걸쳐 그린 《오필리아》는, 사실 연극 무대에서는 보이지 않고 왕비의 대사로만 전해지는 그 죽음의 순간을 화폭에 옮긴 거예요. 옷자락에 공기가 차올라 잠시 그녀를 물 위에 띄워 두지만, 곧 물을 머금은 옷이 그녀를 진흙 같은 죽음으로 끌어내릴 참이에요.
자연을 그대로
밀레이는 '라파엘전파'라는 화가 모임의 일원이었어요. 이들은 자연을 있는 그대로, 더없이 정밀하게 그리는 것을 신조로 삼았죠. 그래서 밀레이는 이 그림의 배경을 그리려고, 영국 서리의 한 강가에 나가 무려 다섯 달 동안 하루 열한 시간씩 머물며 풀과 꽃 하나하나를 직접 관찰해 그렸어요. 파리 떼와 추위에 시달리며 "이런 데서 그림 그리는 건 살인자에게 교수형보다 더한 벌"이라고 푸념하는 편지를 남기기도 했죠. 강물 위에 떠 있는 꽃들도 그냥 장식이 아니에요. 빅토리아 시대 사람들이 즐기던 '꽃의 언어'에 따라, 팬지는 생각을, 데이지는 순수를, 붉은 양귀비는 잠과 죽음을 뜻해요. 처음엔 오필리아 곁에 물쥐 한 마리까지 그려 넣었다가, 사람들이 그게 무엇인지 알아보지 못하자 지워 버렸다는 일화도 있어요. 비극이 이토록 아름답고 섬세하게 기록될 수 있다는 게 놀랍죠.
욕조 속의 모델
오필리아의 모델은 엘리자베스 시달이라는 스물두 살의 여성이었어요. 밀레이는 그녀를 옷을 입은 채 욕조에 눕혀 물에 잠긴 자세를 취하게 했어요. 겨울이라 욕조 아래 등잔을 놓아 물을 데웠는데, 그림에 너무 몰두한 나머지 등잔불이 꺼진 줄도 몰랐죠. 그 바람에 시달은 독한 감기에 걸렸고, 그녀의 아버지가 치료비를 청구하는 편지를 보냈다는 일화도 전해져요. 1852년 이 그림이 처음 전시됐을 때 반응은 엇갈렸어요. 한 비평가는 "오필리아를 잡초 무성한 도랑에 처박았다"며 비난했죠. 하지만 오늘날 이 작품은 19세기 영국 회화의 가장 중요한 걸작 가운데 하나로 꼽히고, 수많은 영화와 사진, 음악에 영감을 주었어요. 훗날 초현실주의 화가 살바도르 달리마저 이 그림의 신비로운 아름다움에 매료됐을 정도죠.
관람 포인트
먼저 강물 위에 떠 있는 오필리아의 표정을 보세요. 죽음을 앞두고도 어딘가 평온한, 위를 향한 그 시선이 묘한 슬픔을 자아내요. 그다음 그녀를 둘러싼 강가의 풀과 꽃을 하나하나 살펴보세요 — 식물도감처럼 정밀한 그 묘사가 라파엘전파의 정신이에요. 물 위에 흩어진 팬지와 데이지, 붉은 양귀비를 찾아 저마다의 뜻을 떠올려 보시고요. 마지막으로 창백한 오필리아와 강렬하게 푸르른 배경의 대비를 보면, 화가가 죽음의 순간을 어떻게 이토록 생생한 생명의 풍경 속에 담아냈는지 느낄 수 있어요. 죽음과 생명이 한 화면에서 이토록 아름답게 맞닿아 있는 그림도 드물어요.

무지개가 떴지만, 눈먼 소녀는 그 빛을 볼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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