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스
The Ki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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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ainting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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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스》 는 이탈리아 예술가 프란체스코 아예츠가 1859년에 그린 유화이다. 그의 가장 잘 알려진 작품으로, 이 그림은 이탈리아 낭만주의의 대표작으로 19세기 이탈리아 통일 운동인 리소르지멘토의 정신을 대표하는 작품이다. 이 그림은 알폰소 마리아 비스콘티 디 살리세토가 의뢰했으며, 사망후 브레라 미술관에 유증했다.
1859년, 화가 프란체스코 아예츠는 중세 복장을 한 두 연인의 입맞춤을 그렸어요. 그런데 이 그림은 단순한 연애 장면이 아니에요. 아예츠는 오스트리아의 탄압 속에서 이탈리아 통일운동, 즉 리소르지멘토의 이상을 이 한 장의 그림 안에 숨겨 놓았어요.
남자는 한 발을 계단에 걸친 채 금방이라도 떠날 것처럼 서 있어요. 여자는 그를 꼭 붙들고 있고요. 이 마지막 작별 같은 자세는 오스트리아에 맞서 싸우러 떠나는 이탈리아 병사와 그를 보내는 연인으로 읽히기도 해요. 남자의 망토 안에는 단검이 숨겨져 있는데, 이는 임박한 반란의 암시예요. 화면 왼쪽 어두운 구석에 어른거리는 형체는 음모와 위험의 분위기를 조성해요.
가장 대담한 장치는 색이에요. 초판(브레라 미술관 소장)에서 여자의 드레스는 파란색, 남자의 타이츠는 붉은색이에요. 프랑스 국기의 색이죠. 오스트리아에 맞서는 프랑스-사르데냐 동맹을 향한 헌사였어요. 1861년 이탈리아 왕국이 선포되자 두 번째 버전에서는 드레스가 흰색으로 바뀌었고, 네 번째 버전에서는 남자의 망토가 초록색이 됐어요. 파란색, 흰색, 빨간색, 초록색 — 나라의 운명이 바뀔 때마다 그림의 색도 바뀐 거예요.
그림을 주문한 비스콘티 백작은 25년간 집에 걸어 두었다가 죽기 1년 전인 1886년에 브레라 미술관에 기증했어요. 지금도 거기 걸려 있는 이 그림은, 키스 하나로 시대를 말한 알레고리로 이탈리아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있어요.
- 어긋난 발 — 남자의 두 발을 보세요. 한 발은 여인을 받치려 굽혔는데, 다른 한 발은 이미 계단 위에 올라가 있어요. 머물고 싶지만 곧 떠날 자세지요.
- 매달림 — 여인은 몸을 살짝 젖히며 두 손으로 남자의 머리와 뺨을 끌어당겨요. 떠나려는 이와 붙드는 이의 힘이 한 입맞춤 위에서 팽팽히 맞서요.
- 푸름과 붉음 — 여인의 비단 같은 푸른 드레스와, 망토 아래로 드러난 남자의 붉은 다리가 또렷이 부딪쳐요. 단순한 옷이 아니라 한 시대가 꿈꾼 깃발의 색이라고 해요.
- 숨은 그림자 — 화면 왼쪽 어두운 구석을 살펴보세요. 벽에 어른거리는 흐릿한 형체가 도사려, 달콤한 장면에 은근한 위험의 공기를 흘려보내요.
- 비낀 빛 — 빛은 왼쪽 바깥에서 들어와 푸른 드레스의 광택과 거친 돌계단의 결을 또렷이 살려요. 계단의 사선들이 두 연인 쪽으로 우리 눈을 비스듬히 이끌죠.
두 사람의 입맞춤이 만남의 순간일까요, 아니면 작별의 순간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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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맞춤 한 장면에 숨긴 조국의 꿈
프란체스코 아예츠가 1859년에 그린 이 그림은 그저 달콤한 연인의 입맞춤처럼 보이지만, 그 안에는 한 시대의 뜨거운 열망이 숨어 있어요. 19세기 이탈리아는 빈 회의 이후 여러 작은 나라로 쪼개진 채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 제국의 그늘 아래 놓여 있었지요. 통일을 향한 갈망, 곧 '리소르지멘토'의 정신이 비밀결사 카르보네리아와 청년 이탈리아를 통해 들끓던 시절이었답니다. 아예츠는 검열을 피하려 일부러 중세 의상을 입은 익명의 연인을 내세웠어요. 그래야 '과거의 한 장면'인 척하며 저항의 이상을 화폭에 담을 수 있었으니까요. 이 첫 번째 유화는 알폰소 마리아 비스콘티 백작이 주문했고, 1859년 9월 9일 브레라 미술관에서 처음 공개되었답니다.
떠나는 자와 붙잡는 자
자세를 가만히 들여다보세요. 남자는 왼쪽 다리를 굽혀 여인을 받치면서도, 한 발은 이미 계단에 올려 두었어요. 언제라도 떠날 수 있다는 자세지요. 반대로 여인은 몸을 뒤로 젖히며 그에게 매달려요. 이 팽팽한 긴장은 곧 닥칠 이별을 말해 줘요. 흥미롭게도 아예츠는 두 사람의 얼굴을 또렷이 알아볼 수 없게 처리했답니다. 누가 누구인지가 아니라, 입맞춤이라는 행위 자체가 화면의 중심에 오기를 바랐기 때문이지요. 미술사가들은 이 청년을 오스트리아에 맞서 싸우러 떠나는 이탈리아 병사로 읽기도 한답니다. 망토 자락에 감춘 단검은 임박한 봉기를, 그림에 적힌 1859년이라는 연도는 제2차 이탈리아 독립 전쟁을 가리켜요. 무엇보다 색채가 웅변적이에요. 브레라 본에서 여인의 푸른 드레스와 청년의 붉은 타이츠는 동맹국 프랑스의 삼색기를 떠올리게 하지요. 아예츠는 같은 주제로 흰 드레스 본을 비롯해 여러 점을 더 그렸는데, 1861년 본에서 드레스를 흰색으로 바꾼 것은 이탈리아 왕국 선포를 기리는 변주였고, 또 다른 본에서는 남자의 망토를 초록으로 칠해 이탈리아 국기를 완성하기도 했답니다.
베네치아의 빛을 입은 낭만
아예츠는 젊은 시절 베네치아 거장들에게서 처음 그림을 배웠어요. 그 르네상스의 색채 감각이 이 화면에 그대로 살아 있지요. 갈색 망토와 붉은 타이츠, 그리고 비단처럼 빛나는 푸른 드레스가 서로 부딪치지 않고 부드럽게 어우러져요. 중립적인 색조의 배경은 두 연인을 더욱 도드라지게 받쳐 주지요. 화면 왼쪽 바깥에서 들어오는 빛은 장면 전체를 고르게 비추며 드레스의 광택과 바닥, 벽돌의 결을 또렷이 살려 내요. 계단을 따라 비스듬히 내려가는 사선들은 연인 왼편의 소실점으로 모이며 우리 시선을 자연스레 그들에게로 이끌지요. 이성보다 깊은 감정을 앞세우고, 중세를 애틋한 향수와 애국의 시선으로 다시 바라본 이 그림은 그래서 이탈리아 낭만주의의 정수로 꼽혀요. 누린 인기 또한 대단해서, 1920년대 페루지나 초콜릿 '바치'의 푸른 상자 디자인이 되었고, 1954년 루키노 비스콘티 감독의 영화 《센소》의 한 장면에도 영감을 주었답니다.
관람 포인트
먼저 남자의 두 발에 주목하세요. 한 발은 여인을 받치려 굽혔고, 다른 한 발은 계단 위에 올라가 있어요. 이 어긋난 발이 '머물고 싶지만 떠나야 한다'는 모든 이야기를 품고 있답니다. 다음으로 화면 왼쪽 어두운 구석을 살펴보세요. 흐릿한 그림자 같은 형체가 도사리고 있어, 음모와 위험의 공기를 은근히 풍기지요. 그리고 여인이 그를 붙드는 두 손의 힘을 느껴 보세요. 마지막으로 여인의 푸른 드레스와 남자의 붉은 타이츠라는 색의 대비를 기억해 두세요. 단순한 의상이 아니라, 한 시대가 꿈꾼 자유와 통일의 깃발이 그 안에 펄럭이고 있으니까요.

달리는 바구니 아래 관이 숨어 있다고 했고, X선이 그 말을 반쯤 증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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