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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삭 줍는 여인들

The Gleaners

장프랑수아 밀레

분류
Paintings
지역
서양
라이선스
Public domain (Wikimedia Commons)
작품 소개

《이삭 줍는 여인들》(프랑스어: Des glaneuses, 영어: The Gleaners)은 장프랑수아 밀레가 1857년에 완성한 유화이다. 파리의 오르세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다.

도슨트 이야기

1857년 살롱에 걸린 이 그림 앞에서 어떤 비평가는 '1793년의 단두대'를 떠올렸다고 합니다. 밀밭에 허리를 굽힌 세 여인을 보며 혁명의 공포를 연상한 거예요.

이삭줍기는 수확이 끝난 들판에서 떨어진 이삭을 줍는 일입니다. 당시 농촌 공동체에서 가장 아래에 있는 사람들에게만 허락된 일이었어요. 밀레는 이 여인들을 화면 중앙에 크게, 마치 고전 영웅처럼 배치했습니다. 저 멀리 풍성한 수확 더미와 일꾼들이 빛 속에 가득한데, 세 여인은 그 풍요에서 분리된 채 묵묵히 땅을 보고 있어요. 그 대비가 주는 쓸쓸함은 설명 없이도 전해집니다.

당시 이 그림의 크기도 논란이었습니다. 가로 112센티미터, 이만한 캔버스는 신화나 종교화에나 쓰는 것이었는데, 밀레는 노동과 가난을 그 자리에 세워놓았습니다. 상류층에게는 프랑스 사회가 얼마나 많은 사람의 노동 위에 서 있는지를 일깨우는 그림이었어요. 비평가들은 세 여인을 '가난의 운명의 세 여신'이라 비꼬았습니다.

밀레는 살롱이 끝난 뒤 3,000프랑에 그림을 팔았습니다. 원하던 4,000프랑에서 낮춘 것이었고, 그 사실을 숨기려 했어요. 그러나 그가 세상을 떠난 뒤 1889년 경매에서 같은 그림은 30만 프랑에 팔렸습니다. 생전의 소란이 사후의 고전이 되어 있었어요.

이렇게 보세요
  • 굽은 세 등앞쪽에 세 여인이 나란히 허리를 굽혔어요. 푸른 두건의 여인은 깊이 숙였고, 가운데 여인은 막 허리를 펴려는 참, 오른쪽 여인은 이삭을 손에 모아 쥐고 있죠.
  • 땅을 더듬는 손한 톨씩 줍는 손가락이 바닥 가까이 닿아 있어요. 발치엔 베고 남은 그루터기가 듬성듬성하고, 거둘 것이 그만큼 적다는 걸 말해 주죠.
  • 앞과 뒤의 거리멀리 뒤편엔 산처럼 쌓인 곡식 더미와 수레, 일하는 사람들, 마을이 환한 빛 속에 있어요. 앞쪽 가난과 뒤쪽 풍요가 한 들판 안에서 또렷이 갈라져요.
  • 지워진 얼굴세 여인의 표정은 그늘에 묻혀 거의 보이지 않아요. 그래서 이들이 특정한 누군가가 아니라 노동하는 모든 사람처럼 다가오죠.

당신의 눈은 굽은 등에 먼저 닿았나요, 아니면 멀리 쌓인 곡식 더미에 닿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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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을 기념비로 그린 화가

밀레는 농촌의 묵묵한 노동을 평생의 주제로 삼은 화가예요. 파리 인근 바르비종이라는 작은 마을에 자리를 잡고, 그곳 들판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가까이 지켜보았지요. 《이삭 줍는 여인들》은 1857년 살롱에 처음 선보인 작품으로, 지금은 파리 오르세 미술관에 걸려 있답니다.

그런데 이 그림은 발표되자마자 거센 비난을 받았어요. 당시 파리의 상류층과 중산층에겐 가난한 농민을 이렇게 크고 당당하게 그린 것 자체가 불편하게 다가왔거든요. 어떤 비평가는 세 여인을 두고 '가난의 세 여신' 같다고 비아냥거렸고, 또 누군가는 이 그림에서 '1793년의 단두대'를 떠올린다며 두려워했답니다. 1848년 혁명을 막 지나온 사회였으니, 노동하는 다수를 영웅처럼 그린 그림이 위험하게 느껴졌던 거예요.

종교화가 아닌, 가난의 현실

이삭을 줍는다는 건 추수가 끝난 뒤 땅에 떨어진 낟알을 한 톨씩 거두는 일이에요. 마을에서 가장 가난한 이들에게만 허락된, 더없이 고된 노동이었지요. 사실 이삭줍기는 미술에서 낯선 소재가 아니었어요. 성경 속 룻의 이야기로 여러 번 그려졌으니까요.

하지만 밀레의 그림엔 성경적인 위안이나 경건함이 없어요. 그가 그린 건 신앙의 이야기가 아니라 농촌 빈곤의 현실 그 자체였거든요. 무엇보다 사람들을 놀라게 한 건 화면의 크기였어요. 약 84 곱하기 112센티미터에 이르는 이 큰 화폭은, 원래 종교화나 신화화에나 쓰이던 규격이었죠. 그런 캔버스에 허리 굽힌 농민을 담았으니, 노동을 신화의 자리까지 끌어올린 셈이었답니다.

외면받다가 사랑받기까지

그림은 밀레 생전엔 악명만 안겨 주었어요. 돈에 쪼들리던 그는 부르던 값 4,000프랑에서 한참 내린 3,000프랑에 영국인에게 팔았고, 그 초라한 값을 누구에게도 숨기려 했다고 해요. 그러나 1875년 그가 세상을 떠난 뒤, 그의 작품에 대한 평가는 서서히 높아졌지요.

그 변화는 숫자로도 드러나요. 1889년 경매에서 이 그림은 무려 30만 프랑에 팔렸거든요. 결국 샴페인 제조가 폼므리 부인의 손에 들어갔고, 부인이 1891년 세상을 떠나며 유언에 따라 루브르에 기증했답니다. 이후 작품은 오르세 미술관으로 옮겨졌어요. 피사로, 르누아르, 쇠라, 반 고흐 같은 젊은 화가들이 이 굽은 등의 여인들을 거듭 변주했으니, 밀레의 '노동에 바친 서사시'는 후대에 끝없는 자손을 남긴 셈이지요.

관람 포인트

먼저 화면 앞쪽, 허리를 굽힌 세 여인의 자세를 천천히 따라가 보세요. 한 사람은 거의 땅에 닿을 듯 깊이 숙였고, 다른 이들은 막 허리를 펴려는 참이에요. 손끝의 묵직한 움직임에서 이 노동의 고됨이 그대로 전해진답니다.

그다음엔 시선을 멀리 뒤편으로 옮겨 보세요. 햇빛 가득한 들판에 풍요로운 곡식 더미가 산처럼 쌓여 있고, 그 곁엔 추수하는 사람들과 마을이 보이지요. 앞쪽의 가난과 뒤쪽의 풍요가 한 화면 안에서 또렷이 갈라져 있어요. 마지막으로 여인들의 얼굴을 보세요. 표정은 거의 지워져 있지만, 그래서 오히려 이들이 특정한 누군가가 아니라 노동하는 모든 사람을 대신하는 존재처럼 다가온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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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프랑수아 밀레

달리는 바구니 아래 관이 숨어 있다고 했고, X선이 그 말을 반쯤 증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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