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종
The Angel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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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종》(프랑스어: L'Angélus, 영어: The Angelus)은 프랑스의 화가 장프랑수아 밀레가 1857년에서 1859년 사이에 완성한 유화 작품이다.
저녁 종소리가 울리면 밭일을 멈추고 고개를 숙이는 두 농부. 밀레는 이 장면을 떠올릴 때마다 할머니를 생각했다고 했어요. 바르비종 들판에서 일하던 어린 시절, 들판 너머 교회 종이 울릴 때마다 할머니는 일손을 놓고 가족 모두에게 '죽은 이들을 위한 삼종기도'를 시켰다고요. 그 기억이 그림의 씨앗이 됐습니다.
원래 제목은 '감자 수확을 위한 기도'였어요. 의뢰인 토머스 애플턴이 그림을 가져가지 않자 밀레는 멀리 교회 첨탑을 덧그리고 제목을 '만종'으로 바꿨죠. 두 인물의 발치에는 감자 바구니와 삽, 수레가 놓여 있어요. 하루 노동이 끝났음을 알리는 소박한 증거들입니다.
그런데 살바도르 달리는 이 그림을 처음 학교 벽에서 보았을 때부터 무언가 섬뜩한 것을 느꼈다고 했어요. 바구니가 관처럼 보였고, 여인은 기도하는 사마귀처럼 느껴졌다고요. 달리는 루브르에 X선 촬영을 요청했고, 실제로 두 인물 발치에 '직사각형의 기하학적 형태'가 드러났습니다. 달리는 그것을 어린 아이의 관이라고 주장했지만, 학계의 통설로 굳어지지는 않았어요.
그림은 19세기 말 프랑스에서 가장 많이 복제된 종교화 중 하나가 됐습니다. 보불전쟁과 파리코뮌 이후 국민적 위안을 찾던 사람들이 이 기도하는 농부 부부에게서 뭔가를 발견한 거예요. 밀레 본인은 강한 종교적 신념보다는 어린 시절 할머니의 기억에서 이 그림을 그렸다고 했지만, 그 노스탤지어는 수백만 명의 마음을 건드렸습니다.
달리의 해석이 맞든 틀리든, 이 고요한 들판에는 묘한 무게가 남아 있어요. 기도인지 애도인지 알 수 없는 그 숙인 고개가, 보는 사람마다 다른 무언가를 떠올리게 만드니까요.
- 숙인 고개 — 들판 한가운데 두 사람이 마주 선 채 고개를 떨구고 손을 모았어요. 그 멈춘 자세 하나에 저녁 종소리에 맞춘 삼종기도의 경건함이 다 담겨 있지요.
- 지평선 — 화면을 가로지르는 낮은 지평선 위로, 오른쪽 멀리 아주 작은 교회 첨탑이 솟아 있어요. 보이지 않는 종소리의 근원이랍니다.
- 발치 — 두 사람 사이 땅바닥에 캐다 만 감자 바구니가 놓이고, 왼쪽엔 쇠스랑이 꽂혀 있어요. 오른쪽 수레까지, 고된 하루가 말없이 흩어져 있지요.
- 황혼빛 — 하늘은 위로 갈수록 어둑해지고 지평선께만 옅은 노을로 물들었어요. 그 부드러운 빛이 인물을 거의 실루엣으로 가라앉히며 온 들판에 고요를 드리워요.
이 고요 속에서, 당신의 귀에는 어떤 소리가 들리는 듯한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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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 종소리에 멈춘 손길
이 그림은 프랑스 화가 장프랑수아 밀레가 1857년에서 1859년 사이에 완성한 유화예요. 해 질 녘 들판에서 한 농부 부부가 일손을 멈추고 고개를 숙여 가만히 기도하는 장면이지요. 멀리 지평선 위로 교회 첨탑이 보이는데, 바로 그 교회에서 울려 퍼지는 저녁 종소리에 맞춰 이들은 '삼종기도'를 올리고 있답니다. 발치에는 캐다 만 감자가 담긴 작은 바구니와 쇠스랑, 자루, 그리고 수레가 놓여 있어요. 고된 노동과 소박한 신앙, 황혼의 고요가 한 화폭 안에 가만히 어우러져 있지요. 지금은 파리 오르세 미술관에 걸려 있답니다.
제목이 바뀐 사연
이 그림에는 흥미로운 사연이 하나 있어요. 본래 밀레는 이 작품을 미국의 수집가 토머스 골드 애플턴의 주문으로 그렸어요. 그런데 애플턴이 끝내 그림을 찾으러 오지 않았지요. 그래서 밀레는 처음에 '감자 수확을 위한 기도'라 붙였던 제목을, 멀리 교회 첨탑을 그려 넣으며 '만종(삼종기도)'으로 바꾸었답니다. 밀레는 이 그림의 착상에 대해 이렇게 말했어요. '들에서 일하다 교회 종소리가 들리면, 할머니는 늘 우리를 멈춰 세우고 세상을 떠난 가엾은 이들을 위해 삼종기도를 올리게 하셨지요. 그 기억에서 이 그림이 떠올랐어요.' 지평선 위 첨탑은 샤이앙비에르 마을 교회의 것이랍니다.
종교화일까, 향수일까
이 작품은 19세기에 가장 널리 복제된 종교화 가운데 하나가 되었어요. 프랑스 곳곳의 경건한 가정마다 이 그림의 판화가 걸려 있을 정도였지요. 그런데 흥미롭게도 밀레 자신은 깊은 종교적 열정보다는 향수에서 이 그림을 그렸다고 해요. 한 연구자는 '여기에 종교적 메시지는 없으며, 밀레는 그저 황혼이 내릴 무렵의 의식화된 명상의 한순간을 담으려 했을 뿐'이라고 했답니다. 훗날 초현실주의 화가 살바도르 달리는 이 그림에 유난히 사로잡혔어요. 그는 발치의 바구니가 어린아이의 관처럼 보인다고 여겨, 루브르에 엑스선 촬영까지 요청했지요. 한편 이 그림은 19세기 말 미술 시장에서 기록적인 가격으로 거래되었어요. 1889년 한 경매에서는 루브르와 미국미술협회가 치열한 입찰 경쟁을 벌인 끝에 무려 55만 3천 프랑까지 값이 치솟았지요. 이듬해 다시 75만 프랑에 팔린 이 그림은, 마침내 수집가 알프레드 쇼샤르의 유증으로 프랑스 국가의 품에 안겨 루브르에 들어갔답니다. 그런데 정작 화가의 유족에게는 이 막대한 거래의 몫이 한 푼도 돌아가지 않았어요. 그 안타까운 대비가 계기가 되어, 작품이 되팔릴 때 화가나 그 후손에게 보상하는 '추급권'이라는 프랑스 법이 생겨났답니다.
관람 포인트
먼저 두 농부의 숙인 고개와 멈춘 손길을 보세요. 그 고요한 정지의 자세 하나에, 하루의 노동을 끝맺는 기도의 경건함이 고스란히 담겨 있답니다. 다음으로 지평선 위 멀리 교회 첨탑을 찾아보세요. 본래 제목을 바꾸며 밀레가 새로 그려 넣은, 종소리의 근원이지요. 발치에 놓인 것들도 하나하나 눈여겨보세요. 캐다 만 감자 바구니와 쇠스랑, 자루, 수레가 이들의 고된 하루를 말없이 증언한답니다. 그리고 화면을 물들인 황혼의 빛을 느껴 보세요. 해가 기우는 그 부드러운 색조가 온 들판에 고요를 드리운답니다. 마지막으로 발치의 작은 바구니를 다시 한번 들여다보세요. 달리가 어린아이의 관을 떠올렸다는 그 바구니에서, 당신은 무엇을 보게 될지 가만히 느껴 보는 거예요.

가난한 이삭줍기를 영웅처럼 그리자 상류층은 두려움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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