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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심하는 토마스

The Incredulity of Saint Thomas

카라바조

분류
Paintings
지역
서양
라이선스
Public domain (Wikimedia Commons)
작품 소개

The Incredulity of Saint Thomas is an oil on canvas painting by Caravaggio, created c. 1601–1602. It was painted for Vincenzo Giustiniani and later entered the Royal Collection of Prussia, survived the Second World War unscathed, and is now in the Sanssouci Picture Gallery, in Potsdam.

도슨트 이야기

부활한 예수가 제자들 앞에 나타났을 때, 토마스는 그 자리에 없었어요. 다른 이들이 '우리가 주님을 보았다'고 전해도 그는 고개를 저었습니다. '직접 못 자국을 보고, 손가락을 그 옆구리에 넣어보지 않으면 믿지 않겠다'고 했지요.

일주일 뒤 예수가 다시 나타나 토마스에게 말했어요.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 내 손을 보고, 네 손을 내 옆구리에 넣어보아라.' 카라바조는 바로 그 순간을 화폭에 담았습니다. 토마스의 손가락이 실제로 상처 안으로 들어가고, 그리스도가 직접 그 손을 이끌고 있어요.

카라바조는 토마스를 거룩한 사도의 모습이 아닌, 어깨가 해진 옷을 걸친 농부처럼 그렸어요. 손톱 밑에는 흙때까지 묻어 있지요. 뒤에서 고개를 들이밀고 바라보는 두 사도와 함께, 네 얼굴이 한 화면에 촘촘히 모여 있습니다. 빛은 왼쪽에서 쏟아져 토마스의 주름진 이마와 그리스도의 옆구리를 정면으로 밝혀내요.

화면 어딘가에 후광은 없습니다. 부활한 그리스도의 몸을 카라바조는 신비가 아닌 생생한 살로 보여 주고 싶었던 거예요. 의심은 그림자 속에 머물다가, 토마스가 손을 뻗는 순간 빛 안으로 끌려 들어옵니다. 그리고 예수는 말했지요. '보았기 때문에 믿느냐, 보지 않고도 믿는 사람은 복이 있다.'

이렇게 보세요
  • 상처 속 손가락화면 한가운데, 토마스의 손가락이 그리스도의 옆구리 벌어진 상처 안으로 그대로 파고들어 가 있어요. 그리스도가 직접 그 손목을 잡아 상처 쪽으로 이끄는 손길까지, 모든 시선이 이 한 점으로 빨려 들지요.
  • 맞댄 네 머리네 사람의 머리가 좁은 공간에 바짝 모여 하나의 무대를 이뤄요. 어깨를 맞대고 한 점을 들여다보는 그 밀착이, 보는 우리까지 그 자리에 끼어든 듯 끌어당기지요.
  • 이마의 주름토마스의 이마에 깊게 팬 주름과 부릅뜬 눈을 보세요. 도무지 믿기지 않는다는 놀라움이 얼굴에 고스란히 새겨져 있답니다.
  • 농부 같은 사도토마스의 어깨엔 솔기가 터진 누더기가 걸쳐 있어요. 카라바조는 사도를 우리 곁의 가난한 일꾼처럼 그려, 성스러운 장면을 손에 잡힐 듯 생생하게 끌어내렸지요.
  • 왼쪽에서 든 빛화면 왼편에서 들어오는 빛이 그리스도의 가슴과 토마스의 이마를 환히 비추고, 나머지는 짙은 어둠에 잠겨 있어요. 그 강렬한 명암이 믿음과 의심의 긴장을 빛과 그림자로 갈라 놓지요.

빛 속으로 끌려 나온 이 얼굴들 가운데, 당신은 누구의 표정에 가장 오래 머물게 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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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가락을 상처에 넣는 순간

부활한 그리스도 앞에 한 사도가 몸을 잔뜩 굽히고 서 있어요. 그는 그리스도의 옆구리 상처에 손가락을 그대로 찔러 넣고, 이마엔 깊은 주름이, 눈엔 놀라움이 가득하지요. 카라바조가 1601년에서 1602년 무렵에 그린 이 그림은, 바로 '의심하는 토마스'라는 말을 낳은 그 유명한 일화를 담고 있어요. 요한복음에 따르면, 사도 토마스는 부활한 예수가 제자들 앞에 나타났을 때 그 자리에 없었어요. 그는 '그 손의 못 자국을 보고, 못 자국에 손가락을 넣어 보고, 옆구리에 손을 넣어 보지 않고는 믿지 못하겠다'고 말했지요. 일주일 뒤 예수가 다시 나타나 토마스에게 직접 만져 보고 의심을 거두라 이르는데, 카라바조가 붙든 것이 바로 그 장면이랍니다.

그림 속에서 그리스도는 토마스의 손목을 잡아 직접 상처 쪽으로 이끌어요. 의심하던 사도는 어깨가 찢어진 누더기를 걸친 농부처럼 그려졌고, 손톱 밑에는 때까지 끼어 있지요. 카라바조는 성스러운 장면을 조금의 미화도 없이, 우리 곁의 평범한 사람처럼 옮긴 거예요. 그 덕분에 보는 이는 마치 그 자리에 함께 선 듯, 사건의 긴장을 고스란히 느끼게 된답니다.

빛으로 빚은 믿음과 의심

카라바조는 빛과 그림자의 대가였어요. 이 그림에서도 그 강렬한 명암법, 곧 키아로스쿠로가 이야기를 끌어가는 실로 역할을 해요. 그리스도에게 쏟아지는 빛은 그의 육체를 또렷이 드러내면서, 동시에 그가 지닌 신성과 의미를 넌지시 비춰 주지요. 의심을 상징하는 그림자가 토마스를 뒤덮고 있지만, 그가 그리스도를 만지는 순간 빛 속으로 끌려 들어와요. 그리고 부활한 그리스도에게는 후광이 없는데, 이 후광의 부재가 오히려 그 몸이 실제 살과 피를 지녔음을 강조한답니다.

네 사람의 머리가 바짝 모여 하나의 좁은 무대를 이루고, 시선들은 토마스의 손끝 한 점으로 모여들어요. 토마스의 팔과 예수의 두 손이 만드는 수평의 축, 그리고 두 사도의 머리에서 토마스의 목으로 내려오는 수직의 축이 화면 한가운데서 교차하지요. 토마스와 그리스도의 굽은 등이 만드는 부드러운 아치까지 더해져, 인간의 형상들이 앞으로 와락 쏟아질 듯 맞물려 있어요. 토마스 뒤에 선 두 사도는 아마 베드로와 복음사가 요한일 거예요. 한 평자는 이 그리스도의 표정이 그 단순함과 아름다움에서 레오나르도의 모나리자에 견줄 만하다고까지 했답니다.

렘브란트에게로 이어진 빛

카라바조의 그림은 당대 화가들에게 거대한 충격을 안겼어요. 특히 네덜란드에서 많은 화가들이 그의 작품을 직접 연구하러 로마로 건너왔지요. 정작 이탈리아에 한 번도 가 본 적 없던 렘브란트는, 위트레흐트의 카라바조 추종자들을 통해 그 화풍을 익혔어요. 렘브란트가 평생 붙들었던 그 철저한 사실주의와 빛의 운용은, 카라바조라는 본보기 없이는 떠올리기 어려운 것이랍니다. 루벤스, 오라치오와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 조르주 드 라 투르, 그리고 베르메르와 벨라스케스 같은 거장들에게서도 그의 흔적이 보여요.

이 그림은 본래 은행가 빈첸초 주스티니아니를 위해 그려졌어요. 1638년 주스티니아니 컬렉션 목록에 검은 액자에 담긴 이 작품이 기록되어 있고, 1672년에는 미술사가 벨로리가 직접 언급하기도 했지요. 이후 컬렉션이 흩어지면서 그림은 프로이센으로 보내져 1816년 국가가 사들였고, 제2차 세계대전의 참화도 무사히 견뎌 냈어요. 지금은 독일 포츠담의 상수시 미술관에 걸려 있답니다.

관람 포인트

먼저 토마스의 손가락 끝에 시선을 고정해 보세요. 그것이 실제로 그리스도의 옆구리 상처 안으로 파고들어 가 있고, 그리스도의 손이 그 손목을 직접 이끌고 있다는 걸 확인하는 거예요. 화면 전체가 바로 이 한 점으로 빨려 들어가도록 짜여 있답니다. 다음으로 토마스의 모습을 자세히 보세요. 찢어진 옷, 손톱 밑의 때까지, 카라바조는 사도를 우리 곁의 가난한 농부처럼 그렸어요. 그 거친 사실감이 이 그림의 힘이지요. 그리고 빛이 어디서 들어오는지 따라가 보세요. 왼편에서 쏟아지는 빛이 그리스도의 이마와 옆구리를 비추고, 의심의 그림자에 잠겨 있던 토마스를 그 빛 속으로 끌어들이는 흐름을요. 끝으로 그리스도에게 후광이 없다는 점을 떠올려 보세요. 그 부재야말로, 카라바조가 보여 주려 한 '되살아난 진짜 몸'의 생생함을 더없이 또렷하게 만든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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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라바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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