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랑자
The Wayfar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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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랑자》(The Wayfarer, 또는 행상인 )은 플랑드르파 화가 히에로니무스 보스가 1500년경에 그린 패널 유화이다. 현재 로테르담의 보이만스 판뵈닝언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다. 이 그림은 둥근 모양이며 지름이 71.5 cm (28.1 in)이다. 이 작품은 부분적으로 유실된 삼면화 또는 이면화의 조각 중 하나로, 《탐욕과 음욕의 우화》, 《바보들의 배》, 《죽음과 구두쇠》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림은 둥글어요. 지름 71.5센티미터의 원형 패널 위에, 한 남자가 걷고 있어요. 남루한 차림의 이 여행자는 히에로니무스 보스가 1500년경에 그린 '방랑자(나그네)'의 주인공이에요. 보스 특유의 기괴한 환상 대신, 이 그림은 한 인간의 느릿한 걸음에 집중해요.
남자 앞에는 두 갈래 길이 있어요. 오른쪽 문으로 이어지는 덕의 길, 왼쪽 술집으로 열리는 방종의 길. 보스는 선택을 강요하지 않아요. 다만 남자는 걷고 있고, 걸음은 어딘가를 향하고 있어요. 학자들은 이 인물을 탕자(蕩子)가 집으로 돌아오는 장면으로 읽기도 하고, 유혹 앞에서 덕을 택하는 순례자로 해석하기도 해요.
이 그림은 원래 완전하지 않았어요. 한때 한 폭의 삼단 제단화 혹은 이단화의 일부였을 것으로 추정되는데, 같은 계열 작품에는 '탐식과 욕망의 알레고리', '바보들의 배', '수전노의 죽음'이 포함돼 있어요. 흩어진 조각들 — 그리고 그 사이를 걷는 방랑자.
보스의 '건초 수레 삼단화' 외면에 등장하는 '삶의 길' 패널 속 남자와도 닮아 있다고 해요. 보스는 같은 인간의 초상을 여러 그림에 걸쳐 되풀이한 셈이에요. 로테르담의 보이만스 판 뵈닝언 미술관에 소장된 이 작은 원형 그림은, 지금도 조용히 묻고 있어요 — 당신은 어느 쪽 문으로 걷고 있나요?
- 둥근 창 — 팔각 나무틀 안에 다시 둥근 화면이 끼워져 있어요. 모난 액자에 익숙한 눈에는, 마치 작은 창으로 한 사람의 길을 엿보는 듯하지요.
- 돌아보는 얼굴 — 사내는 앞으로 발을 떼면서도 고개만 뒤로 꺾어 등 뒤를 바라봐요. 막 지나온 곳에 미련이 남은 그 망설임이 자세 하나에 다 담겼어요.
- 등 뒤의 집 — 왼쪽 허름한 집 문간엔 사람들이 서 있고, 새장이 걸리고 돼지가 코를 박고 있어요. 사내가 떠나온 그 너저분한 세계가 자잘하게 펼쳐지죠.
- 해진 행색 — 봇짐을 진 어깨, 찢어진 무릎, 짝이 안 맞는 신발과 다리에 감은 천. 고된 길의 무게가 옷차림 구석구석에서 새어 나와요.
- 앞을 막는 문 — 오른쪽엔 부서진 나무 울짱과 그 너머 짐승이 보여요. 사내가 나아갈 길마저 쉬워 보이지 않지요.
이 사내는 떠나는 중일까요, 아니면 돌아오는 길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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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태로운 길 위의 행상인
누더기를 걸친 한 사내가 지팡이에 몸을 의지한 채 험한 길을 지나가요. 등에는 봇짐을 지고, 무언가 미련이 남은 듯 자꾸만 뒤를 돌아보지요. 초기 네덜란드 화가 히에로니무스 보스가 1500년 무렵에 그린 이 그림은, '방랑자' 혹은 '행상인'이라 불려요. 무엇보다 눈에 띄는 건 화면이 둥글다는 점이에요. 지름 71.5센티미터의 원형 화폭 안에, 보스는 유혹과 위험으로 가득한 인생의 험한 여정을 한 사내의 모습에 빗대어 담았답니다.
이 작은 원형 그림은 사실 홀로 그려진 것이 아니에요. 일부가 소실된 더 큰 세 폭 혹은 두 폭짜리 제단화의 한 조각이었지요. 본래 한 짝을 이루던 다른 조각들로는 '탐식과 음욕의 알레고리', '바보들의 배', 그리고 '죽음과 수전노'가 있었어요. 그러니 우리가 지금 보는 이 떠도는 사내는, 원래 인간의 여러 죄와 운명을 펼쳐 보이던 거대한 그림의 한 자락이었던 셈이랍니다.
갈림길에 선 한 사람
이 방랑자의 모습은 보스의 또 다른 작품인 '건초 수레 세 폭화'의 바깥 면에 그려진 '인생의 길' 속 사내와 무척 닮았어요. 보스가 즐겨 다루던 인물상이었던 것이지요. 그래서 이 사내를 두고 여러 해석이 오갔어요. 오른쪽 문으로 난 미덕의 길과 왼쪽 집이 가리키는 방탕의 길 사이에서 갈등하는 인간이라는 풀이가 있고, 또는 세상을 떠돌다 집으로 돌아오는 '돌아온 탕자'라는 해석도 있답니다.
어느 쪽으로 읽든, 이 그림은 결국 길 위에 선 한 사람의 선택에 관한 이야기예요. 사내가 막 지나온 곳, 발길을 멈추고 뒤돌아보는 그 방향에 유혹이 있고, 앞으로 나아가야 할 길에는 또 다른 위험이 도사리고 있지요. 보스는 거창한 설교 대신, 지친 행상인의 망설이는 한순간을 빌려 우리 모두의 인생이 늘 이런 갈림길의 연속임을 조용히 일러 주는 것 같아요. 둥근 화면은 마치 우리가 작은 구멍으로 한 사람의 삶을 들여다보는 듯한 느낌마저 준답니다.
500년을 건너온 방랑자
보스의 이 방랑자는 그림 속에만 머물지 않았어요. 500여 년이 지난 2012년, 오스트레일리아의 화가 팀 스토리어가 보스의 이 그림에서 영감을 받아 '연극적인 방랑자(보스를 따라)'라는 제목의 자화상을 그렸고, 그 작품으로 그해 아치볼드 상을 받았지요. 한 화가가 떠올린 길 위의 사내가, 세기를 건너 또 다른 화가의 손에서 새롭게 되살아난 셈이에요.
사실 보스라는 화가 자체가 그래요. 그가 남긴 기이하고 환상적인 형상들은 시대를 넘어 거듭 사람들의 상상을 자극해 왔지요. 이 소박해 보이는 원형 그림 한 점도, 알고 보면 인생을 하나의 여정으로 바라보는 깊은 상징을 품고 있고, 그래서 오늘날까지도 보는 이의 마음을 붙드는 거예요. 지금 이 작품은 네덜란드 로테르담의 보이만스 판뵈닝언 미술관에 걸려 있답니다.
관람 포인트
먼저 화면이 둥글다는 점부터 의식해 보세요. 네모난 액자에 익숙한 눈에는 이 원형 구도가 낯설게 다가올 거예요. 마치 작은 창이나 거울을 통해 한 사람의 삶을 엿보는 듯한 그 느낌을 즐겨 보세요. 다음으로 사내가 뒤를 돌아보는 방향과, 그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가늠해 보세요. 미덕의 문과 방탕의 집 사이에서 망설이는 인간으로 볼지, 집으로 돌아오는 탕자로 볼지, 그 선택은 보는 이의 몫이랍니다. 그리고 사내의 행색을 자세히 들여다보세요. 해진 옷과 지팡이에 의지한 지친 몸에서, 인생이라는 고된 길의 무게가 고스란히 전해질 거예요. 끝으로, 이 작은 그림이 본래 더 큰 제단화의 한 조각이었다는 사실을 떠올려 보세요. 지금은 홀로 떨어진 이 방랑자가, 한때는 인간의 죄와 운명을 펼쳐 보이던 거대한 이야기의 일부였다는 점을 헤아리며 보면, 그 의미가 한층 깊어진답니다.

지옥 패널 누군가의 엉덩이에 악보가 새겨져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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