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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랑자

The Wayfarer

히에로니무스 보스

분류
Paintings
지역
서양
라이선스
Public domain (Wikimedia Commons)
작품 소개

《방랑자》(The Wayfarer, 또는 행상인 )은 플랑드르파 화가 히에로니무스 보스가 1500년경에 그린 패널 유화이다. 현재 로테르담의 보이만스 판뵈닝언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다. 이 그림은 둥근 모양이며 지름이 71.5 cm (28.1 in)이다. 이 작품은 부분적으로 유실된 삼면화 또는 이면화의 조각 중 하나로, 《탐욕과 음욕의 우화》, 《바보들의 배》, 《죽음과 구두쇠》도 포함되어 있었다.

도슨트 이야기

그림은 둥글어요. 지름 71.5센티미터의 원형 패널 위에, 한 남자가 걷고 있어요. 남루한 차림의 이 여행자는 히에로니무스 보스가 1500년경에 그린 '방랑자(나그네)'의 주인공이에요. 보스 특유의 기괴한 환상 대신, 이 그림은 한 인간의 느릿한 걸음에 집중해요.

남자 앞에는 두 갈래 길이 있어요. 오른쪽 문으로 이어지는 덕의 길, 왼쪽 술집으로 열리는 방종의 길. 보스는 선택을 강요하지 않아요. 다만 남자는 걷고 있고, 걸음은 어딘가를 향하고 있어요. 학자들은 이 인물을 탕자(蕩子)가 집으로 돌아오는 장면으로 읽기도 하고, 유혹 앞에서 덕을 택하는 순례자로 해석하기도 해요.

이 그림은 원래 완전하지 않았어요. 한때 한 폭의 삼단 제단화 혹은 이단화의 일부였을 것으로 추정되는데, 같은 계열 작품에는 '탐식과 욕망의 알레고리', '바보들의 배', '수전노의 죽음'이 포함돼 있어요. 흩어진 조각들 — 그리고 그 사이를 걷는 방랑자.

보스의 '건초 수레 삼단화' 외면에 등장하는 '삶의 길' 패널 속 남자와도 닮아 있다고 해요. 보스는 같은 인간의 초상을 여러 그림에 걸쳐 되풀이한 셈이에요. 로테르담의 보이만스 판 뵈닝언 미술관에 소장된 이 작은 원형 그림은, 지금도 조용히 묻고 있어요 — 당신은 어느 쪽 문으로 걷고 있나요?

이렇게 보세요
  • 둥근 창팔각 나무틀 안에 다시 둥근 화면이 끼워져 있어요. 모난 액자에 익숙한 눈에는, 마치 작은 창으로 한 사람의 길을 엿보는 듯하지요.
  • 돌아보는 얼굴사내는 앞으로 발을 떼면서도 고개만 뒤로 꺾어 등 뒤를 바라봐요. 막 지나온 곳에 미련이 남은 그 망설임이 자세 하나에 다 담겼어요.
  • 등 뒤의 집왼쪽 허름한 집 문간엔 사람들이 서 있고, 새장이 걸리고 돼지가 코를 박고 있어요. 사내가 떠나온 그 너저분한 세계가 자잘하게 펼쳐지죠.
  • 해진 행색봇짐을 진 어깨, 찢어진 무릎, 짝이 안 맞는 신발과 다리에 감은 천. 고된 길의 무게가 옷차림 구석구석에서 새어 나와요.
  • 앞을 막는 문오른쪽엔 부서진 나무 울짱과 그 너머 짐승이 보여요. 사내가 나아갈 길마저 쉬워 보이지 않지요.

이 사내는 떠나는 중일까요, 아니면 돌아오는 길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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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태로운 길 위의 행상인

누더기를 걸친 한 사내가 지팡이에 몸을 의지한 채 험한 길을 지나가요. 등에는 봇짐을 지고, 무언가 미련이 남은 듯 자꾸만 뒤를 돌아보지요. 초기 네덜란드 화가 히에로니무스 보스가 1500년 무렵에 그린 이 그림은, '방랑자' 혹은 '행상인'이라 불려요. 무엇보다 눈에 띄는 건 화면이 둥글다는 점이에요. 지름 71.5센티미터의 원형 화폭 안에, 보스는 유혹과 위험으로 가득한 인생의 험한 여정을 한 사내의 모습에 빗대어 담았답니다.

이 작은 원형 그림은 사실 홀로 그려진 것이 아니에요. 일부가 소실된 더 큰 세 폭 혹은 두 폭짜리 제단화의 한 조각이었지요. 본래 한 짝을 이루던 다른 조각들로는 '탐식과 음욕의 알레고리', '바보들의 배', 그리고 '죽음과 수전노'가 있었어요. 그러니 우리가 지금 보는 이 떠도는 사내는, 원래 인간의 여러 죄와 운명을 펼쳐 보이던 거대한 그림의 한 자락이었던 셈이랍니다.

갈림길에 선 한 사람

이 방랑자의 모습은 보스의 또 다른 작품인 '건초 수레 세 폭화'의 바깥 면에 그려진 '인생의 길' 속 사내와 무척 닮았어요. 보스가 즐겨 다루던 인물상이었던 것이지요. 그래서 이 사내를 두고 여러 해석이 오갔어요. 오른쪽 문으로 난 미덕의 길과 왼쪽 집이 가리키는 방탕의 길 사이에서 갈등하는 인간이라는 풀이가 있고, 또는 세상을 떠돌다 집으로 돌아오는 '돌아온 탕자'라는 해석도 있답니다.

어느 쪽으로 읽든, 이 그림은 결국 길 위에 선 한 사람의 선택에 관한 이야기예요. 사내가 막 지나온 곳, 발길을 멈추고 뒤돌아보는 그 방향에 유혹이 있고, 앞으로 나아가야 할 길에는 또 다른 위험이 도사리고 있지요. 보스는 거창한 설교 대신, 지친 행상인의 망설이는 한순간을 빌려 우리 모두의 인생이 늘 이런 갈림길의 연속임을 조용히 일러 주는 것 같아요. 둥근 화면은 마치 우리가 작은 구멍으로 한 사람의 삶을 들여다보는 듯한 느낌마저 준답니다.

500년을 건너온 방랑자

보스의 이 방랑자는 그림 속에만 머물지 않았어요. 500여 년이 지난 2012년, 오스트레일리아의 화가 팀 스토리어가 보스의 이 그림에서 영감을 받아 '연극적인 방랑자(보스를 따라)'라는 제목의 자화상을 그렸고, 그 작품으로 그해 아치볼드 상을 받았지요. 한 화가가 떠올린 길 위의 사내가, 세기를 건너 또 다른 화가의 손에서 새롭게 되살아난 셈이에요.

사실 보스라는 화가 자체가 그래요. 그가 남긴 기이하고 환상적인 형상들은 시대를 넘어 거듭 사람들의 상상을 자극해 왔지요. 이 소박해 보이는 원형 그림 한 점도, 알고 보면 인생을 하나의 여정으로 바라보는 깊은 상징을 품고 있고, 그래서 오늘날까지도 보는 이의 마음을 붙드는 거예요. 지금 이 작품은 네덜란드 로테르담의 보이만스 판뵈닝언 미술관에 걸려 있답니다.

관람 포인트

먼저 화면이 둥글다는 점부터 의식해 보세요. 네모난 액자에 익숙한 눈에는 이 원형 구도가 낯설게 다가올 거예요. 마치 작은 창이나 거울을 통해 한 사람의 삶을 엿보는 듯한 그 느낌을 즐겨 보세요. 다음으로 사내가 뒤를 돌아보는 방향과, 그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가늠해 보세요. 미덕의 문과 방탕의 집 사이에서 망설이는 인간으로 볼지, 집으로 돌아오는 탕자로 볼지, 그 선택은 보는 이의 몫이랍니다. 그리고 사내의 행색을 자세히 들여다보세요. 해진 옷과 지팡이에 의지한 지친 몸에서, 인생이라는 고된 길의 무게가 고스란히 전해질 거예요. 끝으로, 이 작은 그림이 본래 더 큰 제단화의 한 조각이었다는 사실을 떠올려 보세요. 지금은 홀로 떨어진 이 방랑자가, 한때는 인간의 죄와 운명을 펼쳐 보이던 거대한 이야기의 일부였다는 점을 헤아리며 보면, 그 의미가 한층 깊어진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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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에로니무스 보스

지옥 패널 누군가의 엉덩이에 악보가 새겨져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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