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està
← 소장품으로

황금방울새

The Goldfinch

Carel Fabritius

분류
Paintings
지역
서양
라이선스
Public domain (Wikimedia Commons)
작품 소개

황금방울새(The Goldfinch)는 네덜란드 황금시대의 미술가 카렐 파브리티우스가 실물 크기의 황금방울새를 그린 그림이다. 1654년에 서명하고 날짜가 기입된 이 작품은 현재 네덜란드 헤이그에 있는 마우리츠하위스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다. 이 작업은 33.5 X 22.8 센티미터의 크기의 캔버스에 유화를 칠한 작품으로, trompe-l'œil기법을 이용해, 한 때 더 큰 물건의 일부였다. 어쩌면 보호커버나, 창문틀의 일부였을 수 있다.

도슨트 이야기

1654년, 델프트의 한 화가가 작은 패널에 방울새 한 마리를 그렸어요. 먹이통 위의 횃대에 앉아 있는 새, 그 발목에는 가느다란 사슬이 매여 있어요. 날갯짓을 하려 해도 결코 날아오를 수 없는 새입니다.

카럴 파브리티위스는 그 해 10월 12일, 델프트 화약고 폭발로 숨졌어요. 폭발은 도시의 4분의 1을 쓸어버렸고, 그의 작업실과 대부분의 그림도 함께 사라졌어요. 서른두 살이었습니다. 이 그림이 그가 죽던 바로 그 해에 완성됐다는 사실은, 묶인 새를 바라볼 때 다른 무게로 다가와요. 어쩌면 그림 표면의 작은 함몰 자국들이 폭발의 충격으로 생긴 것일 수도 있다는 복원 조사 결과도 남아 있어요.

그림의 기법은 '눈속임 회화(트롱프뢰유)'예요. 그늘과 하이라이트, 아래에서 올려다보는 시선, 새의 머리 단축법까지 — 마치 진짜 새가 벽에 달린 먹이통에 앉아 있는 것처럼 보이도록 설계됐어요. 파브리티위스의 스승 렘브란트와는 다른 방식이었어요. 어두운 명암 대신 창백하고 서늘한 빛을 써서 밝은 배경에 새를 세웠죠. 미술사학자들은 그 빛 처리가 훗날 같은 델프트의 화가 베르메르에게 영향을 주었을 것이라고 짚어요.

그림은 작가의 죽음 이후 200년 넘게 행방이 묘연했어요. 19세기 중반에야 브뤼셀에서 발견됐고, 지금은 헤이그 마우리츠하이스 미술관의 소장품이 됐습니다. 그리고 2013년, 미국 작가 도나 타트가 이 그림을 소설의 중심에 놓으며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어요. 소설 속 열세 살 소년은 폭탄 테러가 일어난 미술관에서 살아남아 이 방울새 그림을 품에 안고 달아납니다.

횃대에 묶인 새, 폭발 속에서 살아남은 그림, 소설 속에서 다시 한번 도난당하는 새 — 파브리티위스의 황금방울새는 세기를 넘어 계속 사슬에 매인 채로 우리를 올려다보고 있어요.

이렇게 보세요
  • 실물 크기의 새환한 회벽 앞, 황금방울새 한 마리가 모이통 위에 앉아 옆모습을 보여요. 날개에 또렷한 노란 띠 하나가 단조로운 화면에서 유일하게 빛나지요.
  • 벽의 그림자새와 모이통 오른편으로 옅은 그림자가 벽에 드리워 있어요. 이 그림자 덕에 평평한 판자가 진짜 공간처럼, 새가 정말 거기 앉은 듯 느껴지지요.
  • 올려다보는 시점우리는 새를 살짝 아래에서 올려다보고 있어요. 본래 높은 곳에 걸려 지나는 이를 속이려던 그림임을 이 각도가 일러 주지요.
  • 붓질의 강약새의 몸통은 굵고 시원한 붓질로 툭툭 칠했는데, 발목을 묶은 가느다란 사슬은 가는 선으로 섬세하게 그렸어요. 그 강약의 대비가 눈에 들어와요.
  • 발목의 사슬한쪽 발이 가는 사슬로 횃대에 매여 있어요. 날 수 있는 새를 붙든 이 작은 쇠줄이, 그림에 묘한 애틋함을 더하지요.

이 작은 새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 것 같나요?

도슨트 심화더 깊이 보기 ↓

벽에 묶인 작은 새

환한 회벽 앞에, 황금방울새 한 마리가 모이통 위에 앉아 있어요. 새의 발목에는 가느다란 사슬이 매여 있어, 벽에 고정된 작은 횃대를 벗어날 수 없지요. 카럴 파브리티위스가 1654년에 그린 이 《황금방울새》는, 가로 22.8센티미터 세로 33.5센티미터의 작은 그림이에요. 그런데 이 작은 새가 어찌나 생생한지, 정말로 거기 살아 앉아 있는 듯 보인답니다. 보는 이의 눈을 감쪽같이 속이는 트롱프뢰유, 곧 눈속임 기법으로 그려진 작품이지요.

황금방울새는 유럽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흔하고 어여쁜 새예요. 고운 깃털과 듣기 좋은 지저귐 덕분에 사람들이 즐겨 기르던 애완조였지요. 놀랍게도 이 새는 골무만 한 작은 두레박으로 물을 길어 올리는 재주를 배울 수 있었다고 해요. 이 그림의 네덜란드어 제목 '풋터르티어(puttertje)'가 바로 '물 긷는 새'라는 뜻의 애칭이랍니다. 새의 발목을 묶은 사슬도, 어쩌면 그 재주를 부리게 하던 도구였을지 몰라요.

폭발에서 살아남은 그림

이 작은 그림에는 가슴 아픈 사연이 깃들어 있어요. 화가 파브리티위스는 1622년에 태어나 처음에는 목수로 일하다, 타고난 재능으로 암스테르담의 렘브란트 작업실에 들어간 인물이에요. 이후 델프트로 옮겨 1652년 성 루카 길드에 가입했지요. 그런데 이 《황금방울새》를 완성한 바로 그해, 1654년 10월 12일에 비극이 닥쳤어요. 델프트의 화약 창고가 폭발하면서, 최소 백 명이 목숨을 잃고 도시의 사분의 일이 무너져 내린 거예요.

서른두 살의 파브리티위스도 그 폭발에 휘말려 세상을 떠났어요. 그의 작업실과 수많은 작품도 함께 사라졌고, 오늘날 그의 진작으로 전하는 그림은 몇 점 되지 않지요. 그런데 흥미로운 단서가 하나 있어요. 2003년 복원 때, 화면 곳곳에서 작은 눌린 자국들이 발견되었거든요. 물감이 채 마르기 전에 생긴 흔적이라, 어쩌면 그 폭발이 남긴 상처일지도 모른다고 해요. 이 작은 새는 도시를 삼킨 비극에서 살아남은, 몇 안 되는 증인인 셈이랍니다.

단순함이 이룬 기적

《황금방울새》는 네덜란드 황금시대 회화 중에서도 무척 독특한 작품이에요. 보통 그 시대 그림들이 풍성한 세부로 가득한 데 반해, 이 그림은 새 한 마리만을 덩그러니 그린 더없이 단순한 구성을 택했거든요. 파브리티위스는 머리를 짧게 줄여 보이는 단축법, 횃대와 새 발에 떨어진 빛, 회벽에 드리운 짙은 그림자로 깊이의 환영을 빚어냈어요. 시점은 새를 살짝 아래에서 올려다보도록 잡혀 있는데, 이는 그림이 본래 높은 곳에 걸릴 작정이었음을 알려 주지요.

실제로 이 그림은 처음엔 액자도 없이, 창문 옆 같은 곳에 붙어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진짜 새처럼 보이도록 만들어졌으리라 추정돼요. 새 자체는 굵고 시원한 붓질로 그리고, 사슬 같은 세부만 정교하게 다듬었지요. 파브리티위스는 스승 렘브란트의 어두운 명암법과는 달리, 밝은 배경 앞에 어두운 형상을 두는 서늘한 햇빛의 화법을 즐겼어요. 그의 이런 솜씨는 같은 델프트에 살던 페르메이르를 비롯한 여러 화가에게 영향을 주었답니다. 한편 이 그림은 두 세기 넘게 잊혔다가 1859년 브뤼셀에서 다시 발견되었고, 1896년부터 헤이그의 마우리츠하위스 미술관에 머물고 있어요. 2013년에는 도나 타트의 동명 소설로 되살아나 이듬해 퓰리처상을 받기도 했지요.

관람 포인트

먼저 새가 정말 살아 있는 듯 보이는지 가만히 들여다보세요. 회벽 위로 드리운 그림자와 횃대에 떨어진 빛이, 어떻게 평평한 판자를 진짜 공간처럼 느껴지게 하는지 살펴보는 거예요. 다음으로 시점을 의식해 보세요. 우리는 새를 살짝 아래에서 올려다보고 있는데, 이는 이 그림이 본래 높은 곳에 걸릴 작정이었음을 일러 준답니다. 그리고 새를 그린 붓질과 사슬을 그린 붓질을 견주어 보세요. 몸통은 시원하고 대담하게, 사슬은 섬세하게 다룬 그 강약의 대비가 느껴질 거예요. 발목을 묶은 가느다란 사슬도 놓치지 마세요. 자유로운 새와 그를 붙든 사슬이, 이 작은 그림에 묘한 애틋함을 더한답니다. 마지막으로, 화가가 이 그림을 완성한 해에 폭발로 세상을 떠났다는 사실을 떠올려 보세요. 비극에서 살아남은 이 작은 새의 또렷한 눈빛이, 더없이 귀하게 다가올 거예요.

관련 용어
다음 이야기
Aristotle with a Bust of Homer
호메로스의 흉상을 응시하는 아리스토텔레스
렘브란트

1961년 경매 최고가를 깨뜨린 그림, 철학자의 손이 시인 흉상에 머물다

이어 보기 →
비슷한 시대의 명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