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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회하는 막달레나

Penitent Magdalene

카라바조

분류
Paintings
지역
서양
라이선스
Public domain (Wikimedia Commons)
작품 소개

Penitent Magdalene is a 16th-century oil on canvas painting by Italian Baroque painter Caravaggio. The painting portrays a repentant Mary Magdalene bowed in penitent sorrow as she leaves behind her dissolute life, its trappings abandoned beside her. At the time of its completion, ca. 1594–1595, the painting was unconventional for its contemporary realism and departure from traditional Magdalene iconography. It has invited both criticism and praise, with speculation even into the 21st century as to Caravaggio's intentions. The work hangs in the Doria Pamphilj Gallery in Rome.

도슨트 이야기

여인이 낮은 의자에 쭈그리고 앉아 있습니다. 무릎 위에 손을 모으고, 고개는 아래로 향하고, 눈길은 바닥 어딘가를 보는 것 같기도 하고 아무것도 보지 않는 것 같기도 해요. 뺨에는 눈물 한 방울이 흘러내리고 있습니다. 옆에는 보석들과 거의 가득 찬 유리병 하나가 놓여 있어요.

이것이 참회하는 막달라 마리아입니다. 그러나 카라바조가 그린 이 막달라 마리아를 처음 본 17세기 사람들은 당황했습니다. 당시 이 주제의 그림들은 대부분 막달라 마리아를 반나체로, 극적인 감정을 담아 표현했거든요. 카라바조의 여인은 그냥 평범한 복장을 한 채 조용히 앉아 있을 뿐이에요. 당시 비평가들이 '이웃집 처녀가 혼자 집에서 머리를 말리는 것 같다'고 불평할 만도 했습니다.

이 그림은 카라바조가 완성한 최초의 종교화로 추정됩니다. 그때 그는 다른 화가의 공방에 몸을 얹어 살던 무명의 젊은이였어요. 의뢰인은 교황 그레고리오 13세의 관리였던 피에트로 비트리체였고, 카라바조는 당대 로마에서 알려진 창녀들을 모델로 자주 기용했습니다. 이 그림의 여인이 안나 비안키니라는 인물이라는 추측도 있어요.

한 세기 반이 지난 뒤 예수회 시인 주세페 실로스는 이 그림 앞에서 완전히 다른 감상을 남겼습니다. '양심 속에 숨어 있는 침묵의 뉘우침이 보인다, 마음속 깊은 곳에서 비밀의 불꽃이 타오르고 있다'고요. 같은 그림을 보고 어떤 이는 연극성의 부재를 비판했고, 어떤 이는 그 고요함 속에서 영혼의 가장 깊은 곳을 읽었습니다. 카라바조의 막달라 마리아는 그 어떤 해석도 거부하지 않고, 그냥 고개를 숙인 채 거기 앉아 있습니다.

이렇게 보세요
  • 비스듬한 빛오른쪽 위에서 한 줄기 빛이 비스듬히 떨어져 여인을 비춰요. 나머지 벽과 구석은 짙은 어둠에 잠겨, 그를 무대 위처럼 떠오르게 하지요.
  • 떨군 고개낮은 의자에 웅크려 앉아 고개를 옆으로 푹 떨군 자세예요. 두 손을 무릎 위에 가만히 포갠 모습에서 조용한 슬픔이 배어 나오죠.
  • 평범한 옷거창한 후광도 상징도 없어요. 흰 소매에 무늬 든 조끼, 붉은 리본을 맨 그저 당대의 한 여인 같은 차림이 도리어 낯설고 사실적이지요.
  • 버려진 물건발치 바닥을 보세요. 흩어진 금붙이와 진주 목걸이, 유리병 하나가 놓여 있어요. 방금 버리고 나온 삶이 거기 흩어져 있답니다.
  • 한 줄기 눈물가만히 들여다보면 떨군 얼굴의 코 옆으로 가느다란 눈물 한 줄기가 흘러요. 화려한 상징 대신 이 작은 물방울에 참회를 담았지요.

이 여인이 슬픔에 잠긴 성녀인 줄, 무엇을 보고 알아차리게 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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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여인처럼 그려진 성녀

카라바조가 1594년에서 1595년 무렵에 그린 이 그림은, 방탕했던 삶을 막 버린 막달라 마리아의 모습을 담고 있어요. 젊은 갈색 머리의 여인이 낮은 의자에 웅크리듯 앉아, 두 손을 무릎 위에 모으고 있지요. 곁에는 벗어 던진 보석들과, 마개를 막은 채 거의 사분의 삼쯤 채워진 액체 병 하나가 놓여 있어요. 그의 시선은 우리를 외면한 채 아래로 향해 있고, 한쪽 뺨에는 눈물 한 줄기가 코 옆을 타고 흐르고 있답니다.

이 그림이 당시 사람들에게 충격을 준 까닭은, 막달라 마리아를 그리던 그때까지의 방식을 완전히 깨뜨렸기 때문이에요. 카라바조 시대의 막달라 마리아 그림들은 대개 그를 옷 하나 걸치지 않은 모습으로 그렸어요. 중세 전설에 따르면 그가 예수 승천 후 사막에서 삼십 년을 참회하며 지내는 동안 옷이 다 해졌다는 이야기에서 비롯된 것이었지요. 1533년 티치아노의 그림이 그 대표적인 예였답니다.

도상을 깬 충격

그런데 카라바조는 막달라 마리아를 당대의 평범한 옷차림으로 그렸어요. 전기 작가 존 바리아노의 말을 빌리면, 흔히 이 주제에 따라붙던 '비장함과 나른한 관능'을 걷어 낸 것이지요. 이 사실주의로의 전환이 처음 보는 이들을 놀라게 했어요. 비평가 힐러리 스펄링은 당대 사람들이 '그의 막달라 마리아가 마치 외출하지 않는 저녁에 홀로 집에서 머리를 말리는 옆집 소녀처럼 보인다'며 불평했다고 전한답니다.

반응은 칭송과 비판으로 갈렸어요. 17세기의 미술 전기 작가 잔 피에트로 벨로리는, 카라바조가 사실은 평범한 풍속화에 향유병과 벗어 던진 보석 같은 막달라 마리아의 상징물을 덧붙여 종교화인 척했을 뿐이라고 평했지요. 반면 예수회 시인 주세페 실로스는 1673년 출간한 책에서 이 작품을 한껏 찬양했어요. 그는 '카라바조의 색채가 어찌나 생생한지 그 여인의 가장 내밀한 감정까지 드러낸다'며, 양심의 어둠 속에 숨은 것을 한 폭의 그림으로 이토록 또렷이 펼쳐 보이는 화가는 참으로 드물다고 했답니다.

모델과 그 뒷이야기

이 작품은 교황 그레고리오 13세의 의상 담당관이었던 피에트로 비트리체의 주문으로 그려진 것이 거의 확실해요. 카라바조가 처음으로 완성한 종교화일 가능성도 있지요. 모델에 관해서도 흥미로운 이야기가 전해져요. 카라바조는 여러 작품에 매춘부들을 모델로 세운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역사가들은 이 그림의 모델이 안나 비안키니였으리라 짐작한답니다. 그는 카라바조의 다른 작품들에도 등장한 것으로 여겨지지요.

논쟁적인 전기를 쓴 피터 롭은, 이 그림의 사실주의와 그가 감지한 미묘한 폭력의 흔적들 — 깨진 진주, 부어오른 듯한 얼굴과 손 — 에 정치적 의미가 담겼을지 모른다고 보았어요. 당시 로마에서 경찰이 고급 매춘부들을 학대하던 현실에 대한 논평이라는 해석이지요. 한편 카라바조의 이 막달라 마리아는 훗날 조르주 드 라 투르에게 영감을 주어, 그가 같은 주제의 여러 변주를 그리도록 이끈 것으로 보인답니다. 이 작품은 지금 로마의 도리아 팜필리 미술관에 걸려 있어요.

관람 포인트

먼저 막달라 마리아의 옷차림을 눈여겨보세요. 헐벗은 성녀가 아니라 당대의 평범한 옷을 입은 한 여인이에요. 거창한 후광도, 과장된 비장함도 없이 그저 슬픔에 잠긴 모습이지요. 바로 이 점이 당시 사람들에게는 충격이었답니다. 다음으로 곁에 흩어진 물건들을 살펴보세요. 벗어 던진 보석과 향유병이, 그가 방금 버리고 나온 삶을 말없이 일러 줘요. 아래로 떨군 고개의 각도도 음미해 보세요. 십자가에 매달린 그리스도의 모습에 견주어지는 자세랍니다. 마지막으로 한쪽 뺨을 타고 흐르는 눈물 한 줄기를 찾아보세요. 카라바조가 화려한 상징 대신, 이 작은 눈물 하나에 참회의 마음을 온전히 담아냈음을 느끼게 될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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