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의 매장
The Entombment of Christ
- 분류
- Paintings
- 지역
- 서양
- 라이선스
- Public domain (Wikimedia Commons)
The Entombment of Christ is an oil on canvas painting by Caravaggio, from 1603–1604. It was created for the second chapel on the right in Santa Maria in Vallicella, a church built for the Oratory of Saint Philip Neri. A copy of the painting is now in the chapel, and the original is in the Vatican Pinacoteca. The painting has been copied by artists as diverse as Rubens, Fragonard, Géricault and Cézanne.
로마의 새 교회 키에사 누오바에 카라바조가 그림을 걸었을 때, 제단 앞 신자들이 가장 먼저 본 것은 늘어진 팔이었어요. 그리스도의 오른팔이 화면 아래쪽 돌판을 향해 힘없이 떨어지고, 수의가 그 손 끝에서 차갑게 닿아요. 부활 이전 가장 무거운 순간이에요.
그림 속 두 남자가 시신을 받치고 있어요. 젊은 요한은 붉은 망토를 걸치고 오른쪽 무릎으로 그리스도의 몸을 지탱하며, 손이 옆구리 상처를 벌리고 있어요. 니코데모는 미켈란젤로의 얼굴을 하고 발을 돌판 끝에 굳게 버티며 무릎을 붙잡아요. 카라바조는 안정된 시신과 분투하는 운반자들의 무게를 같은 화면 안에 담았어요.
뒤쪽 세 여인은 저마다 다른 방식으로 슬픔을 표현해요. 중앙의 막달라 마리아는 흰 손수건으로 눈물을 닦고, 수녀 복장의 성모는 팔을 옆으로 벌려 돌판의 선을 되풀이하며, 오른쪽 여인은 두 팔을 하늘로 치켜들어요. 세 여인은 하나의 슬픔을 다른 음계로 노래하는 것 같아요.
제단화라는 자리가 이 그림에 또 다른 의미를 더해줬어요. 사제가 성체를 들어올리는 바로 그 순간, 배경의 그리스도 시신과 겹쳐지는 구도였지요. 매일의 미사마다 그림은 그 의식의 살아 있는 주석이 됐어요. 루벤스·프라고나르·세잔 같은 후대 화가들이 이 그림을 모사했다는 사실이, 그 무게를 짐작하게 해줘요.
- 내려놓는 무게 — 죽은 그리스도의 몸이 무덤 돌 위로 막 내려놓이는 순간이에요. 축 늘어진 그 무게가 받쳐 든 사람들의 팔에 고스란히 실린 게 느껴지지요.
- 치켜든 두 팔 — 맨 오른쪽 여인이 두 팔을 하늘로 번쩍 치켜들며 절규해요. 클로파의 마리아예요. 카라바조의 그림에서 팔이 가리키는 방향엔 늘 뜻이 담긴답니다.
- 어둠과 빛 — 깊은 검은 배경에서 인물들만 빛을 받아 떠올라요. 위에서 비스듬히 쏟아지는 빛을 따라 시선이 절규에서 슬픔을 지나 침묵 같은 죽음으로 미끄러져 내려가지요.
- 올려다보는 시점 — 무덤 돌의 모서리가 화면 앞으로 불쑥 튀어나와, 마치 우리가 무덤 안에서 위를 올려다보는 듯해요. 그래서 비통이 더없이 가깝게 다가오지요.
- 구석의 풀 — 왼쪽 아래, 어둠 속에 작은 풀 한 포기가 돋아 있어요. 거장은 이런 디테일까지 잊지 않고 화면을 단단히 땅에 붙들어 맸답니다.
이 무리의 슬픔 가운데, 당신의 마음을 가장 흔든 손짓은 무엇이었나요?
도슨트 심화더 깊이 보기 ↓접기 ↑
새 성당의 제단을 위하여
1575년, 교황 그레고리오 13세는 필리포 네리가 이끄는 오라토리오회에 산타 마리아 인 발리첼라 성당을 내어 주는 칙서를 내렸어요. 그로부터 두 달 뒤 성당을 다시 짓는 공사가 시작되었고, '새 성당'이라 불리게 된 이곳의 모든 제단은 성모의 신비에 바쳐졌지요. 카라바조의 이 「그리스도의 매장」은 그중 피에타에 바쳐진 예배당을 위해 그려졌어요. 1602년 무렵 의뢰되어 1604년에는 한 문서에 '새것'으로 기록되었으니, 1603년에서 1604년 사이의 작품으로 여겨진답니다.
이 예배당은 특별한 자리였어요. 미사를 올릴 수 있고 특별한 은사가 내려진 '특권' 제단이었지요. 그래서 매일같이 사제가 갓 축성한 성체를 높이 들어 올릴 때, 이 그림이 그 배경이 되어 주었답니다. 사제가 '이것은 내 몸이다'라고 읊조리는 순간, 화면 속 그리스도의 몸과 성체가 완벽하게 포개졌던 셈이에요.
무덤 안에서 올려다보는 시점
이 그림은 변용의 순간이 아니라 애도의 순간을 담고 있어요. 비스듬히 쏟아져 내리는 듯한 인물들의 배치를 따라, 우리의 눈은 어둠 속에서 아래로 미끄러져 내려가지요. 두 팔을 하늘로 치켜든 클로파의 마리아의 격정에서 시작해, 한결 가라앉은 슬픔을 지나, 마침내 침묵 같은 죽음에 가닿아요.
카라바조의 그리스도는 흔히 보던 앙상한 몸이 아니에요. 근육이 잡히고 핏줄이 도드라진, 두툼한 노동자의 몸이지요. 죽은 그의 몸은 차분하고 위엄 있게 자리하는데, 그를 떠받친 사람들의 자세는 불안정하게 힘이 잔뜩 들어가 있어요. 카라바조는 이 안정과 불안정을 절묘하게 맞세웠답니다. 마치 우리가 무덤 안에서 위를 올려다보는 듯한 시점이라, 그 비통이 더없이 가깝게 다가와요.
어디를 가리키는 팔인가
카라바조의 그림에서는 늘 인물의 팔이 어디를 향하는지 살펴야 해요. 「성 바오로의 개종」에서는 하늘을, 「성 마태오를 부르심」에서는 레위를 가리켰지요. 여기서는 죽은 신의 늘어진 팔과 새하얀 수의가 차가운 돌에 닿고, 슬픔에 잠긴 클로파의 마리아는 하늘을 향해 두 팔을 뻗어요. 신이 땅으로 내려오고, 인류가 하늘과 화해한다는 그리스도의 메시지가 그 손짓에 담겨 있는 셈이지요.
인물들의 정체도 흥미로워요. 그리스도를 떠받친 젊은 인물은 붉은 망토를 두른 복음서 저자 요한이고, 무릎을 끌어안은 인물 니코데모에게는 미켈란젤로의 얼굴이 입혀졌어요. 카라바조는 미켈란젤로의 「피에타」와 피렌체 「피에타」를 곱씹으며, 그 거장의 자화상까지 자기 화면으로 옮겨 온 것이랍니다.
거장들이 따라 그린 걸작
이 그림은 그려지자마자 줄리오 만치니, 조반니 발리오네, 조반 피에트로 벨로리 같은 당대 평론가들의 한결같은 찬사를 받았어요. 1797년에는 나폴레옹의 미술관을 위해 파리로 옮겨졌다가, 1816년 로마로 돌아와 바티칸에 자리 잡았지요. 무엇보다 이 작품은 루벤스와 프라고나르, 제리코, 세잔에 이르기까지 서로 무척 다른 화가들이 저마다 따라 그렸을 만큼 깊은 영향을 남겼답니다.
관람 포인트
먼저 화면 전체를 위에서 아래로 천천히 따라가 보세요. 하늘로 치켜든 마리아의 두 팔에서 시작해, 인물들이 비스듬히 흘러내리며 마침내 차가운 돌에 닿는 그 흐름을 눈으로 좇는 거예요. 그다음 죽은 그리스도의 몸을 들여다보세요. 축 늘어진 그 무게가 받쳐 든 사람들의 팔에 고스란히 실린 것이 느껴질 거예요. 요한이 무심코 벌어진 상처에 손이 닿는 모습도 놓치지 마세요. 두 팔을 하늘로 뻗은 클로파의 마리아도 눈여겨보세요. 카라바조의 그림에서 팔이 가리키는 방향에는 늘 뜻이 담겨 있으니까요. 마지막으로 왼쪽 아래 구석의 작은 식물 한 포기를 찾아보세요. 흔히 우단담배풀이라 불리는 이 풀은 악령을 쫓는다고 여겨졌는데, 거장은 이런 작은 디테일까지 결코 잊지 않고 화면을 땅에 단단히 붙들어 맸답니다.

어둠을 가른 빛 한 줄기와 뻗은 손 — 미켈란젤로의 창조가 울려 퍼졌어요.
이어 보기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