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키 목욕탕
The Turkish Ba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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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ainting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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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키 목욕탕》(프랑스어: Le Bain turc, 영어: The Turkish Bath)은 장오귀스트도미니크 앵그르가 그린 유화로, 1852년에서 1859년 사이에 처음 완성되었으나 1862년에 수정되었다. 이 그림은 하렘의 수영장에서 알몸의 여성 무리를 묘사하고 있다. 작품은 근동을 연상시키면서 동시에 신화적 주제와 관련된 서양의 초기 양식들을 불러일으키는 에로틱한 스타일을 지니고 있다. 이 그림은 특히 1808년의 《발팽송의 목욕하는 여인》과 1814년의 《그랑드 오달리스크》에서 앵그르가 탐구했던 여러 모티프를 확장시킨 것으로, 낭만주의의 한 예이기도 하다.
1862년, 앵그르는 서명 옆에 'AETATIS LXXXII'라고 적었어요. '82세에'라는 뜻이에요. 평생 나체 습작을 모아온 화가가 노년에 이르러 그 모든 것을 하나의 화면에 쏟아부은 셈이죠.
원래 이 그림은 사각형 캔버스였어요. 그런데 앵그르는 완성 직전 그것을 원형 화면, 즉 '톤도'로 바꿔버렸어요. 이 선택이 그림의 성격을 통째로 바꿨어요. 둥근 테두리는 마치 목욕탕 벽의 작은 창처럼 보는 이를 몰래 들여다보는 자리에 세워 놓거든요. 앵그르는 그 효과를 정확히 계산했을 거예요.
화면 안의 여성들은 실제 모델이 아니에요. 그는 유럽 밖을 한 번도 여행하지 않았어요. 그 대신 1825년 노트에 베껴둔 레이디 메리 워틀리 몬태규의 편지 — '아드리아노플 여성 목욕탕 묘사' — 와 수십 년간 쌓아온 습작 스케치들이 재료였어요. 중앙에 등을 보이며 앉은 여성은 1808년에 그린 '발팽송의 목욕하는 여인'과 거의 같은 자세예요. 시간이 흘러도 앵그르의 눈에 담긴 형태는 바뀌지 않았던 거죠.
그림이 팔렸다가 며칠 만에 돌아온 일도 있었어요. 나폴레옹 3세의 친척이 샀다가 아내가 '부적절하다'며 반품했거든요. 루브르는 두 번이나 인수를 거절했어요. 결국 1911년, 후원자들의 자금 지원으로 루브르에 자리를 잡았죠.
5년 뒤인 1867년, 앵그르는 지인들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해요. '나는 아직 서른 살 사내의 불꽃을 간직하고 있소.' 그 말이 사실인지는 몰라도, 원형 창 안에 담긴 열기만큼은 지금도 식지 않은 채 루브르에 걸려 있어요.
- 둥근 창 너머 — 화면 자체가 둥근 원이에요. 마치 둥근 채광창 너머로 은밀한 광경을 훔쳐보는 듯한 시선을 만들어, 보는 이를 슬쩍 엿보는 자리에 세워요.
- 등을 보인 류트 — 화면 한가운데, 등을 돌린 채 흰 두건을 쓰고 류트를 켜는 여인에게 먼저 눈을 두세요. 둥근 화면의 무게중심이 바로 이 등에 걸려 있어요.
- 곡선의 푸가 — 시선을 천천히 둘레로 돌려 보세요. 비스듬히 누운 몸, 머리 위로 팔을 올린 몸, 기댄 몸이 이어지며 여인들의 살결이 하나의 둥근 곡선처럼 화면 전체를 감싸 돌아요.
- 섬세한 살빛 — 색은 창백한 흰빛에서 분홍, 상아색, 옅은 회색으로 한없이 부드럽게 이어져요. 윤곽이 흐트러짐 없이 매끄러워, 살이 도자기처럼 정련돼 보이죠.
- 적은 동방 — 왼쪽의 푸른 도자기, 앞쪽의 향로와 잔, 몇몇 보석을 빼면 '동방'의 흔적이 의외로 적어요. 여인들의 얼굴도 유럽인에 가깝죠. 화가의 머릿속에만 있던 동방의 꿈이에요.
둥근 테두리는 당신을 구경꾼으로 만드나요, 아니면 이 방 안에 들여놓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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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든둘에 그린 마지막 환상
신고전주의의 거장 앵그르가 이 둥근 그림에 서명을 남긴 것은 1862년, 그의 나이 여든둘 무렵이었어요. 화면 한쪽에는 라틴어로 'AETATIS LXXXII', 곧 '여든두 살에'라는 글귀를 직접 새겨 넣었죠. 노년에 이런 농염한 그림을 그린다는 것 자체를 그는 즐겼던 모양이에요. 훗날 그는 '나는 아직 서른 살 사내의 불을 그대로 지니고 있다'고 호언했다고 하니까요. 처음에는 사각형 화면으로 1852년부터 1859년 사이에 그렸다가, 1862년에 둥근 '톤도' 형태로 고쳐 완성했어요. 사각형이던 원래 모습은 사진가 샤를 마르빌이 찍은 사진으로 남아 전합니다. 지금은 파리 루브르 박물관에 있죠.
둥근 창으로 엿보는 하렘
화면 가득, 하렘 목욕탕의 여인들이 나른하게 모여 있어요. 향로의 흐릿한 연기, 흐르는 물, 과일과 보석, 악기가 동방의 환상을 자아내죠. 둥근 화면은 단지 형태만 바꾼 게 아니에요. 마치 둥근 채광창 너머로 은밀한 광경을 훔쳐보는 듯한 '관음의 시선'을 만들어 내거든요. 색채는 창백한 흰빛에서 분홍, 상아색, 옅은 회색, 갖가지 갈색으로 이어지며 더없이 섬세해요. 흥미롭게도 앵그르는 살아 있는 모델을 앞에 두고 그린 게 아니라, 평생 그려 온 데생과 옛 작품들을 한데 모아 다시 구성했어요. 화면 중앙에서 긴 목의 류트를 켜는 여인은 그의 옛 작품 《발팽송의 목욕하는 여인》과 거의 똑같은 모습이랍니다.
가 본 적 없는 동방
앵그르는 평생 유럽 바깥으로 나가 본 적이 없어요. 그러니 이 하렘은 철저히 상상으로 빚어낸 환상이죠. 그는 젊은 시절부터 술탄의 목욕탕을 묘사한 글들을 노트에 옮겨 적었고, 오스만 제국에 머문 영국 여성 메리 워틀리 몬터규의 편지에서 '아드리아노플 여인 목욕탕' 대목을 베껴 두기도 했어요. '이백 명쯤 되는 아름다운 나신의 여인들이 저마다의 자세로, 더러는 이야기를 나누고 더러는 커피나 셔벗을 맛보며 나른하게 누워 있었다'는 그 글은, 당시 유럽을 휩쓴 동방 열풍에 한몫했죠. 다만 그 속의 공중목욕탕과 이 그림은 사실 별로 닮지 않았어요. 화가에게 동방이란 결국 여성 누드를 정적이고 관능적인 맥락에 놓기 위한 우아한 핑계였던 거예요. 그래서 여기 여인들도 중동이나 아프리카 사람이라기보다 유럽인의 얼굴에 가까워요. 처음 이 그림을 산 사람은 나폴레옹 3세의 친척이었는데, 아내가 '점잖지 못하다'며 며칠 만에 되돌려 보냈다는 일화도 전합니다.
관람 포인트
먼저 화면 한가운데, 등을 보인 채 류트를 켜는 여인에게 시선을 두세요. 앵그르가 반세기 전에 그린 목욕하는 여인이 그대로 살아 돌아온 자리예요. 그다음 시선을 천천히 둘레로 돌려 보세요. 여인들의 몸이 하나의 거대한 곡선의 '푸가'처럼 둥글게 이어지며 화면 전체를 감싸 도는 게 느껴질 거예요. 오른쪽 앞, 두 팔을 머리 위로 올린 여인의 얼굴은 화가의 아내 델핀의 옛 데생에서 따온 것이고, 뒤쪽에서 잔을 든 여인은 그의 유명한 초상 《무아테시에 부인》을 닮았어요. 마지막으로 향로와 악기, 보석 몇 점을 빼면 동방의 흔적이 의외로 적다는 점도 확인해 보세요. 화가의 머릿속에만 존재했던 동방의 꿈이 거기 있답니다.

척추가 두세 개 더 있어야 가능한 등을 그려 혹평받은 앵그르의 역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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