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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의 매장

The Deposition

라파엘로 산치오

분류
Paintings
지역
서양
라이선스
Public domain (Wikimedia Commons)
작품 소개

The Deposition, also known as the Pala Baglioni, Borghese Entombment or The Entombment, is an oil painting by the Italian High Renaissance painter Raphael. Signed and dated "Raphael. Urbinas. MDVII", the painting is in the Galleria Borghese in Rome. It is the central panel of a larger altarpiece commissioned by Atalanta Baglioni of Perugia in honor of her slain son, Grifonetto Baglioni. Like many works, it shares elements of the common subjects of the Deposition of Christ, the Lamentation of Christ, and the Entombment of Christ. The painting is on wood panel and measures 184 x 176 cm.

도슨트 이야기

1500년 7월 밤, 페루자에서 끔찍한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붉은 결혼식'이라 불리는 이 밤에 그리포네토 발리오니는 잠자는 가족들을 죽이려는 음모에 가담했어요. 그의 어머니 아탈란타는 피투성이 아들에게 피신처를 거부했고, 복수를 당해 쓰러지는 자리에 뒤늦게 달려왔습니다. 몇 해 뒤 그녀는 라파엘로에게 아들을 기리는 제단화를 의뢰했어요.

라파엘로는 2년에 걸쳐 구성을 다듬었습니다. 스승 페루지노 풍의 '애도'로 시작했다가, 고대 로마 석관 부조와 미켈란젤로의 영향을 받아 '매장' 장면으로 전환했어요. 페루자와 피렌체의 두 양식이 합쳐지는 중요한 전환점이었습니다.

완성된 그림은 내려짐과 매장 사이 어딘가에 놓여 있습니다. 오른쪽 배경에는 골고다, 왼쪽에는 무덤 동굴이 있고, 두 남자가 아마포로 그리스도의 몸을 옮기는 순간이 포착되어 있어요. 죽은 손을 붙잡은 막달라 마리아의 살아 있는 손 — 바사리는 이 그림을 '방금 그린 듯 생생한 신성한 회화'라 썼습니다.

1608년 보르게세 추기경의 심복들이 야밤에 이 그림을 강제로 뜯어갔습니다. 교황은 달래기 위해 복사본을 페루자에 돌려보냈어요. 지금 원본은 로마 보르게세 갤러리에 있습니다.

그리스도 몸을 오른쪽에서 붙든 젊은 남자는 그리포네토 자신의 초상으로 여겨집니다. 어머니가 피신처를 거부한 아들 — 라파엘로는 그를 구원의 무게를 함께 나누는 사람으로 화면 안에 되살렸습니다.

이렇게 보세요
  • 대각선화면 가운데, 축 늘어진 그리스도의 몸이 왼쪽 아래로 비스듬히 흘러내려요. 그를 떠받친 두 사람이 만든 강한 사선에 주검의 무게가 고스란히 실리지요.
  • 맨발의 청년오른쪽에서 다리를 떠받친 붉은 옷·붉은 각반의 젊은이가 몸을 잔뜩 비틀어요. 그 긴장한 자세가 시신을 옮기는 힘겨움을 그대로 보여 줘요.
  • 쓰러지는 성모화면 오른편 뒤쪽, 푸른 옷의 성모가 정신을 잃고 뒤로 무너지자 세 여인이 황급히 부축해요. 무릎 꿇은 여인의 뒤틀린 자세가 유난히 격렬하지요.
  • 맞닿은 손가운데 흰옷의 막달라 마리아가 그리스도의 늘어진 손을 가만히 받쳐 들어요. 살아 있는 손과 창백한 죽은 손이 맞닿아 미묘한 살빛 대비를 이루지요.
  • 배경의 좌우멀리 오른쪽엔 십자가 선 언덕이, 왼쪽엔 매장될 동굴 입구가 보여요. 이 행렬이 죽음의 자리와 무덤 사이 어딘가에 멈춰 서 있음을 일러 주지요.

이 많은 사람 가운데, 슬픔이 가장 사무치게 느껴지는 이는 누구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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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어머니의 슬픔에서 태어난 그림

이 제단화 뒤에는 가슴 아픈 한 가문의 이야기가 깃들어 있어요. 16세기 초 이탈리아의 페루자에서는 가문끼리의 유혈 다툼이 흔했는데, 그 도시를 다스리던 발리오니 가문도 예외가 아니었지요. 1500년 어느 여름밤, 그리포네토 발리오니는 잠든 일족 대부분을 살해하는 끔찍한 음모에 가담했어요. 사람들이 '붉은 결혼식'이라 부른 참극이었지요. 피바람이 지나간 뒤 그의 어머니 아탈란타는 처음엔 아들을 집에 들이기를 거부했지만, 곧 마음을 돌이켜 그를 뒤쫓았어요. 그러나 어머니가 다다랐을 때는 이미 살아남은 일족의 손에 아들이 죽임을 당하는 순간이었답니다.

몇 해 뒤, 아탈란타는 죽은 아들 그리포네토를 기리기 위해 젊은 라파엘로에게 제단화를 주문했어요. 라파엘로는 이 의뢰를 진지하게 받아들여, 두 해에 걸쳐 수많은 밑그림을 그리며 구상을 다듬었지요. 1507년에 완성된 이 그림에는 '라파엘로, 우르비노 출신, 1507년'이라는 서명과 날짜가 또렷이 남아 있어요. 페루자는 그의 스승 페루지노의 고향이기도 했으니, 이 작품은 젊은 라파엘로가 원숙한 자기 양식을 빚어 가던 중요한 분기점이었답니다.

애도에서 운구로

남아 있는 밑그림들을 보면, 라파엘로의 구상이 어떻게 변해 갔는지 엿볼 수 있어요. 그는 처음엔 스승 페루지노의 그림처럼 죽은 그리스도를 둘러싸고 슬퍼하는 '애도' 장면을 떠올렸어요. 그러다 차츰 그리스도를 무덤으로 옮기는 '매장'의 순간으로 주제를 바꾸어 갔지요. 이 변화는 그림 전체의 성격을 완전히 뒤바꿔 놓았어요. 가만히 멈춰 슬퍼하는 정적인 피에타에서, 인물들이 움직이며 이야기를 펼치는 극적인 장면으로 옮겨 간 거예요. 이 무렵 같은 도시에 머물던 레오나르도와 미켈란젤로의 새로운 기법을 흡수해 가던 라파엘로에게, 이 긴 구상의 시간은 더없이 좋은 단련의 기회가 되었답니다.

화면을 자세히 보면, 묘사된 장면은 사실 '십자가에서 내림'도 '매장'도 아닌, 그 중간 어디쯤이에요. 배경 오른쪽엔 십자가가 섰던 갈보리 언덕이, 왼쪽엔 매장이 이루어질 동굴이 보이지요. 후광이 없는 두 남자가 천을 받쳐 그리스도의 주검을 옮기는데, 오른쪽에서 그를 떠받친 젊은이는 살해당한 그리포네토 자신을 형상화한 것으로 여겨져요. 어머니가 죽은 아들을 그리스도의 자리에 겹쳐 보고 싶었던 마음이, 이 한 인물에 사무치게 담긴 셈이에요.

기절한 성모

화면 오른쪽, 조금 뒤편으로 물러난 무리에는 또 하나의 비통이 펼쳐져요. 세 마리아가 슬픔에 겨워 정신을 잃고 쓰러지는 성모를 부축하고 있지요. 자식을 잃은 어머니가 까무러치는 이 '성모의 실신' 장면은 당시로서는 논란이 된 표현이었어요. 무릎 꿇은 마리아의 자세는 몸을 비틀고 옷자락이 날카롭게 꺾인 '피구라 세르펜티나타'로, 미켈란젤로의 '도니 톤도'에서 직접 영감을 받은 것으로 보인답니다. 색채에서도 라파엘로는 강렬한 빨강과 파랑, 노랑과 초록을 절묘하게 어우르며, 살아 있는 막달라 마리아의 손과 죽은 그리스도의 손이 맞닿는 데서 미묘한 살빛의 대비를 빚어냈어요.

관람 포인트

먼저 화면 가운데에서 두 남자와 그리스도가 이루는 강한 대각선의 V자 흐름을 따라가 보세요. 주검의 무게와 그것을 떠받친 이들의 긴장이 그 선 안에 고스란히 실려 있답니다. 그다음 오른쪽에서 그리스도를 든 젊은이의 얼굴을 눈여겨보세요. 어머니 아탈란타가 죽은 아들을 겹쳐 보고 싶어 했던 바로 그 그리포네토일지도 모른답니다. 이어 화면 오른편, 정신을 잃고 쓰러지는 성모와 그를 둘러싼 세 마리아의 몸짓으로 시선을 옮겨 보세요. 무릎 꿇은 마리아의 뒤틀린 자세에서 미켈란젤로의 그림자가 느껴질 거예요. 마지막으로 배경의 좌우를 견주어 보세요. 오른쪽 갈보리 언덕과 왼쪽 동굴 사이, 이 그림이 죽음의 자리와 무덤 사이 어느 길목에 멈춰 서 있음을 알아챌 수 있답니다.

다음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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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스티나 마돈나
라파엘로 산치오

그림 맨 아래 지루한 표정의 두 아기 천사가 그림보다 더 유명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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