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est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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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아 학살

The Massacre of the Innocents

대 피터르 브뤼헐

분류
Paintings
지역
서양
라이선스
Public domain (Wikimedia Commons)
작품 소개

Several oil-on-oak-panel versions of The Massacre of the Innocents were painted by 16th-century Netherlandish painters Pieter Bruegel the Elder and his son Pieter Brueghel the Younger. The work translates the Biblical account of the Massacre of the Innocents into a winter scene in the Southern Netherlands in the prelude to the Dutch Revolt against Spanish rule, also known as the Eighty Years' War.

도슨트 이야기

성경 속 이야기는 베들레헴이었지만, 브뤼헐이 옮겨놓은 무대는 눈 덮인 16세기 플랑드르 마을이에요. 스페인 군대와 독일 용병들이 마을로 쏟아져 들어오고, 방패에는 합스부르크의 쌍두 독수리가 선명하게 새겨져 있습니다. 관람객은 이 그림이 헤롯왕의 이야기를 빌려 당대 스페인 점령군의 만행을 고발하고 있다는 사실을 어렵지 않게 읽어냈을 거예요.

그런데 오늘날 영국 왕실 컬렉션에 있는 브뤼헐 원본에서는 아기들의 시신을 볼 수 없어요. 신성로마제국 황제 루돌프 2세가 이 그림을 입수한 뒤, 학살 장면이 너무 잔혹하다며 덧칠을 명했기 때문입니다. 죽은 아이들은 고기·치즈·가금류·자루로 바뀌었고, 피로 물든 눈밭은 단순한 약탈 장면이 됐어요. 1998년 복원 작업 중에야 비로소 이 덧칠이 드러났습니다.

아들 피터르 브뤼헐이 그린 여러 복제본에서는 원래 구성이 살아 있어요. 붉은 외투 병사 발치에 아기 시신이 놓여 있고, 어머니들이 아이를 빼앗기지 않으려 달려드는 장면이 그대로 남아 있죠. 원본과 복제본을 나란히 보면, 권력이 그림 한 장을 어떻게 '순화'하는지를 생생하게 목격할 수 있어요.

브뤼헐은 이 대규모 화면 안에 수많은 작은 이야기를 동시에 펼쳐놓는 방식을 즐겼어요. 다리 위 기마병, 담벼락에 소변 보는 병사, 아이를 숨기려는 남자, 문을 도끼로 부수는 병사 — 카오스 속에서 각자의 공포가 동시에 펼쳐집니다. 한 화면이지만 시선이 멈추는 곳마다 새로운 비극이 시작돼요.

황제가 지워버리려 한 것은 아이들의 시신만이 아니었을 거예요. 그 아래 깔린 점령과 폭력에 대한 기억도 함께 지우고 싶었겠지요. 400년이 지나 덧칠이 드러났을 때, 그림은 다시 한번 묻습니다 — 지워도 사라지는 것은 없다고.

이렇게 보세요
  • 새하얀 눈온 마을이 두껍게 눈에 덮였어요. 그 순결한 흰빛 위에서 벌어지는 일이라, 군인들의 만행이 더욱 서늘하게 도드라지지요.
  • 빽빽한 창화면 가운데, 검은 갑옷의 기마병 무리가 빈틈없이 모여 창을 곧추세웠어요. 하늘로 솟은 그 창의 숲이 빠져나갈 길 없는 위압을 만들어요.
  • 흩어진 사연눈길 닿는 곳마다 작은 이야기가 동시에 벌어져요. 집 문을 두드리는 군인, 아이를 감싸 안고 매달리는 부모, 그들을 떼어 내려는 손길이 골목마다 흩어져 있지요.
  • 붉은 집양옆으로 늘어선 집들의 붉은 벽돌과 지붕이 흰 눈·검은 군인과 강하게 부딪쳐요. 그 색의 대비가 평범한 겨울 마을을 비극의 무대로 바꿔 놓아요.
  • 멀리 교회화면 안쪽 멀리, 눈 덮인 마을 너머로 교회 첨탑이 솟아 있어요. 거기서부터 시선을 앞으로 끌어오면 마을 전체를 굽어보며 거니는 듯하답니다.

이 북적이는 화면에서, 당신의 눈에 가장 먼저 닿은 작은 이야기는 무엇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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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덮인 마을에 닥친 학살

복음서에는 헤롯 왕이 베들레헴의 갓난아기들을 모두 죽이라 명한 끔찍한 이야기가 전해져요. 동방박사에게서 새로운 왕이 태어났다는 말을 들은 헤롯이, 두 살 아래의 사내아이를 모조리 학살하라 한 사건이지요. 16세기 네덜란드의 화가 대 피터르 브뤼헐은 이 성경 속 비극을, 놀랍게도 자기 시대의 눈 덮인 플랑드르 마을로 옮겨 그렸어요. 1564년에서 1565년에 걸친 혹독한 겨울이 이 새하얀 설경에 영감을 주었을 것이라고 해요. 처마엔 고드름이 매달리고 연못은 두꺼운 얼음으로 덮여 있지요. 같은 시기에 그린 '눈 속의 사냥꾼들'도 바로 그 겨울에서 비롯된 작품이랍니다.

그림 속에서 무장한 군인들은 집집마다 들이닥쳐요. 그런데 이들은 단순한 옛이야기 속 인물이 아니에요. 브뤼헐은 이 학살자들을 스페인 군인과 독일 용병의 모습으로 그렸어요. 당시 네덜란드는 스페인의 가혹한 지배 아래 신음하고 있었고, 머지않아 팔십 년에 걸친 독립 전쟁이 터지려는 참이었지요. 그러니 이 그림은 성경 이야기를 빌려 점령군의 만행을 고발한 시대 증언이기도 하답니다. 새하얀 눈밭 위에서 벌어지는 잔혹함이라, 그 서늘함이 더욱 사무치게 다가와요.

덧칠로 가려진 비극

이 그림에는 권력이 진실을 지우려 한 흔적이 숨어 있어요. 브뤼헐이 직접 그린 것으로 여겨지는 원본은 지금 영국 왕실 소장품에 있는데, 한때 이 그림은 신성로마제국 황제 루돌프 2세의 손에 들어갔지요. 그런데 황제는 이 처참한 장면을 몹시 꺼렸어요. 더구나 학살을 저지르는 군인들이 자기 가문의 쌍두 독수리 문장을 달고 있었으니 더욱 그러했지요. 그리하여 황제는 죽은 아기들 위에 다른 것들을 덧칠하도록 명했답니다. 그 결과 살해당한 아기들은 음식과 자루, 짐짝 같은 물건으로 바뀌었고, 학살의 현장은 그저 약탈하는 장면처럼 둔갑하고 말았어요.

이 덧칠의 비밀은 한참 뒤에야 드러났어요. 1998년의 복원 작업 중에 그 아래 감춰진 본래의 모습이 밝혀진 것이지요. 흥미롭게도 빈의 미술사 박물관에 있는 또 다른 판본은 덧칠되지 않은 채로 남아, 죽어 가는 아이들의 본래 장면을 그대로 보여 줘요. 이 빈의 그림은 오랫동안 원본으로 여겨졌지만, 지금은 그의 아들 소 피터르 브뤼헐이나 그 공방에서 그린 사본으로 본답니다. 아버지와 아들, 그 공방을 거치며 이 무서운 장면은 여러 점으로 거듭 그려졌어요.

한 화면에 펼쳐진 수많은 이야기

브뤼헐의 그림이 늘 그러하듯, 이 작품도 하나의 큰 화면 안에 수많은 작은 이야기가 동시에 펼쳐져요. 눈길 닿는 곳마다 저마다의 사연이 벌어지지요. 다리를 지키는 기마병, 아이를 숨기려는 남자, 죽은 아기를 안고 홀로 슬퍼하는 여인, 딸 대신 어린 아들을 데려가 달라 군인에게 애원하는 부부가 흩어져 있어요. 화면 가운데에는 검은 갑옷을 두른 스페인 군인 무리가 창을 겨누고, 그 뒤로는 말을 탄 군인들이 빽빽이 늘어서 있지요. 화면 왼쪽 앞에 선 기마병 가운데 하나는 네덜란드를 잔혹하게 다스린 알바 공작을 그린 것으로 보인다고도 해요.

관람 포인트

먼저 멀리 보이는 교회를 출발점 삼아, 거기서 화면 앞쪽으로 시선을 천천히 끌어와 보세요. 다리 위의 기마병에서 시작해 골목마다 벌어지는 작은 장면들을 하나씩 따라가면, 마을 전체를 굽어보며 거니는 듯한 느낌이 든답니다. 다음으로 사람들의 몸짓을 눈여겨보세요. 아이를 지키려 매달리는 부모와 그들을 밀쳐 내는 군인의 자세에서, 소리 없는 절규가 들려올 거예요. 화면 가운데 검은 갑옷의 군인 무리와 그들이 든 창의 방향도 짚어 보세요. 그리고 만약 왕실 소장본을 보게 된다면, 곳곳에 어색하게 놓인 음식과 짐짝을 찾아보세요. 본래 그 자리에 있던 것이 죽은 아기였음을 떠올리면, 덧칠 아래 감춰진 진실이 한층 서늘하게 다가온답니다. 마지막으로 온 화면을 뒤덮은 새하얀 눈을 바라보세요. 그 순결한 흰빛이 학살의 핏자국을 더욱 또렷이 드러낸다는 사실을, 브뤼헐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지요.

다음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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