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르티나리 제단화
Portinari Tripty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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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티나리 제단화(Portinari Altarpiece, 1475년 경) 또는 포르티나리 삼면화(Portinari Triptych)는 플랑드르의 화가 휘호 판 데르 후스의 삼면화로, 토마소 포르티나리가 의뢰했으며, 목동들의 경배를 묘사한다. 크기는 253 x 304 cm이며, 현재 이탈리아 피렌체의 우피치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다.
15세기 플랑드르의 화가 휘호 판 데르 후스가 이 거대한 제단화를 그릴 때, 의뢰인은 메디치 가문 은행의 브뤼헤 대리인 토마소 포르티나리였어요. 포르티나리는 40년 넘게 브뤼헤에 살며 부와 권세를 쌓은 인물이었고, 이 제단화의 거대한 크기와 작가 선정 자체가 그의 지위를 보여주는 선언이었어요.
삼면화의 중앙 패널에는 아기 예수 앞에 무릎 꿇은 세 명의 목동이 있어요. 판 데르 후스는 이 거친 시골 사람들을 사실적으로, 그리고 깊은 감정으로 담아냈어요. 아이는 요람 대신 황금빛 광채에 둘러싸여 맨땅에 누워 있는데, 이 특이한 표현은 스웨덴의 성녀 브리지타의 환시에서 비롯된 것으로 알려져 있어요. 그 주변엔 전례복을 입은 천사들이 둘러서 있는데, 이 복식들은 성대한 미사를 거행하는 보조 성직자들이 입는 것과 같아서 제단 앞에 선 신자들이 성체성사를 떠올리도록 설계된 장치였지요.
1483년, 이 그림이 피렌체에 도착했을 때 이탈리아 화가들은 놀랐어요. 도메니코 기를란다요 같은 화가들이 이를 직접 연구하며 영향을 받았다고 전해져요. 플랑드르 북쪽에서 만들어진 그림이 르네상스의 심장부를 흔든 것이었어요.
그림을 그린 화가의 삶은 끝이 편치 않았어요. 말년의 판 데르 후스는 심각한 정신적 고통에 시달렸고, 그 삶의 무게가 이 정교하고 고요한 화면 너머에 조용히 존재해요. 얼마나 많은 것을 쏟아부었기에 그 이후가 무너졌을까 — 그 질문이 이 그림을 오래 바라보게 만들어요.
- 세 폭의 흐름 — 가로로 긴 세 폭이 한 이야기로 이어져요. 왼쪽과 오른쪽 패널의 인물들이 모두 중앙의 아기를 향해 모여드는 듯한 구성이지요.
- 맨바닥의 아기 — 중앙 패널 한가운데, 아기 예수가 구유가 아닌 맨바닥에 누워 있어요. 둘레에 황금빛 광선이 뻗어 나가, 작은 몸이 빛의 중심이 되지요.
- 달려온 목동들 — 오른쪽에서 거친 차림의 목동들이 황급히 들어와 손을 모으고 눈을 크게 떠요. 투박한 그 얼굴과 손에 꾸밈없는 경외감이 그대로 담겨 있어요.
- 앞쪽의 정물 — 화면 맨 앞 바닥에 꽃을 꽂은 약병과 흩어진 곡식, 벗어 둔 나막신 한 짝이 놓여 있어요. 사소해 보이는 그 하나하나가 깊은 상징을 품고 있답니다.
- 뒤편의 작은 장면 — 중앙 패널 뒤쪽 멀리, 천사가 들판의 목동들에게 소식을 전하는 작은 장면이 보여요. 한 화폭 안에 시간의 앞뒤가 겹쳐 흐르지요.
화려한 동방박사와 거친 목동, 당신의 눈은 어느 쪽 무리에 먼저 머무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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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랑드르에서 피렌체로
이 거대한 삼면화는 1475년 무렵, 플랑드르 화가 휘호 판 데르 후스가 그렸어요. 가로 3미터가 넘는 압도적인 크기의 이 제단화는, 이탈리아 은행가 토마소 포르티나리가 주문한 것이랍니다. 포르티나리는 메디치 가문 은행의 대리인으로 마흔 해 넘게 벨기에 브뤼헤에 살았던 인물이에요. 그는 이 그림을 피렌체에서 가장 큰 병원 가운데 하나였던 산타 마리아 누오바 병원의 성당에 두려고 주문했지요. 그 병원은 다름 아닌 그의 선조 폴코 포르티나리가 세운 곳이었답니다.
1483년 이 그림이 피렌체에 도착하자, 그것을 본 이탈리아 화가들은 큰 충격을 받았어요. 그토록 사실적이고 섬세한 북유럽 회화를 그들은 처음 보았던 거예요. 많은 화가가 이 그림을 본받으려 애썼는데, 도메니코 기를란다요가 산타 트리니타 성당의 사세티 예배당에 그린 「목동들의 경배」가 그 좋은 예랍니다. 플랑드르의 그림 한 점이 르네상스 피렌체에 깊은 자취를 남긴 셈이지요.
거친 목동들의 진솔한 경배
중앙 패널에서는 세 명의 목동이 아기 예수 앞에 무릎을 꿇어요. 판 데르 후스는 이 투박한 시골 사람들을 더없이 사실적으로 그렸지요. 거친 손과 놀란 표정, 황급히 달려온 듯한 자세에서 그들의 꾸밈없는 경외감이 생생하게 전해진답니다. 흥미로운 건 아기 예수의 자리예요. 아기는 구유가 아니라 맨바닥에 누워 있고, 그 둘레로 황금빛 광채가 감싸고 있지요. 이 독특한 표현은 스웨덴의 성 비르지타가 본 환상에서 비롯된 것으로 여겨진답니다.
판 데르 후스는 한 화면 안에서 같은 인물을 여러 번 등장시키는 '연속 서사' 기법을 썼어요. 중앙 패널 뒤편에는 천사가 목동들에게 그리스도의 탄생을 알리는 장면이, 앞쪽에는 그 목동들이 경배하는 장면이 함께 담겨 있지요. 좌우 패널에는 베들레헴으로 향하는 요셉과 마리아, 그리고 동방박사의 모습이 펼쳐진답니다. 평소 닫혀 있던 제단화는 축일에만 열렸기에, 바깥면에는 회색조로 조각처럼 그린 수태고지 장면이 따로 담겨 있어요.
숨은 상징의 보고
이 제단화는 15세기 탄생 장면 가운데 가장 복잡하고 은밀한 상징을 품은 작품으로 꼽혀요. 중앙 패널의 천사들이 입은 옷부터가 그렇지요. 그들은 장엄 미사에서 부제와 차부제가 입는 전례복을 차려입고 있는데, 곁에 놓인 밀단과 어우러져 성체성사를 떠올리게 한답니다. 이 그림이 본디 미사가 거행되는 제단 위에 놓일 것이었음을 떠올리면, 그 상징의 뜻이 더욱 깊이 다가오지요.
바닥의 꽃들도 저마다 의미를 품고 있어요. 붉은 백합과 보랏빛 붓꽃은 그리스도의 수난을, 제비꽃은 겸손을, 세 송이 붉은 카네이션은 십자가의 세 못을, 매발톱꽃은 성령을 가리킨답니다. 꽃을 담은 약병은 본디 약초를 보관하던 그릇이라, 병원에 걸릴 그림이라는 사실과 절묘하게 호응하지요. 요셉 앞에 놓인 나막신 한 짝은 성스러운 땅을 밟기 전 신을 벗는 관습을 떠올리게 해, 아기 예수가 누운 그 바닥이 거룩한 곳임을 일러 준답니다.
관람 포인트
먼저 중앙의 세 목동에게 다가가 보세요. 거친 손과 놀란 얼굴, 막 달려온 듯한 자세에서 그들의 진솔한 경외감을 읽어 보는 거예요. 다음으로 아기 예수가 구유가 아닌 맨바닥에 누워 황금빛 광채에 둘러싸인 모습을 눈여겨보세요. 여느 탄생 장면과 다른 이 표현에 깊은 사연이 담겨 있답니다. 화면 뒤편으로 시선을 옮겨, 같은 목동들이 천사에게서 소식을 듣는 장면을 찾아보세요. 한 화폭 안에 시간의 흐름이 겹쳐 있는 걸 알아챌 수 있어요. 마지막으로 바닥의 꽃과 약병, 그리고 요셉 앞의 나막신 한 짝을 천천히 살펴보세요. 사소해 보이는 그 하나하나가 저마다 깊은 상징을 품고 있다는 걸 알고 나면, 이 그림이 왜 가장 많이 연구된 플랑드르 작품으로 꼽히는지 고개가 끄덕여질 거예요.

제자의 천사가 너무 눈부셔 스승은 붓을 놓아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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