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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북 조련사

The Tortoise Trainer

오스만 함디 베이

분류
Paintings
지역
서양
라이선스
Public domain (Wikimedia Commons)
작품 소개

The Tortoise Trainer is a painting by Osman Hamdi Bey, with a first version created in 1906 and a second in 1907. Hamdi's painting of an anachronistic historical character attempting to train tortoises is usually interpreted as a satire on the slow and ineffective attempts at reforming the Ottoman Empire.

도슨트 이야기

1906년, 오스만 함디 베이는 이스탄불 외곽 부르사의 초록 사원 2층을 배경으로 한 그림을 파리 살롱에 출품했습니다. 제목은 '거북 조련사'. 붉은 전통 옷을 걸친 노인이 발치의 거북 다섯 마리를 향해 ney 피리를 불고 있어요. 등에는 북을 매고, 북채는 앞으로 늘어뜨린 채입니다.

그러나 거북들은 전혀 관심이 없습니다. 바닥에 떨어진 초록 잎사귀를 먹는 데만 열중해 있지요. 노인의 옷차림은 탄지마트 근대화 개혁 이전 시대의 것으로, 당시 오스만 사회에서는 이미 쓰이지 않는 복식이에요. 함디는 일부러 시대착오적인 인물을 그림 안에 세웠습니다.

이 그림은 오스만 제국의 더딘 개혁에 대한 풍자로 읽힙니다. 아무리 피리를 불어도 움직이지 않는 거북처럼, 술탄 압뒬하미트 2세의 개혁은 좀처럼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어요. 함디 베이 자신이 화가이자 고고학자, 그리고 이스탄불 고고학 박물관 설립자로서 제국 안에서 변화를 이끌려 했던 인물이라는 점에서, 이 그림은 더 복잡한 자기 성찰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노인이 함디 자신의 자화상일 수도 있다는 추측도 있어요.

그림은 완성 이듬해인 1907년에 소형 두 번째 버전도 제작되었습니다. 첫 번째 버전은 2004년 경매에서 350만 달러에 팔려 현재 이스탄불 페라 미술관에 있어요. 발표 당시엔 주목받지 못했지만, 1908년 청년튀르크 혁명이 일어나며 술탄의 전제 정치가 끝나자 이 그림이 그것을 예견했다는 평가를 받게 되었습니다. 거북들은 끝내 움직이지 않았지만, 역사는 움직였지요.

이렇게 보세요
  • 굽은 등붉은 옷을 입은 노인이 거북들을 향해 깊이 허리를 굽혀요. 그 구부정한 등에서 정성과 막막함이 동시에 묻어나지요.
  • 붉은 옷과 푸른 타일강렬한 붉은 두루마기가 뒤편 푸른빛 타일 벽과 또렷이 대비돼요. 그 색의 충돌이 시선을 단번에 인물에게 모으지요.
  • 무심한 거북들발치에 모인 거북들은 피리에 아랑곳없이 바닥의 푸른 잎사귀만 뜯어요. 노인의 수고와 거북의 무관심, 그 어긋남에 이 그림의 모든 뜻이 담겨 있어요.
  • 옛 세계의 차림손에 든 가는 피리, 등에 멘 둥근 북, 머리에 두른 터번이 옛 복식을 일러 줘요. 새 시대가 오기 전 세계를 짊어진 한 인물의 모습이지요.
  • 빛바랜 방위쪽 뾰족한 창과 금빛 아랍 문자, 벗겨진 벽이 낡고 쓸쓸한 분위기를 자아내요. 화려했던 한때가 저문 듯한 공간이랍니다.

거북을 피리로 길들이려는 이 노인, 당신은 측은한가요 아니면 우습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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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북에게 피리를 부는 노인

옛 복식을 차려입은 한 노인이, 발치에 모인 다섯 마리 거북을 향해 피리를 불고 있어요. 그는 거북들을 '길들이려' 애쓰지만, 거북들은 그에게 아랑곳없이 바닥의 푸른 잎사귀를 뜯어 먹는 데만 골몰하지요. 거북이 피리 소리에 맞춰 줄지어 움직일 리 없으니, 이 장면은 어딘가 막막하면서도 우스꽝스럽답니다. 오스만 함디 베이가 1906년에 그린 이 작품은, 터키 회화를 대표하는 상징적인 그림이에요.

노인의 차림은 자못 의미심장해요. 수놓은 단을 댄 긴 붉은 옷을 허리띠로 묶고 터키식 터번을 둘렀는데, 이는 19세기 중반 탄지마트 개혁으로 페스 모자와 서구식 복장이 들어오기 이전의 옛 복식이랍니다. 손에는 전통 악기 네이 피리를 들고 등에는 나카레 북을 졌으니, 어쩌면 데르비시 수도자일지도 모르지요. 화가는 이 시대착오적인 인물에 어쩌면 자기 자신의 얼굴을 담았을 거라고도 전해져요.

더딘 개혁을 향한 풍자

이 그림이 그려진 때, 오스만 제국은 거대한 사회적, 정치적 격동의 한가운데 있었어요. 압뒬하미트 2세가 추진한 개혁은 효과를 거두지 못했거나, 오히려 혼란을 키운다는 비난을 받았지요. 발칸반도와 북아프리카, 아나톨리아와 아라비아반도에 걸친 광대한 제국은 안으로는 민족주의 운동에, 밖으로는 외세의 침탈에 흔들리고 있었답니다.

바로 그런 배경에서, 거북을 길들이려는 노인의 헛된 수고는 더디고 좀처럼 성과가 없던 제국의 개혁을 빗댄 풍자로 읽혀요. 줄 세우려 해도 제멋대로 흩어지는 거북들이, 좀처럼 뜻대로 되지 않는 개혁의 답답함을 닮은 셈이지요. 발표 당시에는 널리 알려지거나 깊이 이해되지 못했지만, 이 그림은 훗날 더 큰 의미를 얻었어요. 1908년 청년 튀르크 혁명이 술탄의 전제 통치를 끝내는 변화를 예고한 작품처럼 여겨졌기 때문이랍니다.

두 점의 그림, 그리고 한 편의 여행기

이 작품에는 사실 두 판본이 있어요. 첫 번째 판본은 1906년 파리 살롱에 「거북을 든 남자」라는 제목으로 걸렸고, 2004년에 350만 달러에 팔려 지금은 이스탄불의 페라 미술관에 있답니다. 이듬해인 1907년에는 더 작은 두 번째 판본이 완성되었는데, 화가가 자기 아이의 장인에게 헌정한 것이라고 전해지지요.

그림의 발상에는 흥미로운 사연이 깃들어 있어요. 오스만 함디 베이는 수십 년 전 한 여행 잡지에서 읽은 기사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해요. 그 기사는 거북들을 북소리에 맞춰 줄지어 걷도록 길들인 이야기를 전했다지요. 그림의 무대는 부르사의 녹색 모스크에 있는 한 허름한 위층 방이에요. 뾰족한 창 위에는 '마음의 치유는 사랑하는 이와의 만남에 있다'는 글귀가 새겨져 있어, 우스꽝스러운 장면에 묘한 깊이를 더한답니다.

관람 포인트

먼저 노인과 거북들 사이의 대비를 음미해 보세요. 정성껏 피리를 부는 노인과, 그에 아랑곳없이 잎사귀만 뜯는 거북들 사이의 그 어긋남에 이 그림의 모든 뜻이 담겨 있답니다. 다음으로 노인의 옛 복식과 손에 든 네이 피리, 등에 진 북을 눈여겨보세요. 새 시대가 밀려오기 전의 옛 세계를 짊어진 한 인물의 모습이지요. 화면 위쪽 뾰족한 창과 그 위에 새겨진 글귀도 찾아보세요. 부르사 녹색 모스크의 낡고 빛바랜 방이 자아내는 쓸쓸한 분위기가 함께 느껴질 거예요. 마지막으로 이 막막한 장면을 한 발 물러서서 바라보며, 더디기만 하던 한 제국의 개혁을 떠올려 보세요. 그러면 거북을 길들이려는 이 헛된 수고가 왜 한 시대를 비추는 거울이 되었는지 헤아릴 수 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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