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디트 I
Judith I
구스타프 클림트 (1862–1918)
- 분류
- Paintings
- 지역
- 서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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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lic domain (Wikimedia Commons)
Judith and the Head of Holofernes is an oil painting by Gustav Klimt, painted in 1901. It depicts the biblical figure Judith holding the head of Holofernes after beheading him. The beheading and its aftermath have been commonly portrayed in art since the Renaissance, and Klimt himself painted a second work depicting the subject in 1909.
유디트는 아시리아 장군 홀로페르네스를 유혹해 목을 베고 고향을 구한 성경의 여인이에요. 그런데 클림트가 1901년 그린 유디트는 영웅의 얼굴이 아니에요. 반쯤 감긴 눈, 벌어진 입술, 금빛 배경 속에서 황홀한 듯 서 있는 여인 — 비평가 펠릭스 잘텐은 '눈빛엔 그을린 불꽃이, 입꼬리엔 잔인함이, 콧망울엔 열정이 떨리고 있다'고 썼어요.
클림트는 성경적 서사를 의도적으로 지웠어요. 피 묻은 칼도 없고, 홀로페르네스의 머리는 오른쪽 가장자리에 잘려 나가 있어요. 살인의 순간과 유혹의 순간이 겹쳐지도록, 클림트는 이야기 대신 여인의 얼굴과 몸에 집중했어요. 반라의 몸, 흐트러진 머리카락, 허리를 두른 금빛 장식 — 프란츠 슈투크의 '죄'에서 영감을 받은 이 구성은 상징주의 팜 파탈의 전형이 됐어요.
당시 사람들은 이 그림을 살로메로 불렀어요. 오스카 와일드의 희곡 살로메가 1891년 나온 직후라, 머리를 든 여인이라면 자연스레 살로메를 떠올렸거든요. 클림트는 직접 반론했어요. 형 게오르크에게 액자를 맡겨 '유디트와 홀로페르네스'라는 글자를 새겨 넣도록 했죠. 그림이 아니라 액자가 그림의 정체성을 지켜야 했을 만큼, 혼동은 뿌리 깊었어요.
모델이 누구인지도 이야기의 일부예요. 화면 속 유디트는 클림트의 친구이자 연인으로 알려진 빈의 사교계 여성 아델레 블로흐-바우어와 닮아 있어요. 클림트는 그녀를 1907년과 1912년에도 초상화로 남겼죠. 유디트의 얼굴은 한 특정 여성의 것이면서 동시에 클림트가 평생 반복해 그린 '치명적인 여인'의 원형이기도 해요.
성경의 유디트는 의무를 다한 경건한 과부였어요. 하지만 클림트의 유디트는 달라요 — 그녀는 자신의 힘을 즐기고 있어요.
- 황홀한 표정 — 반쯤 감긴 눈과 살짝 벌어진 입술을 보세요. 적장의 목을 벤 영웅의 결의가 아니라, 황홀경에 빠진 듯 나른하고 관능적인 얼굴이지요.
- 금빛의 바다 — 인물 뒤로 양식화된 나무 무늬가 금박으로 빛나며 화면을 가득 채워요. 그 황금빛이 검은 머리카락과 부딪치며 유디트를 고고하게 띄워 올립니다.
- 사라진 이야기 — 화면 오른쪽 아래 가장자리를 살펴보세요. 거의 잘려 나가 흐릿하게 보이는 게 홀로페르네스의 머리예요. 피 묻은 칼도, 격렬한 순간도 클림트는 과감히 지웠지요.
- 드러난 몸 — 풀어헤친 옷자락 사이로 한쪽 가슴이 드러나 있어요. 적장을 유혹한 뒤 목을 베었다는 이야기를, 이 관능으로 은근히 암시하네요.
- 새겨진 이름 — 화면 위쪽 금빛 테두리에 'JUDITH'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어요. 살로메가 아니냐는 사람들에게, 이 여인이 유디트임을 못 박으려 한 흔적이랍니다.
이 얼굴은 승리에 취한 걸까요, 아니면 다른 무언가에 빠진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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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을 사로잡은 황금빛 화가
구스타프 클림트는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 오스트리아 빈을 무대로 활동한 화가예요. 그는 낡은 관습에 맞서 빈 분리파를 이끌었고, 번쩍이는 금박과 화려한 장식을 화면 가득 끌어들인 독창적인 화풍으로 이름을 떨쳤지요. 《유디트 I》은 1901년에 그린 유화로, 구약 성경 속 영웅 유디트가 적장 홀로페르네스의 목을 벤 직후를 담고 있어요. 유디트의 참수 이야기는 르네상스 이래 수많은 화가가 즐겨 그려 온 주제였는데, 클림트는 그것을 완전히 새로운 눈으로 다시 보았답니다.
원래 유디트는 자기 도시 베툴리아를 아시리아 군대로부터 구하기 위해, 적장을 유혹한 뒤 그의 목을 친 용감하고 정숙한 여인으로 그려져 왔어요. 카라바조나 젠틸레스키의 그림처럼 칼을 휘두르는 격렬한 순간이나, 모로의 그림처럼 잘린 머리를 든 멍한 순간을 담은 것이 보통이었지요. 그런데 클림트의 유디트는 그 어느 쪽과도 달랐답니다.
영웅을 팜파탈로 바꾸다
클림트의 유디트에게서는 영웅의 결의나 정숙함을 찾아보기 어려워요. 반쯤 감긴 눈, 살짝 벌어진 입술, 발그레 달아오른 표정은 마치 황홀경에 빠진 듯 관능적이지요. 그는 이야기의 줄거리를 일부러 지워 버렸어요. 홀로페르네스의 잘린 머리는 화면 오른쪽 가장자리에서 거의 잘려 나가 겨우 보일 뿐이고, 피 묻은 칼도 어디에도 없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 그림을 두고 유디트가 아니라 살로메가 아니냐며 헷갈리기도 했어요. 그러자 클림트는 동생 게오르크에게 부탁해 금속 액자에 '유디트와 홀로페르네스'라고 새겨 넣게 했지요.
흥미롭게도 이 매혹적인 여인의 얼굴에서, 사람들은 클림트의 가까운 벗이자 연인으로 추정되는 빈의 사교계 명사 아델레 블로흐바우어의 모습을 알아본답니다. 훗날 클림트가 따로 두 점의 초상으로 그리게 될 바로 그 여인이지요. 살짝 치켜든 고개에는 도도한 자부심이, 나른한 표정에는 도발과 유혹이 함께 어려 있어요.
금빛이 빚어낸 위험한 매혹
이 그림의 힘은 화면 가득한 금빛에서 나와요. 검은 머리카락과 황금빛으로 빛나는 배경의 대비가 유디트를 한층 우아하고 고고하게 띄워 올리지요. 배경의 양옆으로는 양식화된 나무 무늬가 부채처럼 펼쳐지며, 그의 세련된 머리 모양을 감싸 줍니다. 반쯤 풀어헤친 짙은 녹색의 비치는 옷자락은 거의 드러난 상체를 슬쩍 보여 주는데, 이는 유디트가 적장을 유혹한 뒤에 목을 베었다는 이야기를 은근히 암시하는 장치랍니다.
당대의 비평가 펠릭스 잘텐은 1903년에 이 유디트를 두고 '어두운 눈길에 후텁지근한 불꽃이 일고, 입가에는 잔혹함이 서렸으며, 콧방울은 정념으로 떨린다'고 묘사했어요. 한 학자는 이 그림을 '에로틱한 여성성이 공격적인 남성성을 누르고 거둔 승리'라 표현하기도 했지요. 성스러운 이야기를 도발적인 욕망의 화면으로 바꿔 놓은, 그야말로 클림트다운 해석이에요.
관람 포인트
먼저 유디트의 눈과 입에 주목해 보세요. 반쯤 감긴 눈과 살짝 벌어진 입술이 빚어내는 황홀한 표정이, 영웅이 아닌 팜파탈로서의 유디트를 또렷이 드러낸답니다. 다음으로 화면 오른쪽 아래 가장자리를 살펴보세요. 거의 잘려 나가 흐릿하게 보이는 홀로페르네스의 머리를 발견하실 수 있을 거예요. 클림트가 이야기를 얼마나 과감히 지웠는지 알 수 있지요. 그리고 검은 머리카락과 황금빛 배경이 맞닿는 경계를 천천히 훑어보세요. 그 강렬한 대비가 인물을 신비롭게 띄워 올립니다. 마지막으로 동생 게오르크가 만든 금속 액자에 새겨진 글귀를 떠올려 보세요. '이 여인은 살로메가 아니라 유디트'라고 못 박으려 한 화가의 고집이 거기 담겨 있으니까요.

황금빛으로 뒤덮인 포옹, 클림트 황금시대의 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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