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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스

The Kiss

구스타프 클림트 (1862–1918)

분류
Paintings
지역
서양
라이선스
Public domain (Wikimedia Commons)
작품 소개

《키스》(독일어: Der Kuss, 영어: The Kiss)는 오스트리아의 상징주의 화가 구스타프 클림트의 유화 작품으로, 금박, 은, 백금을 더하여 제작되었다. 학자들이 그의 "황금 시대"라고 부르는 절정기인 1907년과 1908년 사이에 그려졌다. 1908년에는 《연인들》(Liebespaar)이라는 제목으로 전시되었다. 이 그림은 정교한 장식 의상으로 몸을 감싸고 안고 있는 한 쌍의 연인을 묘사한다. 이 작품은 당대의 아르누보 양식과 이전 아트 앤 크래프트 운동의 유기적 형태에서 영향을 받았다.

도슨트 이야기

두 사람은 꽃이 가득한 절벽 끝에 서 있어요. 남자는 여자의 얼굴을 두 손으로 감싸고 뺨에 입을 맞추고, 여자는 눈을 감은 채 그 손 위에 자신의 손을 살며시 얹어요. 황금빛 천이 두 몸을 하나로 감싸고 있어서, 어디가 남자이고 어디가 여자인지 경계가 흐릿해요.

클림트는 1907년에서 1908년 사이에 이 그림을 그렸어요. 학자들이 '황금 시대'라고 부르는 절정에 해당해요. 금박과 은박, 백금을 캔버스 위에 올린 기법은 1903년 이탈리아 여행에서 받은 영감이었어요. 라벤나의 산 비탈레 성당 비잔틴 모자이크를 보고, 원근감 없이 납작하게 빛나는 황금의 힘에 사로잡혔거든요. 클림트의 아버지는 금 세공 장인이었어요. 어쩌면 그 손재주가 아들의 붓끝으로 이어진 거예요.

이 그림은 1908년 빈 쿤스트샤우 전시에서 '연인들'이라는 제목으로 처음 공개됐어요. 같은 해 오스트리아 정부가 아직 완성되지 않은 상태에서 구입했을 만큼 반응이 열렬했죠. 직전에 그린 빈 대학 천장화 연작이 '외설스럽다'는 격렬한 비판을 받았던 것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였어요.

남자의 얼굴은 화면 위로 향한 채 보이지 않아요. 클림트와 평생 동반자 에밀리에 플뢰게가 모델이었을 거라는 이야기가 있지만, 확인된 기록은 없어요. 두 인물이 누구인지보다, 황금 속에서 녹아드는 그 순간이 더 중요한 거예요.

그림은 지금 빈 벨베데레 궁전 미술관에 걸려 있어요. 클림트가 관람객에게 등을 보이도록 설계한 남자처럼, 이 그림도 보는 이를 그 포옹의 바깥에 조용히 세워두어요. 그래서 더 오래 머물게 되는지도 몰라요.

이렇게 보세요
  • 하나의 덩어리두 사람이 따로가 아니라 황금빛 망토 하나에 함께 감싸여 있어요. 어디까지가 남자고 어디부터 여자인지, 윤곽이 옷 속에서 녹아 사라지죠.
  • 무늬의 대비남자 쪽 옷엔 흑백의 각진 사각형, 여인 쪽엔 둥근 색색의 꽃과 동그라미가 가득해요. 같은 금빛 안에서도 남성과 여성이 무늬로 갈려요.
  • 기댄 얼굴여인은 눈을 감고 고개를 옆으로 떨군 채 그 입맞춤을 받아요. 남자의 얼굴은 우리를 등져 보이지 않고, 목덜미를 감싼 두 손만 또렷하죠.
  • 발끝의 벼랑화면 아래쪽, 꽃이 핀 초록 풀밭이 뚝 끊겨요. 여인의 맨발이 그 가장자리에 아슬아슬하게 걸려 있어, 황홀 바로 곁에 낭떠러지가 있어요.

이 포옹, 한없이 안전해 보이나요 아니면 어딘가 위태로워 보이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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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빛 포옹

《키스》는 구스타프 클림트가 1907년에서 1908년 사이, 이른바 '황금 시기'의 절정에서 그린 그림이에요. 캔버스에 유화로 그리되 금박과 은박, 백금박까지 붙였지요. 지금은 빈의 벨베데레 미술관에 있고, 빈 분리파(제체시온)를 대표하는 걸작이자 아마도 클림트의 가장 중요한 작품으로 꼽혀요. 1908년 쿤스트샤우 전시에 처음 걸렸을 땐 '연인(Liebespaar)'이라는 제목이었답니다.

황금빛 평면을 배경으로, 한 쌍이 서로를 끌어안고 있어요. 두 사람은 꽃이 핀 풀밭 끝에 서 있고, 여인의 맨발은 그 벼랑 같은 가장자리에 아슬아슬하게 놓여 있지요. 남자는 덩굴 관을, 여인은 꽃 관을 썼어요. 남자의 얼굴은 우리에게 보이지 않은 채 여인의 뺨에 입을 맞추고, 여인은 눈을 감고 얼굴을 들어 그 입맞춤을 받아요. 남자의 옷엔 각진 무늬가, 여인의 옷엔 둥근 꽃무늬가 가득해 — 남성과 여성이 무늬로도 대비를 이루지요.

라벤나에서 온 금빛

클림트의 아버지는 금을 다루는 세공사였어요. 하지만 그가 그림에 금박을 본격적으로 쓰게 된 결정적 계기는 1903년의 이탈리아 여행이었지요. 라벤나의 산 비탈레 성당에서 비잔틴 모자이크를 본 거예요. 원근도 깊이도 없는 그 평면성이 오히려 금빛의 광채를 더 빛나게 한다는 걸 깨닫고, 그는 자기 그림에 전례 없이 금과 은을 입히기 시작했어요. 남자의 머리가 화면 맨 위에 거의 닿도록 둔 과감한 구성에선 일본 판화의 영향도 엿보이고요. 어떤 학자는 이 장면을 아폴론과 다프네, 또는 뒤돌아보는 순간 사랑을 잃는 오르페우스와 에우리디케의 이야기로 읽기도 해요 — 여인의 몸이 살짝 투명해 보이는 걸 '사라짐'의 신호로 보면서요. 금빛 바탕은 중세의 황금 채색 필사본과 모자이크를 떠올리게 하고, 옷에 새겨진 나선 무늬는 청동기 시대 장식까지 거슬러 가요. 그러면서도 이 그림은 더없이 관능적이고 화려해, 19세기 말 빈의 '세기말(fin-de-siècle)' 정서를 고스란히 담고 있지요. 사실 끌어안은 연인이라는 주제는 그가 앞서 작업한 〈스토클레 프리즈〉나 〈베토벤 프리즈〉에서 이미 거듭 나타났고, 그림 속 여인의 모델로는 클림트의 평생의 동반자 에밀리 플뢰게가 자주 거론된답니다.

절벽 끝의 사랑

클림트는 이 그림을 그리기 직전, 빈 대학 천장화로 큰 곤욕을 치렀어요. '포르노'라느니 '변태적 과잉'이라느니 하는 비난에 휩싸여 미술계의 문제아가 되었지요. 그는 이렇게 적었어요. "당신의 행위와 예술로 모두를 기쁘게 할 수 없다면, 소수라도 기쁘게 하라." 그런데 《키스》만은 열광적인 환영을 받았고, 아직 완성되기도 전에 오스트리아 정부가 사들였답니다. 비난과 환호 사이를 오가던 화가에게, 이 황금빛 포옹은 마침내 찾아온 화해 같은 작품이었던 셈이에요.

관람 포인트

먼저 두 사람의 옷 무늬를 비교해 보세요 — 남자의 각진 무늬와 여인의 둥근 꽃무늬가, 두 사람이 하나로 녹아드는 황금 덩어리 안에서 어떻게 다르게 반짝이는지요. 그리고 여인의 발끝이 놓인 꽃밭의 '가장자리'를 보세요. 사랑의 황홀 바로 곁에 아슬아슬한 벼랑이 있다는 것 — 그 미묘한 긴장이 이 그림을 단순한 달콤함 이상으로 만든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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