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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목욕하는 여인들

Les Grandes Baigneuses

폴 세잔

분류
Paintings
지역
서양
라이선스
Public domain (Wikimedia Commons)
작품 소개

《큰 목욕하는 여인들》(프랑스어: Les Grandes Baigneuses)은 프랑스의 후기인상주의 화가 폴 세잔이 그린 유화로, 1906년에 처음 전시되었다. 이 작품은 현재 필라델피아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으며, 세잔이 제작한 《목욕하는 여인들》 연작 가운데 가장 규모가 큰 작품이다. 나머지 다른 버전들은 뉴욕 근대미술관, 런던 내셔널 갤러리, 펜실베이니아의 반스 재단, 시카고 미술관 등에 소장되어 있다. 크기가 작은 다른 작품들과 구분하기 위해 《큰 목욕하는 여인들》 또는 《대형 목욕하는 여인들》로 불린다. 이 작품은 현대미술의 걸작 가운데 하나로 평가되며, 흔히 세잔의 최고작으로도 언급된다. 또한 1980년 BBC Two의 TV 시리즈 《100 Great Paintings》에 소개되었다.

도슨트 이야기

세잔은 이 그림을 7년 동안 작업했어요. 그리고 1906년 세상을 떠날 때 완성하지 못한 채 남겼어요. 그래서 이 작품 앞에 서면, 세잔이 마지막까지 붙들고 있었던 어떤 질문이 그대로 캔버스에 남아 있다는 느낌을 받아요.

그림 속 여인들의 몸은 부드럽게 이상화되어 있지 않아요. 오히려 나무의 형태와 강물의 흐름, 삼각형의 구조 속에 녹아들 듯 배치되어 있어요. 세잔은 이 시기 풍경화나 정물화를 그릴 때와 똑같은 방식으로 인체를 다루었어요. 형태를 색면과 면의 관계로 분해하는 방식이었죠. 그게 비평가들 눈에는 '데생이 서툰 그림'처럼 보이기도 했어요.

하지만 세잔의 의도는 달랐어요. 그는 새로운 유행을 쫓는 대신, 어떤 세대에게도 동등하게 다가올 그림을 만들고 싶었다고 해요. 티치아노나 루벤스의 거장 전통을 자기 방식으로 다시 세우려 했던 거예요.

1937년 필라델피아 미술관이 이 그림을 11만 달러에 사들였을 때, 지역 신문은 냉소적인 질문을 던졌어요. 필라델피아 시민 10%가 집에 욕조가 없는데, 목욕하는 여인들 그림에 그 돈을 써야 하느냐고요. 그럼에도 이 작품은 현재 근대 미술의 걸작으로 꼽히고, 피카소의 '아비뇽의 처녀들'과 자주 나란히 언급돼요.

세잔이 끝내 붓을 놓지 못했던 이 캔버스는, 완성되지 않았기 때문에 오히려 그가 무엇을 향해 가고 있었는지를 가장 솔직하게 보여줘요.

이렇게 보세요
  • 거대한 삼각형화면 양옆의 나무 두 그루가 위로 갈수록 안쪽으로 휘어, 하늘 한가운데서 만날 듯한 커다란 삼각형 틀을 만들어요. 인물도 강도 모두 이 틀 안에 담겨 있지요.
  • 메아리치는 윤곽웅크리고 앉은 여인들의 어깨와 등 곡선이, 뒤편 나무줄기의 기울기와 슬그머니 운을 맞추듯 닮아 있어요. 사람과 나무가 한 몸처럼 이어지지요.
  • 푸름과 살구빛화면을 채운 차가운 청색 배경 위로 여인들의 살빛만 따뜻한 살구색으로 떠올라요. 그 색의 조각들이 굵은 붓자국으로 툭툭 얹혀 있지요.
  • 칠하다 만 자리곳곳에 물감이 채 덮이지 않아 바탕이 비치는 빈 자리가 보여요. 끝내 완성하지 못한 미완의 흔적이자, 색으로 형태를 쌓아 올리던 사유의 자국이랍니다.

사람과 나무, 강이 한 덩어리처럼 보이나요 아니면 따로 떨어져 보이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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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년을 매달린 미완의 대작

폴 세잔이 세상을 떠난 1906년, 그의 화실에는 끝내 완성하지 못한 거대한 캔버스 한 점이 남아 있었어요. 바로 이 《큰 목욕하는 여인들》이지요. 무려 7년에 걸쳐 붙들고 씨름했지만 그는 끝까지 '완성'이라는 마침표를 찍지 못한 채 눈을 감았답니다. 세잔이 평생 그린 여러 점의 목욕 연작 가운데 가장 큰 작품이자, 흔히 그의 최고 걸작으로 꼽히는 그림이에요. 뉴욕 현대미술관과 런던 내셔널 갤러리, 펜실베이니아의 반스 재단, 시카고 미술관에도 자매편이 흩어져 있지만, 그중에서도 필라델피아 미술관의 이 대형 화면이 단연 정점에 서 있지요. 1906년에 처음 공개된 이래로, 세잔이 도달한 가장 멀고 높은 봉우리로 여겨져 왔답니다.

인물을 풍경의 구조로 녹이다

이 그림에서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양옆의 나무들이에요. 강가에 모인 여인들 위로 나무가 아치처럼 안쪽으로 휘어, 화면 전체에 커다란 삼각형 틀을 만들어 냅니다. 인물의 벗은 몸과 강, 하늘이 이 삼각 구도 안으로 빨려 들어가 한 덩어리가 되지요. 세잔은 풍경화나 정물화를 그릴 때와 똑같은 방식으로 사람을 다뤘어요. 개개인의 표정이나 살결을 또렷이 묘사하기보다, 형태를 단단한 기하학적 구조로 다시 짜내는 데 골몰했지요. 좌우가 거의 대칭을 이루는 이 안정된 구성은 그의 작품 중에서도 드문 예랍니다. 그래서 어떤 이들은 그의 데생 솜씨가 서툴다고 흠을 잡기도 했지만, 한 비평가는 바로 그 '서툴게 그린 목욕하는 여인들'이야말로 여름날의 한가로운 행복을 따뜻하게 불러낸다고 평했어요.

현대미술로 가는 다리

세잔은 일부러 처음 보는 이의 눈을 단번에 사로잡지 않는 그림을 그렸어요. 한때의 유행에 휩쓸리지 않고, 모든 세대에게 두루 말을 거는 시간을 초월한 작품을 남기고 싶었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일부러 초심자의 눈에 친절하지 않은 화면을 택했다고 해요. 이 단단한 구조 의식은 인상주의의 가볍고 찰나적인 빛 너머로 한 걸음 더 나아가, 뒤이을 화가들에게 유행을 거스를 용기를 주었어요. 실제로 이 그림은 같은 시기 피카소가 그린 《아비뇽의 여인들》과 자주 나란히 견주어지지요. 티치아노와 루벤스가 그린 풍요로운 누드의 전통을 잇는 동시에, 형태를 분해하고 재구성하는 큐비즘의 문을 미리 두드린 셈이에요. 세잔이 '현대미술의 아버지'라 불리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답니다.

관람 포인트

먼저 화면에서 한 걸음 물러나, 양쪽 나무가 그려 내는 커다란 삼각형의 윤곽을 통째로 느껴 보세요. 인물 하나하나가 아니라 화면 전체가 하나의 건축물처럼 짜여 있다는 것이 보일 거예요. 그다음 여인들의 몸으로 눈을 옮겨, 그 윤곽선이 어떻게 뒤편의 나무와 강줄기와 메아리치듯 이어지는지 살펴보세요. 인물의 어깨선과 나뭇가지의 기울기가 슬그머니 운을 맞추듯 닮아 있을 거예요. 마지막으로 화면을 채운 푸른빛과 살구빛의 붓질에 주목해 보세요. 곳곳에 칠하다 만 듯한 빈 자리가 남아 있는데, 이것이 바로 미완의 흔적이자 세잔이 색의 조각들로 형태를 쌓아 올리던 사유의 과정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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