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테라섬으로의 순례
The Embarkation for Cythe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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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Embarkation for Cythera is a painting by the French painter Jean-Antoine Watteau.
그림 제목은 '키테라섬으로의 순례'입니다. 그런데 이상합니다. 화면 속 연인들은 이미 둘씩 짝을 이루고 있고, 언덕 아래 황금빛 배를 향해 내려가고 있습니다. 도착이 아니라 떠남처럼 보입니다. 사랑의 여신 비너스가 태어난 섬에 온 것인지, 아니면 그 섬을 뒤로하고 현실로 돌아가는 것인지 — 바토 자신은 끝내 답을 주지 않았습니다.
전경에는 세 쌍의 연인이 있습니다. 오른쪽 비너스 상 곁에서 아직 속삭임을 나누는 한 쌍, 일어서서 발걸음을 옮기는 한 쌍, 그리고 앞서 내려가는 세 번째 쌍. 세 번째 쌍의 여인만이 고개를 돌려 여신의 성스러운 숲을 한 번 더 바라봅니다. 큐피드들이 그 주위를 날며 연인들을 부드럽게 밀어냅니다. 하늘은 새벽인지 황혼인지 알 수 없이 흐릿하고, 풀 한 포기의 계절도 가늠하기 어렵습니다.
앙투안 바토가 이 그림을 왕립 아카데미에 입회 작품으로 제출한 것은 1717년이었습니다. 기한을 여러 번 어긴 끝에 여덟 달 만에 그려낸 작품이었습니다. 아카데미는 이 그림을 어느 기존 장르에도 넣을 수 없었습니다. 결국 새로운 분류를 만들었습니다. '페트 갈랑트' — 귀족들의 우아한 야외 유흥. 바토가 그 장르의 창시자로 인정받는 순간이었지만, 동시에 역사화가보다 낮은 위계에 묶이는 순간이기도 했습니다.
프랑스혁명이 닥쳤을 때, 이 그림은 왕정과 귀족의 사치를 상징한다는 이유로 미술 학생들의 조롱거리가 되었습니다. 빵 조각을 던지는 이들도 있었고, 루브르 관장은 그림을 창고에 숨겨두었습니다. 1830년대에야 로코코가 다시 시선을 받으며 이 그림도 제자리를 찾았습니다. 사랑의 섬처럼, 유행도 오고 갑니다.
- 비너스상 — 화면 오른쪽 끝, 꽃에 감긴 조각상에서 모든 이야기가 시작돼요. 그 발치에 한 쌍의 연인이 아직 자리를 뜨지 못한 채 머물러 있죠.
- 세 쌍의 흐름 —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머무는 쌍, 막 일어서는 쌍, 언덕을 내려가는 쌍이 차례로 이어져요. 마치 한 사람의 시간이 흐르듯 동작이 번져 가죠.
- 돌아보는 눈길 — 언덕을 내려가던 여인 하나가 뒤편 숲을 아쉬운 듯 돌아봐요. 떠남인지 도착인지 모를 이 그림의 정서가 그 한 시선에 다 담겨 있죠.
- 날아오르는 큐피드 — 화면 왼편 위로 작은 큐피드들이 무리 지어 날아요. 그 아래 안개 낀 물가엔 황금빛으로 빛나는 배가 기다리고 있죠.
- 노을빛 안개 — 멀리 산과 호수가 분홍빛 안개에 잠겨 있어요. 동틀 녘인지 해 질 녘인지조차 흐릿한 그 빛이 화면 전체를 꿈결처럼 만들죠.
이 연인들은 사랑의 섬으로 떠나는 걸까요, 아니면 그곳에서 돌아오는 길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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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장르를 연 그림
1717년, 앙투안 바토는 왕립 회화 조각 아카데미에 입회 작품으로 이 그림을 제출했어요. 그런데 심사위원들은 적잖이 당황했다고 해요. 성서나 신화의 영웅을 다룬 역사화도 아니고, 그렇다고 평범한 풍속화도 아닌, 전에 없던 종류의 그림이었거든요. 결국 아카데미는 이 작품을 위해 '페트 갈랑트', 즉 '우아한 야외의 향연'이라는 새로운 분류를 만들어 냈어요. 한 점의 그림이 새로운 장르의 이름을 낳은 셈이지요. 이 그림은 루이 14세가 세상을 떠난 뒤, 엄숙했던 시대가 가고 향락과 평화가 찾아온 분위기를 머금고 있어요. 다만 새 장르를 인정받은 대가로 바토는 가장 높은 등급인 역사화가의 반열에는 끝내 오르지 못했답니다. 이 루브르의 그림 말고도, 베를린 샤를로텐부르크 궁에 비슷한 또 한 점이 전해져요.
떠나는가, 도착하는가
제목은 사랑의 여신 비너스의 섬, 키테라를 향한 순례를 말해요. 화면에는 세 쌍의 연인이 앞쪽에 자리하고, 그 위로 작은 큐피드들이 날며 연인들을 서로에게 가까이 밀어 주지요. 오른편 비너스 조각상 곁의 한 쌍은 아직 달콤한 밀어에 빠져 있고, 다른 한 쌍은 막 일어서며, 또 다른 한 쌍은 언덕을 내려가요. 그런데 흥미롭게도, 제목과 달리 사람들은 섬에 도착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떠나는 것처럼 보여요. 이미 짝을 다 이룬 채 황금빛 배를 향해 내려가고 있으니까요. 언덕을 내려가던 여인 하나가 여신의 신성한 숲을 아쉬운 듯 돌아보는 그 눈길이, 이 그림의 정서를 한마디로 말해 준답니다. 바토 자신은 이것이 떠남인지 도착인지 끝내 답을 주지 않았어요. 그 열린 수수께끼야말로 이 그림이 오래 사랑받는 까닭이지요.
아련함과 표적이 된 운명
바토의 붓질은 가볍고 아련해요. 안개 낀 배경 풍경은 계절이 언제인지, 동틀 녘인지 해 질 녘인지조차 일러 주지 않지요. 그 모호한 빛 속에 화려함과 덧없음이 함께 깃들어 있어요. 모여드는 연인들의 우아한 비단옷은 눈부시지만, 어딘가 곧 스러질 꿈처럼 아련하답니다. 그런데 바토가 세상을 떠난 뒤 그의 예술은 한동안 유행에서 밀려났어요. 프랑스 혁명기에는 이런 귀족적 향락의 그림이 낡은 왕정의 사치를 떠올리게 한다며 미움을 샀지요. 1795년 루브르에 들어온 이 작품은 한때 미술 학생들의 표적이 되어, 그들이 빵 조각을 뭉쳐 그림에 던졌다는 기록까지 전해져요. 성난 군중을 피해 한동안 수장고에 숨겨 두어야 했을 정도였답니다. 바토와 로코코가 다시 사랑받기까지는 1830년대를 기다려야 했어요. 훗날 드뷔시가 이 그림에서 영감을 얻어 피아노곡을 썼다고 전해지는 걸 보면, 그 아련한 정취는 음악가의 마음마저 사로잡았던 모양이에요.
관람 포인트
먼저 화면 오른쪽 위, 꽃에 둘러싸인 비너스 조각상에서 출발해 보세요. 모든 연인의 이야기가 그 여신에게서 시작된답니다. 그다음 세 쌍의 연인을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차례차례 따라가 보세요. 머무는 한 쌍, 일어서는 한 쌍, 내려가는 한 쌍의 동작이 마치 한 사람의 시간이 흐르듯 이어진답니다. 그중 언덕을 내려가며 숲을 돌아보는 여인의 눈길을 꼭 찾아보세요. 이 그림의 아쉬움과 그리움이 그 한 시선에 다 담겨 있어요. 마지막으로 왼편의 황금빛 배와, 그 주위를 떠도는 안개 낀 배경을 멀찍이서 바라보세요. 가까이서 보면 흩뿌린 듯한 붓 자국이, 한 걸음 물러서면 꿈결 같은 노을빛 정원으로 살아난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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