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의 책형
Flagellation of Chr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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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Flagellation of Christ (1459–1460) is a painting by Piero della Francesca in the Galleria Nazionale delle Marche in Urbino, Italy. Called by one writer an "enigmatic little painting," the composition is complex and unusual, and its iconography has been the subject of widely differing theories. Kenneth Clark called The Flagellation "the greatest small painting in the world".
미술사학자 케네스 클라크는 이 작은 그림을 가리켜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소품'이라고 불렀어요. 이탈리아 우르비노의 국립미술관에 걸린 이 패널은, 손바닥만 한 크기지만 그 안에 두 개의 세계를 담고 있어요.
화면 왼편 안쪽에는 채찍질당하는 그리스도의 장면이 열린 회랑 안에서 벌어지고 있어요. 그런데 오른편 앞쪽에는 세 명의 인물이 서 있는데, 그들은 뒤에서 일어나는 수난 장면에 전혀 관심이 없는 듯 보여요. 빛의 방향도 달라요. 안쪽 장면은 오른쪽에서, 바깥 장면은 왼쪽에서 빛이 들어와, 두 개의 시간이 한 화면에 공존하는 것처럼 느껴지죠.
앞쪽 세 인물의 정체는 수백 년간 학자들을 사로잡아 왔어요. 어떤 이는 우르비노 공작 오단토니오와 그를 둘러싼 비극적 인물들이라 보고, 다른 이는 비잔티움 황제와 로마 교회, 그리고 천사의 알레고리라 읽어요. 카를로 긴즈부르크는 이 그림이 추기경 베사리온이 오스만 제국에 대항하는 십자군 원정으로 페데리코 다 몬테펠트로를 설득하기 위한 정치적 메시지라고 주장하기도 했어요.
원래 그림틀에는 라틴어 문구 'Convenerunt in Unum', '그들이 한자리에 모였다'는 시편의 구절이 새겨져 있었어요. 누가 왜 함께 모였는가 — 그것이 이 그림이 던지는 질문이에요.
피에로 델라 프란체스카는 원근법과 빛의 기하학으로 그 답을 조용히 감추어 두었어요. 수수께끼는 풀리지 않았지만, 그 침묵이 이 작은 그림을 500년 넘게 살아 숨쉬게 하고 있어요.
- 앞과 뒤 — 앞쪽 오른편에 선 세 남자가 크게 그려져 주인공처럼 보여요. 정작 채찍질당하는 그리스도는 왼편 안쪽 기둥 곁에 작게 물러나 있죠.
- 두 개의 빛 — 안쪽 회랑은 천장에서 빛이 떨어져 환하고, 앞쪽 세 남자는 바깥 햇빛을 받아요. 서로 다른 두 빛이 두 개의 시간, 두 개의 사건을 갈라놓죠.
- 바닥의 기하학 — 회랑 바닥의 무늬가 선을 따라 한 점으로 모여들어요. 자로 잰 듯한 원근법이 작은 화면을 놀랍도록 깊은 공간으로 만들죠.
- 세 남자 — 검은 모자를 쓴 남자, 붉은 옷에 맨발인 금발 청년, 화려한 무늬 옷을 입은 남자가 무심히 마주 서 있어요. 누구인지는 지금도 풀리지 않은 수수께끼죠.
- 고요함 — 채찍을 든 사람들조차 동작이 멎은 듯 정적에 잠겨 있어요. 맑고 차가운 색채가 폭력의 장면마저 단정하게 가라앉히죠.
앞쪽의 세 남자는 왜 안쪽에서 벌어지는 일에 아무도 눈길을 주지 않는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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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작은 그림
1459년 무렵, 피에로 델라 프란체스카가 그린 이 작은 패널화는 미술사에서 가장 유명한 수수께끼 가운데 하나예요. 미술사가 케네스 클라크는 이 그림을 두고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작은 그림'이라 불렀지요. 작지만 결코 만만한 그림이 아니에요. 화면을 처음 보면 누구나 앞쪽에 선 세 남자에게 눈이 가지만, 정작 제목이 말하는 그리스도의 채찍질 장면은 왼편 저 안쪽, 기둥에 묶인 채 작게 그려져 있어요. 주인공이 뒤로 물러나고 정체 모를 세 사람이 앞을 차지한 이 기묘한 구성이, 수백 년간 학자들을 사로잡아 온 거예요. 그림에는 '보르고 산세폴크로의 피에로의 작품'이라는 서명도 새겨져 있어요. 보르고 산세폴크로는 화가의 고향 마을 이름이지요. 이 작품은 지금 이탈리아 우르비노의 마르케 국립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답니다.
수학으로 지은 공간
피에로는 화가이기 전에 뛰어난 수학자였어요. 그래서 이 그림은 마치 자와 컴퍼스로 지은 건축물 같아요. 채찍질이 벌어지는 회랑은 기둥과 바닥 무늬, 천장까지 한 치의 오차도 없는 완벽한 원근법으로 그려졌지요. 인물들의 크기와 공간의 깊이가 정확한 비례로 맞물려, 작은 화면 안에 놀랍도록 깊고 고요한 공간이 펼쳐진답니다. 흥미로운 점은 빛의 방향이에요. 안쪽의 채찍질 장면은 오른쪽에서 빛을 받고, 앞쪽의 세 남자가 선 바깥 풍경은 왼쪽에서 빛을 받아요. 서로 다른 두 빛이 두 개의 시간, 두 개의 사건을 암시한다는 해석이 여기서 나오지요. 차갑도록 맑은 색채와 숨소리조차 멎은 듯한 정적, 그리고 빈틈없는 기하학적 질서가 이 그림을 한없이 단정하면서도 신비롭게 만든답니다. 앞줄 수염 난 남자의 강렬한 표정은 피에로의 시대로서는 유달리 생생하다고 평가받아요.
풀리지 않는 세 남자
그렇다면 앞쪽의 세 남자는 누구일까요? 이것이 바로 이 그림의 가장 큰 수수께끼예요. 학자들은 저마다 다른 답을 내놓았어요. 누군가는 이들이 과거와 현재와 미래, 혹은 인간의 세 시기를 나타낸다고 보았지요. 또 우르비노에서 전해 오는 해석은, 젊은이가 암살당한 군주 오단토니오 다 몬테펠트로이고 양옆이 그의 두 조언자라고 보아, 그의 죽음을 그리스도의 수난에 빗댔다고 풀이해요. 한편 카를로 긴츠부르크 같은 학자들은 이 그림을 정치적 메시지로 읽어요. 1453년 콘스탄티노플 함락 직후, 채찍질당하는 그리스도가 곧 이슬람 세력에 시달리던 비잔티움과 기독교 세계 전체의 고난을 상징한다는 것이지요. 마릴린 라빈은 두 아버지가 잃은 아들을 애도하는 그림으로, 폽 헤네시는 성 히에로니무스의 꿈을 그린 것으로 보았어요. 이렇게 많은 해석이 공존한다는 사실 자체가, 이 작은 그림이 품은 깊이를 말해 준답니다.
관람 포인트
먼저 시선을 일부러 왼편 안쪽으로 보내 보세요. 기둥에 묶인 그리스도와 그를 둘러싼 인물들이, 제목과 달리 화면 깊숙이 작게 자리한 것을 확인하실 수 있어요. 그다음 바닥의 기하학적 무늬를 따라가 보세요. 선들이 한 점으로 모여드는 완벽한 원근법이, 작은 화면을 얼마나 깊은 공간으로 만드는지 느껴진답니다. 이어 빛의 방향을 비교해 보세요. 안쪽 장면과 바깥 세 남자에게 닿는 빛이 서로 다른 쪽에서 온다는 걸 알아채시면, 두 개의 시간이라는 해석이 한결 또렷해져요. 마지막으로 앞줄 수염 난 남자의 얼굴을 가만히 들여다보세요. 그가 누구인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그 강렬한 눈빛만큼은 수백 년이 지나도 우리를 똑바로 바라본답니다.

이름도 없이 눈을 내리깐 여인, 베일이 오히려 드러낸 기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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