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està
← 소장품으로

담배 피는 해골

Skull of a Skeleton with Burning Cigarette

빈센트 반 고흐

분류
Paintings
지역
서양
라이선스
Public domain (Wikimedia Commons)
작품 소개

《담배 피는 해골》(네덜란드어: Kop van een skelet met brandende sigaret, 영어: Skull of a Skeleton with Burning Cigarette)은 빈센트 반 고흐의 초기 작품이다. 해골과 담배가 등장하는 날짜가 기록되지 않은 소형 유화 작품은 현재 암스테르담 반 고흐 미술관의 영구 소장품으로 보관되고 있다. 이 그림은 고흐가 앤트워프에 머물던 1885~1886년 겨울에 보수적인 학술 관행에 대한 풍자적인 의미로 그린 것으로 보인다. 당시에는 살아있는 사람을 모델로 쓰기 전, 인체 해부학의 이해를 돕기 위해 해골을 연구하는 것이 일반적인 관행이었다. 고흐는 당시 벨기에 앤트워프의 왕립 미술 아카데미에서 수업을 들었는데, 후에 그는 그 수업이 지루했고 배운 게 없었다고 말하기도 했다.

도슨트 이야기

1885년에서 86년 겨울, 벨기에 앤트베르펜의 왕립미술아카데미에서 고흐는 해부학 수업을 받고 있었어요. 그는 나중에 그 수업이 지루하고 배운 것도 없었다고 했죠. 당시 미술교육에서 골격 연구는 기본 과정이었어요. 살아 있는 모델 대신 해골로 인체 구조를 익히는 거예요.

그런데 고흐는 그 해골에 담배를 물렸어요. 작고 소박한 캔버스 위에, 해골이 담배 한 개비를 피우며 정면을 바라보고 있어요. 진지한 해부 습작이어야 할 그림이 장난스러운 농담이 된 거죠. 고흐 자신도 열렬한 흡연자였어요. 죽을 때까지 담배를 놓지 않았다고 해요.

이 그림은 바니타스, 즉 삶의 덧없음을 상징하는 메멘토 모리의 전통 안에 있어요. 하지만 고흐는 그 무거운 주제를 유머로 비틀었어요. 죽음의 상징인 해골이 태연히 담배를 즐기고 있으니까요.

그림은 고흐가 세상을 떠난 뒤 동생 테오가 보관했고, 테오의 아내 요한나를 거쳐 아들 빌럼에게 전해졌어요. 지금은 암스테르담의 반 고흐 미술관에 있어요.

이렇게 보세요
  • 어둠 속 흰 뼈칠흑 같은 배경에서 창백한 해골이 불쑥 떠올라요. 텅 빈 검은 눈구멍이 가장 먼저 시선을 붙들죠.
  • 물고 있는 담배이 사이에 가느다란 담배 한 개비가 비스듬히 물려 있어요. 죽음을 상징하는 해골이 산 사람처럼 담배를 태우는 이 역설이 그림의 핵심이에요.
  • 작은 화면의 농담손바닥을 조금 넘는 작은 캔버스인데, 그 안에 짓궂은 풍자가 가득 차요. 무거운 주제를 가볍게 비튼 솜씨가 느껴지죠.
  • 거친 붓질두개골과 갈비뼈를 훑어 내리는 붓자국이 거칠고 묵직해요. 아직 밝은 색에 이르기 전, 어두운 색조 속에서도 손맛이 꿈틀대요.
  • 초록빛이 도는 뼈흰 뼈 곳곳에 초록과 누런 빛이 섞여 들어요. 그 탁한 색조가 으스스함을 한층 더해 주죠.

이 해골은 우리에게 겁을 주는 걸까요, 아니면 슬쩍 농담을 건네는 걸까요?

도슨트 심화더 깊이 보기 ↓

젊은 화가의 짓궂은 농담

담배를 입에 꼬나문 해골이라니, 처음 마주하면 섬뜩하면서도 어쩐지 피식 웃음이 새어 나오시죠? 사실 이 그림은 젊은 빈센트 반 고흐가 던진 짓궂은 농담이랍니다. 작고 날짜도 적히지 않은 이 유화는 1885년에서 1886년으로 넘어가는 겨울 무렵, 그가 벨기에 안트베르펜에 머물 때 그린 것으로 짐작돼요. 지금은 암스테르담 반 고흐 미술관에 자랑스레 걸려 있지요.

농담의 과녁은 바로 미술 학교의 답답한 수업이었어요. 이 무렵 반 고흐는 안트베르펜 왕립 미술 아카데미에 다니고 있었는데, 살아 있는 모델을 쓰기에 앞서 해골만 들여다보며 해부학을 익히게 하던 보수적인 관행이 영 못마땅했던 거예요. 그는 훗날 그 수업이 따분하기 짝이 없었고 배운 게 아무것도 없었다고 잘라 말했지요. 그러니 이 그림은 '당신들이 그토록 떠받드는 해골, 여기 담배까지 물려 줬소' 하는 통쾌한 받아치기였던 셈이에요.

작은 화면에 담긴 죽음의 상징

이 그림은 가로 24.5센티미터, 세로 32센티미터로 손바닥을 조금 넘는 아담한 크기예요. 그런데 이 작은 화면이 품은 뜻은 결코 가볍지 않아요. 미술사가들은 이 그림을 '바니타스' 혹은 '메멘토 모리', 곧 삶의 덧없음과 '죽음을 기억하라'는 오랜 전통의 한 자락으로 읽거든요. 해골은 예부터 인간의 유한함을 일깨우는 가장 강력한 상징이었으니까요.

공교롭게도 이 그림을 그릴 무렵 반 고흐 자신의 건강도 그리 좋지 않았어요. 그래서 짓궂은 농담 뒤편에는 죽음을 곁눈질하는 한 청년의 그림자가 어른거리기도 해요. 한편 이 작품은 17세기 네덜란드 화가 헤르쿨레스 세헤르스나, 동시대 벨기에 화가 펠리시앵 롭스의 작품에서 영향을 받았으리라 보기도 한답니다. 흥미로운 건 반 고흐 자신이 둘째가라면 서러운 골초였다는 점이에요. 그러니 이 그림을 흡연을 나무라는 경고로 보긴 어려워요. 그는 1890년 세상을 떠날 때까지 줄곧 담배를 손에서 놓지 않았거든요.

해골을 그리던 시절

반 고흐가 해골을 그린 건 이 한 점만이 아니었어요. 안트베르펜 시절 그는 '매달린 해골과 고양이'를 그린 습작도 남겼고, 1887년에서 1888년 사이에는 두개골을 모티프로 한 그림을 두 점 더 그렸지요. 같은 시기의 소묘까지 더하면, 해골은 짧지만 분명하게 그의 화업을 스쳐 간 주제였던 셈이에요. 죽음과 삶의 경계를 응시하던 한 청년의 눈길이 거기 담겨 있어요.

이 그림의 여정도 정겨워요. 반 고흐가 죽은 뒤 작품은 동생 테오의 손에 있었고, 테오마저 일찍 떠나자 그의 아내 요한나가 1925년까지 간직했어요. 이어 두 사람의 아들 빈센트 빌럼에게 넘어갔다가, 1962년 반 고흐 재단의 품으로 들어왔지요. 한 가족이 대를 이어 소중히 지켜 온 그림인 거예요. 1973년부터는 줄곧 반 고흐 미술관에 자리해, 지금도 관람객에게 한 번씩 미소를 선물한답니다.

관람 포인트

먼저 한 걸음 물러서서 그림 전체가 풍기는 분위기를 느껴 보세요. 으스스한 해골과 농담 같은 담배가 한데 어울려 빚어내는 묘한 유머가, 이 작은 그림의 첫인상이랍니다. 다음으로 해골의 이 사이에 물린 담배에 시선을 모으고, 그 끝에서 가느다랗게 피어오르는 연기를 따라가 보세요. 죽음을 상징하는 해골이 살아 있는 사람처럼 담배를 태우는 이 역설이, 그림의 핵심이에요. 그러고는 화면의 작은 크기를 떠올리며, 반 고흐가 이 손바닥만 한 캔버스에 얼마나 큰 풍자를 욱여넣었는지 가늠해 보세요. 마지막으로 갈비뼈와 턱뼈를 훑어 내리는 거친 붓질을 살펴보세요. 아직 그 불타는 색채에 이르기 전, 어둡고 묵직한 색조 속에서도 꿈틀대는 반 고흐 특유의 손맛이 느껴질 거예요.

관련 용어
다음 이야기
The Starry Night
별이 빛나는 밤
빈센트 반 고흐

쇠창살 너머로 본 밤하늘, 스스로 '실패작'이라 부른 그림

이어 보기 →
이 작가의 다른 그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