붓꽃
Iris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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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붓꽃》(네덜란드어: Irissen, 프랑스어: Les Iris, 영어: Irises, 아이리스)은 네덜란드의 화가 빈센트 반 고흐가 그린 여러 붓꽃 그림들 중 하나이며, 그가 사망하기 전 마지막 해인 1890년에 프랑스 생레미드프로방스의 생폴드모졸 요양원 에서 그린 수백 점의 연작 중 하나이다. 이 작품은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의 J. 폴 게티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다.
1889년 5월, 고흐는 스스로 생레미의 생폴드모졸 요양원 문을 두드렸어요. 아를에서의 귀 절단 사건 이후 그는 더 이상 혼자서는 버틸 수 없다고 느꼈어요. 요양원 측은 그에게 창고처럼 쓰이던 방 하나를 화실로 내주었고, 처음에는 원내 밖으로 나가지도 못하게 했어요.
그의 세계는 담장 안의 정원으로 좁아졌어요. 그 정원에는 붓꽃이 가득 피어 있었어요. 고흐는 입원한 지 한 달도 안 돼 붓꽃 앞에 앉아 캔버스를 폈어요. 그림 자체에 대해서는 '습작'이라고만 했지만, 동생 테오에게 보낸 편지에서 그림을 그리는 일이 '내 치유 능력을 아주 빠르게 되돌려 줄 것'이라고 썼어요. 그에게 붓을 드는 일은 단순한 작업이 아니라 자신을 지키는 방패 같은 것이었어요.
캔버스에는 뒤엉키고 넘쳐흐르는 붓꽃들이 가득해요. 꽃잎은 화면 가장자리 밖으로 넘어갈 듯 빽빽하고, 몇몇은 이미 시들기 시작했어요. 연구자들은 이 그림의 파란 꽃잎이 원래 제라늄 빨강과 파랑을 섞은 보라였다는 사실을 밝혀냈어요. 세월이 지나면서 빨간 안료가 바래 지금 우리 눈에는 파란 붓꽃으로 보이는 거예요. 색도 시간 앞에서는 변하는 것이었어요.
그림은 테오가 1889년 9월 앵데팡당 전시에 출품했어요. 테오는 편지에 '전시장 좁은 벽에 걸렸는데 멀리서도 눈에 확 들어온다'고 썼어요. 고흐는 정원 밖을 나가지도 못하면서, 정원 안에서 세상을 향한 그림을 완성하고 있었어요.
일본 판화 속 붓꽃들을 사랑했던 고흐는 이 꽃을 통해 프로방스의 정원을 일본의 어느 들판처럼 느꼈을 거예요. 담장 안에 갇혔지만 붓을 쥔 손만은 자유로웠고, 그 자유로움이 지금도 화면 밖으로 넘쳐흐르는 느낌을 주어요.
- 흰 한 송이 — 푸르고 보랏빛 붓꽃들 사이, 왼쪽에 단 한 송이 흰 붓꽃이 홀로 서 있어요. 무리 속에서 다른 색으로 떨어져 나온 그 하나가 자꾸 눈길을 붙잡죠.
- 빽빽함 — 붓꽃들이 화면 가장자리 밖으로 넘쳐흐를 듯 가득해요. 하늘도 지평선도 거의 없이 꽃과 잎만으로 화면을 채운 잘라낸 듯한 구도예요.
- 춤추는 잎 — 칼처럼 뾰족한 초록 잎들이 제각각 방향으로 휘고 비틀려요. 꽃 한 송이마다 다르게 기울어, 정지한 그림인데도 바람에 흔들리는 듯하죠.
- 색의 대비 — 깊은 보라와 파랑 옆에, 왼쪽 위 주황 꽃과 아래쪽 붉은 흙빛을 나란히 두었어요. 반대되는 색이 부딪치며 화면을 더 환하게 울려요.
- 물감의 결 — 꽃잎과 잎사귀에 두텁게 얹힌 물감의 결을 따라가 보세요. 갇힌 방에서 나와 정원에 앉아 붓을 든 한 사람의 손길이 그 결마다 만져져요.
무리 속 저 흰 한 송이는 왜 거기 홀로 서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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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양원 정원에서
《붓꽃》은 빈센트 반 고흐가 1889년 5월에 그린 그림으로, 지금 로스앤젤레스의 게티 미술관에 있어요. 그가 생레미의 생폴드모졸 요양원에 자진해 들어간 바로 그 첫 달에, 담장 안 정원에 핀 붓꽃을 보고 그린 작품이지요. 바깥출입이 제한된 그에게, 이 작은 정원과 침실 창밖 풍경은 자연과 이어지는 거의 유일한 통로였어요.
붓꽃은 화면 가장자리 밖으로 넘쳐흐를 듯 가득해요. 고흐 특유의 두텁게 바른 물감(임파스토)이 꽃잎 하나하나에 움직임과 생명을 불어넣지요. 잘라낸 듯한 클로즈업 구도와 큼직한 색면에선, 그가 즐겨 모으던 일본 우키요에 판화의 영향이 엿보여요. 고흐는 붓꽃을 일본과 연결해 떠올리곤 했거든요.
무리 속 하나의 흰 붓꽃
보라와 파랑으로 무리 진 붓꽃들 사이에, 단 한 송이 흰 붓꽃이 섞여 있어요. 빽빽한 한 무리 가운데 홀로 다른 색으로 선 그 한 송이는, 보는 이의 시선을 붙잡고 묘한 여운을 남기지요. 고흐 자신은 이 그림을 완성된 작품이라기보다 하나의 '습작'으로 여겼다고 해요. 밑그림도 따로 없이, 정원에서 자연을 보고 곧바로 그려 낸 그림이거든요.
그림이라는 치유
《붓꽃》이 더 뭉클한 건, 그것이 그려진 시간 때문이에요. 막 요양원에 든 고흐는 그림을 그리며 마음을 다스리려 했어요. 그는 동생 테오에게 "내 모든 작업 능력이 곧 다시 돌아올 거라 믿는다"고 적었지요. 정원에 나가 꽃을 그리는 일에서 위안을 찾은 것 — 오늘날 우리가 '미술 치료'라 부르는 것의 이른 모습이에요. 실제로 이 그림의 물감 속엔, 정원의 우산소나무에서 떨어진 꽃가루 송이 하나가 그대로 박혀 있답니다. 그 작은 흔적이, 고흐가 바로 그 자리에서 이 꽃들과 함께 있었음을 말해 주지요. 고흐는 이 요양원에 머문 한 해 동안 무려 150점 가까운 그림을 쏟아냈는데, 《붓꽃》은 그 폭발적인 시기의 첫머리에 놓인 작품이에요. 같은 정원에서 그는 풀 사이에 핀 한 송이 붓꽃을 따로 그리기도 했지요. 깊은 보라와 파랑을 그 보색인 붉은 흙빛·노란 꽃과 나란히 둔 색의 대비도 눈여겨볼 만해요 — 서로 반대되는 색이 부딪치며 화면을 더 환하게 울리게 하지요. 1990년 게티 미술관이 사들일 무렵엔, 이 그림이 세상에서 가장 비싼 그림 가운데 하나로 꼽히기도 했답니다.
관람 포인트
무리 진 붓꽃들 사이에서 단 한 송이 흰 붓꽃을 찾아보세요 — 그 하나가 왜 거기 있는지 가만히 생각하다 보면, 무리 속에서 홀로였던 한 사람의 마음이 어렴풋이 만져질 거예요. 그리고 꽃잎과 잎사귀에 두텁게 얹힌 물감의 결을 따라가 보세요. 갇힌 방에서 나와 정원에 앉아, 다시 일어서기를 바라며 붓을 든 한 화가의 간절함이 그 결마다 살아 있답니다. 갇힌 한 사람이 정원의 꽃에서 길어 올린 그 생명력은, 백 년이 훌쩍 지난 지금도 보는 이의 마음을 환히 밝혀 줘요. 절망의 한가운데서도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눈 — 그것이 고흐가 우리에게 남긴 가장 큰 선물인지도 모른답니다.

쇠창살 너머로 본 밤하늘, 스스로 '실패작'이라 부른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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