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 깨는 사람들
The Stone Break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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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tone Breakers, also known as Stonebreakers, was an 1849 oil painting on canvas by the French painter Gustave Courbet. Now destroyed, the image remains an often-cited example of the artistic movement Realism.
1849년 가을, 귀스타브 쿠르베는 마차를 타고 풍경을 그리러 나가다 길 위에서 두 남자를 발견했어요. 한 명은 일흔 즈음의 노인, 다른 한 명은 아직 어린 소년이었어요. 둘 다 낡은 옷과 나막신 차림으로 돌을 깨고 있었죠. 쿠르베는 그 자리에서 멈췄어요. 그리고 이튿날 아침 자신의 작업실로 두 사람을 불러들였어요.
완성된 그림에서 두 남자는 얼굴을 보이지 않아요. 노인은 허리를 굽혀 망치를 들고, 소년은 돌 광주리를 들어 올려요. 쿠르베는 친구에게 보낸 편지에 이렇게 썼어요. '이 그림이 가난의 가장 완전한 표현'이라고. 그는 낡은 바지의 기운 자국, 꿰맨 양말 사이로 드러난 발꿈치, 등이 찢긴 셔츠까지 하나하나 공들여 그려 넣었어요.
1850년 파리 살롱에 이 그림이 걸리자 반응은 냉담했어요. '하층 노동자가 이렇게 큰 화폭에 담길 자격이 없다'는 비난이 쏟아졌어요. 하지만 사회 이론가 프루동은 이 그림을 '사회주의 회화의 걸작'이라 불렀고, 훗날 한 비평가는 '삶의 진실이 빛나는 그림'이라 평했어요.
이 그림에는 기구한 운명이 따라붙었어요. 드레스덴 박물관이 1882년에 소장했고, 2차대전 중 연합군의 폭격을 피해 옮기다 불길에 휩싸여 소실되었다는 기록이 있어요. 다만 1988년 한 미술사학자는 실제로 다른 경로로 행방불명되었을 가능성도 제기했죠. 진실은 아직도 확인되지 않아요. 다행히 거울상으로 그린 두 번째 버전이 스위스 빈터투어의 오스카 라인하르트 컬렉션에 남아 있어요.
쿠르베는 '나는 천사를 그릴 수 없다, 한 번도 본 적이 없으니까'라고 말했어요. 그가 평생 그린 것은 길 위의 사람들이었어요.
- 가려진 얼굴 — 두 사람 다 얼굴이 보이지 않아요. 왼쪽 젊은이는 등을 돌렸고 오른쪽 노인은 모자에 가렸죠. 특정한 누군가가 아니라 모든 가난한 노동자를 대신하기에, 화가는 일부러 얼굴을 비웠어요.
- 두 동작 — 한쪽은 무거운 돌바구니를 안고 비척이고, 한쪽은 무릎을 꿇고 망치를 치켜들었어요. 들어 나르고 내리쳐 깨는, 노동의 두 순간이 한 화면에 나뉘어 담겼죠.
- 해진 차림 — 멜빵 바지의 얼룩, 헐거운 셔츠, 흙 묻은 신발. 옷차림의 세부 하나하나가 두 사람의 고된 처지를 가차 없이 드러내요.
- 자갈밭 — 발치엔 깨진 돌과 자갈, 곡괭이와 바구니, 한쪽엔 작은 단지가 놓였어요. 영웅도 신화도 없이 길가의 막노동만이 화폭을 가득 채우죠.
- 어두운 언덕 — 뒤로는 가파른 어둑한 비탈이 솟아 하늘조차 거의 보이지 않아요. 두 사람을 짓누르듯 닫힌 배경이 그들을 일에서 헤어날 수 없게 가두죠.
이 두 사람 중 누구의 처지가 더 마음에 걸리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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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가에서 만난 두 사람
1849년 11월의 어느 날, 귀스타브 쿠르베는 마차를 타고 풍경화를 그리러 가는 길이었어요. 메지에르 부근에서 그는 길가에 멈춰 돌을 깨는 두 남자를 가만히 바라보았지요. 훗날 그는 친구 프랑시스 베이 부부에게 이렇게 편지를 썼어요. '가난의 가장 완전한 모습을 만나는 일은 흔치 않다'고요. 그 자리에서 그림에 대한 영감을 얻은 쿠르베는, 이튿날 아침 자기 작업실로 두 사람을 불러 약속을 잡았답니다.
그렇게 태어난 것이 바로 《돌 깨는 사람들》이에요. 한쪽에는 일흔 살 된 노인이 큰 망치를 치켜든 채 허리를 굽히고 있고, 다른 한쪽에는 먼지를 뒤집어쓴 젊은이가 자갈 바구니를 나르지요. 쿠르베는 노인을 묘사하며 '굽었다'는 뜻의 프랑스어 쿠르베(courbé)를 썼는데, 자기 성(姓)과 같은 그 말을 일부러 골랐을지도 모른다는 이야기가 전해져요.
'천사를 본 적이 없어 그릴 수 없다'
쿠르베는 사실주의라는 미술 운동을 이끈 사람이에요. 그는 사실주의를 '내가 세상을 보는 방식'이라 불렀고, 오직 눈앞에 살아 있는 것만을 그리겠다고 고집했지요. '나는 천사를 그릴 수 없다, 한 번도 본 적이 없으니까'라는 그의 유명한 말이 그 신념을 또렷이 보여 줘요.
그래서 이 그림에는 영웅도, 신화도, 교훈도 없어요. 누더기를 걸치고 나막신을 신은 두 노동자가, 역사화에나 어울릴 법한 커다란 화폭 위에 실물 크기로 당당히 서 있을 뿐이지요. 쿠르베는 두 사람의 얼굴을 보여 주지 않았어요. 이들은 한 개인이 아니라 짓밟힌 노동자 모두를 대신하는 존재였으니까요. 미술사가 캐스린 캘리 갈리츠는 이 작품이 '예전에는 역사화에만 허락되던 큰 규모로 일상의 장면을 그려 관습에 도전했다'고 평했답니다.
살롱을 발칵 뒤집다
이 그림이 1850년 파리 살롱에 걸리자 큰 소동이 벌어졌어요. 미천한 노동자를 추한 모습으로 그렸다는 비난이 쏟아졌고, 어떤 평론가는 팔레트 나이프로 두껍게 바른 거친 물감을 흠잡았지요. 반면 사회사상가 피에르조제프 프루동은 이 작품을 '그 장르의 걸작'이라 부르며, 자본주의를 시각적으로 고발한 성공적인 '사회주의 회화'라고 치켜세웠어요. 작가 쥘 샹플뢰리는 '오늘부터 비평가들은 미술 속 사실주의를 두고 찬반으로 싸울 준비를 하라'고 선언했답니다.
안타깝게도 살롱에 걸렸던 이 원작은 지금 우리 곁에 없어요. 드레스덴 미술관이 소장하던 이 그림은 1945년 제2차 세계대전의 혼란 속에서 사라졌거든요. 폭격당한 수송 차량과 함께 불탔다는 이야기도, 그 전에 이미 행방불명되었다는 연구도 있지요. 다행히 쿠르베가 그린 좌우가 뒤집힌 두 번째 작은 판본은 살아남아, 지금은 빈터투어의 오스카어 라인하르트 컬렉션에 남아 있답니다.
관람 포인트
먼저 두 노동자의 얼굴을 찾아보세요. 어디에도 또렷한 표정이 없지요? 쿠르베가 일부러 얼굴을 가린 까닭이, 이들이 특정한 누군가가 아니라 모든 가난한 노동자를 대신하기 때문임을 떠올려 보세요. 다음으로 누더기 옷과 해진 나막신, 양말 사이로 드러난 맨꿈치 같은 세부를 눈여겨보세요. 쿠르베가 두 사람의 비참한 처지를 얼마나 가차 없이 그렸는지 느껴질 거예요. 그리고 화폭의 크기를 상상해 보세요. 영웅을 그리던 거대한 화면에 평범한 막노동을 올려놓은 그 발칙함이, 당시 사람들을 왜 그토록 불편하게 했는지 헤아려 보는 거예요. 마지막으로, 우리가 보는 이 그림이 흑백 사진과 뒤집힌 판본으로만 전해진다는 사실을 기억해 주세요. 사라진 원작의 빈자리가, 이 작품을 더욱 애틋하게 만든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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