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està
← 소장품으로

델프트 풍경

View of Delft

요하네스 페르메이르

분류
Paintings
지역
서양
라이선스
Public domain (Wikimedia Commons)
작품 소개

《델프트 풍경》(영어: View of Delft, 네덜란드어: Zicht op Delft)은 요하네스 페르메이르가 1659–1661 년경에 그린 유화이다. 페르메이르의 고향을 그린 이 그림은 그의 가장 잘 알려진 작품 중 하나이다. 이 그림은 페르메이르가 델프트를 그린 세 점의 작품 중 하나로, 《작은 거리》와 《델프트에 서 있는 집》(분실)과 함께 화가의 유일한 도시 풍경화이다. 미술사학자 엠마 바커에 따르면, 당시 물이 있는 도시 풍경화는 네덜란드에서 인기가 높았는데, 델프트와 그 무역을 기념하기 위한 목적이었다. 페르메이르의 델프트 풍경은 헤이그의 마우리츠하위스 미술관가 설립되었을 때부터 이 미술관의 네덜란드 왕립 회화실에 전시되어 있다.

도슨트 이야기

1902년 10월, 마르셀 프루스트는 헤이그의 마우리츠하이스 미술관에서 이 그림 앞에 섰습니다. 그는 나중에 친구에게 편지를 썼어요. '나는 그 순간 내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그림을 보았다는 것을 알았다.' 그로부터 19년 뒤, 1921년 파리의 전시회장에서 그림을 다시 마주한 프루스트는 발작을 일으켜 쓰러졌습니다. 그 경험이 소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한 장면이 되었어요. 작중 작가 베르고트는 이 그림 앞에서 숨을 거두며 이렇게 중얼거립니다. '나도 이렇게 써야 했는데… 노란 벽의 작은 부분처럼 언어를 그 자체로 귀하게 만들었어야 했는데.'

페르메이르가 고향 델프트를 그린 것은 1659년에서 1661년 사이로 추정됩니다. 그는 도시 남동쪽의 높은 곳—아마도 자신의 작업실이 있던 메헬렌 주막의 윗층—에서 강 너머 도시를 바라보았어요. 화면 왼편에는 로테르담 행 여객 바지선을 기다리는 다섯 사람이 있고, 그 옆에서 두 여인이 나지막이 이야기를 나눕니다. 고요한 수면에 건물들이 그대로 비치고, 저 멀리 니우에케르크의 첨탑이 환하게 빛납니다.

그 빛은 우연이 아니었습니다. 페르메이르는 니우에케르크를 실제보다 화면 중앙 가까이로 옮겨 더 두드러지게 배치했어요. 이 교회는 오라녀 왕가의 묘소가 있는 곳으로, 교회를 밝히는 것은 왕가에 대한 지지를 뜻했습니다. 페르메이르 자신이 세례를 받은 교회이기도 했고, 그의 어머니와 누이가 묻힌 곳이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화면 뒤편, 1246년경 세워진 구(舊)교회의 탑 꼭대기가 살짝 얼굴을 내밀고 있는데—페르메이르 자신이 훗날 묻힌 바로 그 교회입니다.

이 그림은 1822년 네덜란드 정부가 2,900길더에 매입한 뒤 마우리츠하이스에 걸렸고, 그 자리를 지금까지 지키고 있습니다. 200년 넘는 세월 동안 수많은 사람들이 이 강변 앞에 섰고, 그중에는 프루스트처럼 평생의 무언가를 가져간 사람도 있었습니다. '노란 벽의 작은 부분'—거기에 정확히 무엇이 있었는지는 여전히 그림 속에 남아 있습니다.

이렇게 보세요
  • 하늘화면의 절반 넘게 하늘이 차지하고, 무거운 잿빛 구름과 그 사이 트인 파랑이 도시를 작게 눌러 앉혀요. 시선이 위에서부터 천천히 도시로 내려오게 되죠.
  • 빛의 띠앞쪽 성문들은 구름 그늘에 잠겨 있는데, 그 뒤 지붕과 첨탑 한 줄에만 햇빛이 닿아 환하게 빛나요. 어둠과 밝음이 가로로 띠를 이루며 깊이를 만들어요.
  • 물의 거울화면 아래 잔잔한 수면에 건물과 배가 그대로 비쳐요. 위쪽 실제 건물보다 아래 반영이 조금 더 흐리고 어두워, 물의 물성이 그대로 느껴져요.
  • 강가의 사람들왼쪽 아래 모래톱에 선 사람들을 찾아보세요. 푸른 옷의 두 여인과 검은 옷의 무리가 도시의 거대한 풍경 앞에서 아주 작은 점으로 놓여 있어요.
  • 물감 알갱이배와 건물 모서리에 점점이 두툼하게 찍힌 밝은 물감을 가까이서 보세요. 멀리선 반짝이는 빛으로 보이던 것이 가까이선 물감 덩어리라는 게, 빛을 '만든' 방식을 알려 줘요.

당신의 눈은 하늘, 도시, 물 가운데 어디에 가장 오래 머무나요?

도슨트 심화더 깊이 보기 ↓

한 도시의 초상

페르메이르가 남긴 유일한 도시 풍경화입니다. 그는 델프트 남동쪽의 높은 곳, 아마도 자신의 작업실이 있던 메헬렌 여관 위층에서 이 풍경을 내려다봤어요. 화면 오른쪽 끝에 중세 벽돌 건물인 로테르담 문이 서 있고, 그 앞에 청어잡이 배 두 척이 떠 있어요. 가운데에는 스히담 문, 두 문 사이에는 지붕에 시계가 달린 다리가 보이죠. 이 모든 것이 스히 강의 잔잔한 수면에 거울처럼 비쳐요. 왼쪽 아래에는 객선을 기다리는 다섯 사람이 서 있는데 — 말이 끄는 그 배는 서른 명까지 태우고 로테르담이나 스히담으로 향했어요 — 페르메이르는 배의 붉은 내부에 자기 이니셜 'VM'을 슬쩍 적어 넣었어요. 원래는 두 여인 곁에 한 사람을 더 그렸다가 나중에 지웠다는 사실도 밝혀졌죠.

빛이 머무는 자리

이 그림에서 가장 놀라운 건 빛의 처리예요. 햇빛을 받은 로테르담 문 뒤로 니우어 케르크(새 교회)의 첨탑이 환하게 빛나는데, 실제 위치보다 더 중앙으로 당겨 그려 도드라지게 했어요. 이 교회는 페르메이르가 세례를 받고, 그의 어머니와 누이가 묻힌 곳이에요. 멀리 보이는 또 다른 탑은 1246년경 세워진, 델프트에서 가장 오래된 오우더 케르크(옛 교회)인데, 훗날 페르메이르 자신이 그곳에 묻혀요. 한 화가의 생애 전체가 이 작은 화면 안에 담겨 있는 셈이죠. 환하게 밝힌 니우어 케르크에서 정치적 의미를 읽는 학자도 있어요. 이 교회에는 오라녜 공 빌럼의 무덤이 있었고, 그 탑을 빛나게 그린 것이 당시 오라녜 왕가에 대한 지지를 드러낸 것이라는 해석이죠. 건물과 물 위에 흐릿하게 번진 빛 때문에, 많은 학자들은 페르메이르가 카메라 옵스쿠라라는 광학 장치를 썼을 거라 추측해요. 물론 증거가 없다며 끝까지 반대하는 이들도 있지만요.

프루스트의 노란 벽

이 그림을 가장 사랑한 사람은 아마 소설가 마르셀 프루스트일 거예요. 그는 1902년 헤이그에서 이 그림을 처음 보고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그림을 보았다"고 적었어요.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서는 작가 베르고트가 바로 이 그림 앞에서 숨을 거두는데, 그가 마지막으로 바라보는 것이 '노란 벽의 작은 한 조각(petit pan de mur jaune)'이에요. 실제로 프루스트 자신도 1921년 이 그림을 다시 보던 중 발작을 일으켰고, 그 경험이 소설 속 장면이 되었죠. 1822년 마우리츠하위스 미술관이 문을 열 때부터, 이 그림은 줄곧 그 자리를 지켜 왔어요.

관람 포인트

먼저 수면에 비친 도시의 반영을 보세요. 위쪽의 실제 건물과 아래쪽 그림자가 미묘하게 색이 다른 걸 알아챌 수 있을 거예요. 그다음 햇빛이 닿은 니우어 케르크 첨탑과, 그늘에 잠긴 앞쪽 성문의 명암 대비를 비교해 보세요. 프루스트가 말한 '노란 벽 한 조각'을 직접 찾아보는 것도 이 그림만의 즐거움이에요. 그리고 가능하다면 가까이 다가가, 건물 모서리와 배 위에 점점이 찍힌 두툼한 물감 알갱이들을 관찰해 보세요 — 멀리서는 빛으로 보이던 것이 가까이서는 물감 덩어리라는 사실이, 페르메이르가 빛을 어떻게 '만들었는지' 알려 줘요.

이 작품이 속한 기획전
관련 용어
다음 이야기
Girl with a Pearl Earring
진주 귀고리를 한 소녀
요하네스 페르메이르

이름도 신분도 모른 채 360년을 마주 보는 얼굴

이어 보기 →
이 작가의 다른 그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