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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울을 든 여인

Woman Holding a Balance

요하네스 페르메이르

분류
Paintings
지역
서양
라이선스
Public domain (Wikimedia Commons)
작품 소개

Woman Holding a Balance, also called Woman Testing a Balance, is an oil painting by Dutch Golden Age painter Johannes Vermeer, now in the National Gallery of Art in Washington, DC.

도슨트 이야기

오랫동안 이 그림은 '금을 다는 여인'이라 불렸어요. 탁자 위엔 진주와 금이 넘칠 듯 쏟아져 있고, 여인의 손엔 저울이 들려 있었으니까요. 그런데 현미경으로 들여다본 결과, 저울의 접시는 텅 비어 있었어요. 페르메이르는 애초부터 빈 저울을 그렸던 겁니다.

여인은 임신한 듯 배가 부르고, 창문에서 들어오는 빛이 그 얼굴을 고요하게 감쌉니다. 그리고 그녀의 바로 뒤, 벽에는 커다란 '최후의 심판' 그림이 걸려 있어요. 그리스도가 두 팔을 벌린 자세로, 마치 여인의 저울질을 굽어보는 것처럼 서 있죠.

이 대비가 그림의 핵심이에요. 탁자 위의 진주와 금, 그리고 텅 빈 저울. 어떤 이들은 여인이 세속의 보화 대신 영혼의 무게를 재고 있다고 읽어요. 벽에 걸린 거울은 자기 성찰을, 최후의 심판은 진짜 저울질이 어디서 일어나는지를 넌지시 가리키죠. 또 다른 시선에서는 여인이 세속과 신앙을 조화롭게 균형 잡고 있다고 봐요.

무엇이 정답인지는 페르메이르가 알려주지 않았어요. 다만 그가 남긴 건 완벽히 고요한 순간이에요. 여인은 서두르지 않고, 저울은 흔들리지 않으며, 빛은 그저 부드럽게 내려앉아 있어요. 그 침묵 속에서 관람자 각자의 저울질이 시작됩니다.

이렇게 보세요
  • 빈 저울여인이 엄지와 검지로 작은 저울을 가만히 들고 있어요. 양쪽 접시가 비어 있는데도, 그 균형을 맞추는 손끝에 온 화면이 숨죽이고 있죠.
  • 한 줄기 빛왼쪽 창에서 비스듬히 든 빛이 흰 두건과 이마, 모피 깃을 어루만지고, 오른쪽으로 갈수록 벽이 어둠에 잠겨요.
  • 흩어진 보물탁자 위 열린 함에서 진주 목걸이와 금붙이가 빛을 받아 반짝이며 흘러나와 있어요. 저울 위는 비었는데 탁자 위엔 재물이 가득하죠.
  • 등 뒤의 심판여인의 머리 바로 위 벽에는 큼직한 어두운 그림이 걸려 있어요. 사람들이 솟아오르고 가라앉는 '최후의 심판'이, 그녀의 저울질을 영혼의 무게 재기처럼 만들어요.

비어 있는 저울로 그녀는 무엇을 달고 있는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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텅 빈 저울의 고요

《저울을 든 여인》은 네덜란드 황금기의 화가 요하네스 페르메이르가 1662~1663년 무렵에 완성한 유화예요. '저울을 시험하는 여인'이라고도 불리지요. 한때 이 그림은 《금을 다는 여인》이라 불렸어요. 그런데 면밀히 살펴본 결과 여인이 손에 든 저울 위가 텅 비어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고, 그 발견이 그림 전체의 의미를 바꾸어 놓았답니다.

창가의 부드러운 빛 속에서, 은은하게 임신한 듯 보이는 젊은 여인이 빈 저울을 들고 가만히 균형을 살피고 있어요. 그 앞 탁자에는 보석함이 열려 있고, 진주와 금붙이가 그 밖으로 흘러넘쳐요. 왼쪽 앞에는 푸른 천이 놓여 있고, 그 위 벽에는 거울이, 그리고 화면에는 보이지 않지만 황금빛 커튼이 드리운 왼쪽 창에서 빛이 들어오지요. 여인의 모델은 페르메이르의 아내 카타리나였을 것으로 짐작돼요. 텅 빈 저울 하나가 이 모든 고요의 중심에 놓여 있는 셈이에요.

영혼의 무게를 재는 명상

이 그림의 의미를 둘러싸고는 해석이 분분해요. 가장 결정적인 단서는 여인의 등 뒤 벽에 걸린 그림이에요. 바로 '최후의 심판'을 그린 그림으로, 두 팔을 들어 펼친 그리스도의 모습이 담겨 있지요. 여인이 바로 그 심판의 그리스도 발치, 정확히 그 아래에서 무언가의 균형을 재고 있다는 점이 깊은 울림을 줘요.

그래서 누군가는 이 그림을 덧없음을 일깨우는 바니타스로, 누군가는 신성한 진리나 정의의 표현으로, 또 누군가는 균형 잡힌 삶을 권하는 종교적 명상의 보조물로 읽어요. 존 마이클 몬티아스 같은 비평가는 여인을 '아직 태어나지 않은 영혼의 무게를 상징적으로 재는' 마리아의 형상으로 보기도 했어요. 한편 여인이 자신의 귀중품을 달고 있다고 본 이들은, 등 뒤 최후의 심판이 '땅의 보물보다 하늘의 보물에 마음을 두라'는 가르침을 건넨다고 풀이하지요. 이때 벽의 거울은 그 헛된 추구의 허무함을 비추는 장치가 돼요. 또 다른 해석에서는, 저울이 세속의 소유와 영적 경건 사이의 신중한 조화를 나타내고, 거울은 여인의 자기 인식을 비춘다고 보아요. 어느 쪽으로 읽든, 텅 빈 저울은 무게를 다는 행위 자체를 영혼의 고요한 명상으로 끌어올린답니다.

한 점의 빛, 정교한 재료

페르메이르 특유의 빛과 정적은 정교한 재료에서 나와요. 헤르만 퀸의 첫 안료 분석에 따르면, 앞쪽 푸른 식탁보에는 값비싼 울트라마린이, 회색 벽에는 연백이 쓰였어요. 환한 노란 커튼의 안료는 처음엔 인디언 옐로로 잘못 알려졌지만, 이후 연구로 납주석황임이 밝혀졌지요.

흥미로운 뒷이야기도 있어요. 훗날의 기술 조사에서 이 그림이 한참 뒤에 사방으로 약 5센티미터씩 덧대어졌다는 사실이 드러났는데, 안타깝게도 1968년 퀸이 분석한 시료가 바로 그 덧댄 부분에서 채취된 것이었어요. 그래서 커튼 안료가 한동안 잘못 알려졌던 거예요. 작품의 내력도 화려해요. 1696년 암스테르담에서 야코프 디시우스의 유산으로 페르메이르의 여러 작품과 함께 팔렸을 때, 이 그림은 155길더를 받았어요. 같은 자리에서 《잠든 여인》이 62길더, 《장교와 웃는 소녀》가 약 44길더에 팔린 것과 견주면 상당히 높은 값이었지요. 다만 《우유 따르는 여인》의 177길더에는 조금 못 미쳤답니다.

관람 포인트

먼저 여인이 든 저울에 눈을 모으고, 그 위가 정말 텅 비어 있는지 확인해 보세요. 한때 '금을 다는 여인'으로 오해받았던 바로 그 빈 저울이, 이 그림의 모든 명상을 시작하는 지점이랍니다. 그다음 시선을 탁자 위로 옮겨, 보석함에서 흘러넘치는 진주와 금붙이의 은은한 광택을 살펴보세요. 이어 여인의 등 뒤 벽으로 눈을 올려, '최후의 심판' 속 두 팔 벌린 그리스도가 마치 여인의 머리 바로 위에 자리하도록 배치된 절묘함을 음미해 보세요. 세속의 보물과 영혼의 심판이 한 화면에서 수직으로 마주하는 순간이지요. 마지막으로 왼쪽 창에서 비스듬히 들어와 여인의 손과 이마, 흰 두건을 어루만지는 빛의 흐름을 따라가 보세요. 그 한 줄기 빛 속에 페르메이르가 평생 매달린 정적과 고요가 가득 담겨 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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