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수 흥국사 제석천・천룡도
작가 미상
- 제작 시기
- 1741년(조선 영조 17)
- 분류
- 회화
- 문화권
- Korean
- 지역
- 동아시아
- 라이선스
- 국가유산청 (공공누리)
조선 후기 사찰의 주불전(主佛殿)에 위치한 중단탱화는 18세기 전반까지는 제석천도와 천룡도가 각각 독립된 화면으로 제작되다가, 18세기 중・후반에 이르러 제석천도와 천룡도가 결합되어 하나의 화면에 함께 그려지는 방식으로 변화된다. 지정 대상은 각각의 화면으로 제작된 제석천도와 천룡도 2폭의 불화가 1쌍을 이루어 일괄로 전하는 사례이다. 1741년에 제작된 이 작품은 의겸(義謙)의 화풍을 계승한 수화승 긍척의 주도 아래 여러 화승이 협업하여 완성한 것이다. 제석천도는 정면을 응시하고 있는 제석천을 중심으로 좌우 대칭으로 배열된 권속(眷屬)의 구성이 정적인데 반해, 천룡도는 측면으로 얼굴을 돌리고 반가좌로 앉아 있는 위태천(韋駄天)을 둘러싼 권속의 구성이 동적이어서 두 불화가 상호 보완적인 관계 속에서 하나의 체계를 이루고 있음을 보여준다. 두 불화의 관계성은 시각적으로 드러나는 위계(位階)를 통해 다시 한번 확인된다. 즉 위태천보다 위계가 높은 제석천은 등받이가 높고 봉황 장식이 있는 의자에 앉아 정면을 향하고 있는 반면, 위태천은 등받이가 없는 평상형 의자에 앉아 얼굴과 상체를 제석천 쪽으로 돌리고 있다. 또한 화면 크기도 제석천도가 더 크게 제작되었다. ‘여수 흥국사 제석천・천룡도’는 기년작(紀年作) 신중도로, 18세기 의겸 화파의 활동 연구에 있어서 중요한 학술적 자료이다. 특히 제석천과 천룡이라는 두 존위의 불화가 통합되어 신중도 형식으로 정착 발전되어 가기 이전 단계의 모습을 보여주는 불화로 미술사적으로 중요하다.
조선 후기 사찰에서는 원래 제석천도와 천룡도를 각각 다른 화면에 그렸는데, 18세기 중후반에야 두 그림이 한 화면으로 합쳐지기 시작했어요. 1741년에 그려진 이 두 폭은 아직 나뉜 화면으로 남은 이전 시기의 모습을 보여주는 귀한 사례예요.
의겸의 화풍을 이은 수화승 긍척이 여러 화승과 완성했는데, 정면을 바라보는 제석천과 좌우대칭 권속이 정적인 제석천도, 반가좌로 앉은 위태천과 권속이 동적인 천룡도가 의자와 화면 크기의 차이로 위계까지 보여줘요. 신중도로 자리 잡기 전 단계를 보여주는 학술 자료예요.

조선이 사랑한 한 여인의 자태, 옷고름 매만지는 손끝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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