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축사’명 영산회상도
작가 미상
- 제작 시기
- 1742년(조선 영조 18)
- 분류
- 회화
- 문화권
- Korean
- 지역
- 동아시아
- 라이선스
- 국가유산청 (공공누리)
국립중앙박물관 소장의 ‘‘영축사’명 영산회상도’는 화기(畵記)에 있는 기록을 통해 1742년(영조 18)이라는 제작 연대, 혜식이라는 제작자, 영축사라는 원봉안처 등을 명확히 알 수 있는 불화이다. 비단 바탕에 채색으로 영축산에서 석가모니불이 법화경을 설법하는 순간을 표현하였는데, 화면 중앙에 크게 배치한 본존을 중심으로 문수보살과 보현보살 등 10위의 보살, 범천, 제석천, 제자, 팔부중, 벽지불, 타방불, 동자, 사천왕 등 권속들을 짜임새 있게 배치하였다. 이 작품의 수화승 혜식은 1740~1741년 대구 파계사, 의성 고운사와 운람사 등의 대규모 불상 및 불화 조성 불사를 이끌었던 화승으로 3천여 위(位) 이상의 불상과 불화를 제작하고 중수할 정도로 역량과 조직력을 갖추었다 할 수 있는데, 이 작품은 혜식의 화승으로서의 역량이 가장 뛰어났던 시기에 조성된 것으로 보인다. 유려한 세선을 사용한 인물 표현, 녹색과 적색의 안정된 색감, 신광의 내부를 띠로 표현한 기법, 회장의 원형 범자문 및 낙영(絡纓) 표현, 녹색의 회장을 능화문으로 장엄한 점 등 18세기 전반 영남 지역 불화의 특징이 잘 나타나 있을 뿐 아니라 세부 표현에서 혜식 나름대로의 화풍이 잘 드러나 있다. 현존 영상회상도 가운데에서도 큰 편에 속하는 이 작품은 혜승의 대표작이자 18세기 전반 영산회상도를 대표하는 작품으로 평가된다. 또한 화기에 화승 집단을 스스로 ‘비수회(毘首會)’라 칭한 점은 조선 후기 화승 집단의 장인적 정체성과 조직적 활동을 보여주는 희귀한 사례로 중요한 학술적 가치를 지니고 있으므로 보물로 지정해 연구하고 보존할 만한 충분한 가치가 있다.
화기에 남은 기록으로 1742년 제작 연대와 화승 혜식의 이름, 봉안처인 영축사까지 알 수 있는 불화예요. 비단에 채색으로 영축산에서 석가모니불이 법화경을 설법하는 순간을 담았습니다.
본존을 중심으로 문수·보현보살 등 열 분의 보살과 범천, 제석천, 제자, 팔부중을 짜임새 있게 배치했어요. 유려한 선과 녹색·적색의 안정된 색감에서 18세기 전반 영남 지역 불화의 특징과 혜식 특유의 화풍이 드러납니다.
수화승 혜식은 대구 파계사, 의성 고운사와 운람사의 큰 불사를 이끌었던 화승으로, 이 그림은 그의 기량이 무르익은 시기의 대표작이에요. 화승 집단을 '비수회'라 칭한 화기 기록도 남아 있어 학술적 가치가 큽니다.

조선이 사랑한 한 여인의 자태, 옷고름 매만지는 손끝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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