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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성 백양사 아미타여래설법도 및 복장유물

작가 미상

제작 시기
1775년(영조 51)
분류
회화
문화권
Korean
지역
동아시아
라이선스
국가유산청 (공공누리)
작품 소개

‘장성 백양사 아미타여래설법도’는 1775년(영조 51) 수화승 색민(嗇敏)을 비롯한 총 11명의 화승들이 참여해 제작한 불화로, 1775년 극락전 아미타불상을 중수하면서 새롭게 제작된 작품으로, 1994년 9월에 도난당했으나 2006년 9월 회수되었다. 대시주 겸 화주(化主)인 환월당 민숙(喚月堂 旻肅)이 외조모 유씨 부부와 어머니 봉씨 부부의 극락왕생을 기원할 목적으로 발원할 것으로, 복장발원문에 ‘불상개금 백월당대사 색민비구 상단탱도화원 계헌비구(佛像改金 白月堂大師 嗇旻比丘, 上壇幀都畫員 戒憲比丘)’라고 기록되어 있어 색민이 불상개금 및 불화조성의 총책임을 맡았고 불화의 조성은 계헌을 중심으로 여러 화승들이 담당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수화승 색민은 18세기 전반의 대화승 의겸의 문하에서 그림을 배운 인물로, 그 역시 뛰어난 필력으로 대형 괘불도에서부터 칠성도에 이르기까지 모든 분야의 불화를 그려내었던 18세기를 대표하는 화승 중 한명이다. 색민의 활동상 이 작품은 만년기에 해당하지만, 계헌의 입장에서는 첫 수화승으로 그린 작품이자 초기 또는 중반기의 작품으로 판단된다. 따라서 이 ‘장성 백양사 극락보전 아미타여래설법도’는 의겸에서 색민, 색민에서 다시 계헌으로 이어지는 의겸 화풍의 전승과 발전 과정을 이해하는데 매우 중요한 작품으로 평가된다. 장황은 일부 개장되었으나 본 화면은 제작 당시의 원형을 큰 손상 없이 간직하고 있다. 본존인 아미타불을 중심으로 8대보살과 6위의 제자, 사천왕, 2위의 팔부중을 배치한 간략한 화면구성, 본존의 두광에서부터 제자상과 팔대보살 등 권속들을 따라가며 화면을 꽉 채우는 큰 원형구도, 세로로 긴 화면, 화면을 압도하는 본존불, 날씬한 협시보살의 모습 등에서 전체적으로 장중함과 상승감을 느끼게 한다. 이러한 특징은 색민이 제작한 화엄사 삼신불도(1757년)과 대흥사 괘불도(1764년) 등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장성 백양사 아미타여래설법도’는 안정되고 짜임새 있는 구도와 구성력을 갖추었으며, 간결한 필치와 안정되고 중후한 색감, 원만한 인물의 표현 등에서도 18세기 후반의 시대적 특징을 잘 반영하고 있는 대표적인 불화로 평가된다. 아울러 제작 당시의 복장유물이 온전하게 잘 남아 있어 18세기 후반 불화 복장 연구에 귀중한 자료를 제공해준다.

도슨트 이야기

1775년, 수화승 색민을 비롯한 11명의 화승이 극락전 아미타불상을 새로 단장하며 함께 그린 그림이에요. 1994년 도난당했다가 2006년에 되찾은 사연도 품고 있습니다. 대시주 환월당 민숙이 극락왕생을 빌며 발원했고, 색민이 총책임을 맡고 계헌이 화승들을 이끌었다는 기록이 남아 있어요.

색민은 18세기 전반의 대화승 의겸에게 그림을 배운 인물로, 이 작품은 그의 만년기 솜씨이자 계헌에게는 첫 수화승 작품이었습니다.

아미타불을 중심으로 8대보살과 제자, 사천왕, 팔부중을 배치한 간결한 구성에, 화면을 가득 채우는 큰 원형 구도와 세로로 긴 화면이 장중하고 상승감 있는 인상을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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