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태부인경수연도
작가 미상
- 제작 시기
- 18세기 전반
- 분류
- 회화
- 문화권
- Korean
- 지역
- 동아시아
- 라이선스
- 국가유산청 (공공누리)
<칠태부인경수연도(七太夫人慶壽宴圖)>는 왕의 명령과 보조를 받아 70세 이상의 모친을 모시고 있는 신하 7명이 1691년 8월 경수연(장수를 축하하고자 베푼 잔치)을 치른 후 기념으로 제작하였던 것을 1745년 이전 어느 시점에 새롭게 제작한 작품이다. 경수연도는 양로(養老)를 중시한 조선시대의 대표적 사가행사도(私家行事圖)의 일종이다. 이 작품은 후대 모본이지만 유연하면서도 차분한 필선, 변화있는 세부 표현, 행사 내용의 요약적인 전달력 등을 갖추고 있어 회화적으로 우수한 행사기록화로 평가된다. 그런가하면 가로로 길게 이야기를 펼칠 수 있는 횡권 형식을 취하여 행사의 순서에 따라 작품을 전개시킨 방식은 드문 예로 판단된다. 또한 강세황(姜世晃, 1713~1791년)의 33세 때 필적이 포함되어 있어 작품의 제작시기를 분명히 알 수 있고, 아울러 희소한 강세황의 30대 초반 필적을 볼 수 있는 점도 의미가 있다. 이 글은 연회가 베풀어졌을 당시 홍문관 부제학이었던 권해(權瑎, 1639~1704년)가 지은 것인데, 권해의 증손인 권조언(權朝彦, 1710~1778년)의 부탁으로 1745년 음력 7월 강세황이 쓴다는 내용이 있어 행사가 치러진 후 54년 만에 기록된 것임을 밝히고 있다. 이를 통해 칠태부인경수연도는 현전하는 경수연도 중에서 가장 이른 시기에 제작된 작품 가운데 하나로 주목되는 것이다.
70세 넘은 어머니를 모신 신하 일곱 명이 왕명과 보조를 받아 1691년 8월 경수연(장수를 축하하는 잔치)을 치른 뒤 기념으로 그렸던 그림을 1745년 이전에 다시 그린 작품이에요. 양로를 중시한 조선의 대표적 사가행사도예요.
후대의 모본이지만 필선이 유연하고 차분하며 세부 표현에 변화가 있어 행사 내용을 요약해 전하는 힘이 뛰어나고, 가로로 긴 횡권 형식으로 순서를 전개한 점도 드문 예예요.
33세의 강세황이 쓴 글이 남아 제작 시기를 알 수 있는데, 연회 당시 부제학이던 권해가 지은 글을 증손의 부탁으로 1745년 강세황이 옮겨 썼어요. 54년 만의 이 기록은 현전 경수연도 중 가장 이른 작품으로 꼽혀요.

조선이 사랑한 한 여인의 자태, 옷고름 매만지는 손끝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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