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원 성주사 감로왕도
작가 미상
- 제작 시기
- 1729년(조선 영조 5년)
- 분류
- 회화
- 문화권
- Korean
- 지역
- 동아시아
- 라이선스
- 국가유산청 (공공누리)
성주사 감로도는 화기에 의하면 1729년에 성징(性澄)을 증명과 수화승으로 맡고 신정(愼淨), 한영(漢英), 인행(印行), 세관(世冠), 국영(國暎) 등이 참여하여 그린 하단탱 불화이다. 성주사 감로도는 조선 후기의 일반적인 감로도와는 다르게 화면을 구성하고 있다. 이 그림의 화면구성은 상부에 칠여래(七如來)와 관음보살을 중앙부에는 지장보살, 인로왕보살을 비롯하여 아귀와 작법승 등 의식장면을 하부에는 역시 인간의 생활 양태와 죽음을 맞이하는 양상을 배치하였다. 이 그림의 가장 두드러진 도상적 특징은 조선 감로왕도 도상의 필수적 구비 조건이었던 시식대 즉 재단(齋檀)과 작법승의 장면이 생략되었다는 점이다. 그와 더불어 화면을 향하여 오른쪽 상부에 극락세계를 의미한 전각이 배치되고 칠여래가 매우 강조되었고 전투 장면이 육상이 아닌 해전으로 표현되었다는 점이다. 이처럼 재단이 생략된 감로왕도는 3점이 더 알려져 있는데, 그 가운데 제작시기가 가장 앞서는 직지사 구장(舊藏) 감로왕도(1724) 역시 이 그림을 그린 성징(性澄)과 세관(世冠), 인행(印行) 등에 의해서 제작되었다. 따라서 이 성주사 감로왕도는 직지사 구장본을 모본으로 하여 제작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 그림은 조화로운 색감과 섬세한 세부묘사 등 안정된 화취를 지니고 있고, 도상적인 특이성 특히 직지사 구장본의 행방이 확실하지 않은 현재 매우 중요한 감로왕도이다.
1729년, 성징을 증명이자 수화승으로 삼아 여러 화승이 함께 그린 감로도예요. 다른 감로왕도와 달리 재단과 법회를 이끄는 스님의 모습을 생략하고, 오른쪽 위에는 극락을 상징하는 전각을 배치했어요. 전쟁 장면도 육지가 아닌 바다 위의 싸움으로 그려 눈길을 끕니다.
이렇게 제단이 빠진 감로왕도는 몇 점 더 있는데, 가장 앞선 작품은 지금 행방을 알 수 없는 직지사의 1724년 감로왕도예요. 성주사 감로도는 바로 그 그림을 본으로 삼아 그려졌답니다.
조화로운 색감과 섬세한 세부 묘사가 안정된 화취를 전해줄 뿐 아니라, 사라진 원본의 모습을 짐작하게 해주는 소중한 자료예요.

조선이 사랑한 한 여인의 자태, 옷고름 매만지는 손끝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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