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천 봉림사 영산회상도 및 복장유물
작가 미상
- 제작 시기
- 1724년
- 분류
- 회화
- 문화권
- Korean
- 지역
- 동아시아
- 라이선스
- 국가유산청 (공공누리)
이 불화는 17세기말에서 18세기 초 팔공산 일대에서 활발한 활동을 펼친 의균의 제자인 쾌민과 체준 등이 함께 1724년에 제작한 영산회상도로서 중앙의 석가모니불을 중심으로 보살과 제자, 호법신 등이 빽빽하게 둘러싸는 전형적인 군도형식을 보여주고 있다. 본존의 키형 광배와 뾰족한 육계표현, 양감 있는 인물표현, 중후한 사천왕의 신체표현 등은 스승인 의균이 제작한 기림사 비로자나삼불회도와 유사한 특징을 보여주고 있어 스승의 양식을 잘 계승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색채에서 적색과 녹색의 강한 대조를 이루는 색채감이나 권속이 본존을 빽빽하게 둘러싼 구성 등은 의균과는 다른 특징을 보여주고 있으며, 이와 같은 화풍적 특징은 1728년 이후 불화 화풍을 주도하고 있다는데서 더욱 큰 학술적 의미가 있다고 판단된다. 또한 이 불화는 화기뿐만 아니라 발원문을 비롯하여 후령통 등 격식을 제대로 갖춘 복장주머니(腹藏囊)도 가지고 있어 불화 제작의 상황을 짐작하는데 더 없이 중요한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1724년, 팔공산 자락에서 활동한 화승 의균의 제자 쾌민과 체준 등이 함께 완성한 영산회상도예요. 석가모니불을 중심으로 보살과 제자, 호법신이 빈틈없이 둘러싼 모습이 당시 유행하던 군도형식을 잘 보여줍니다.
키 모양 광배와 뾰족한 육계, 도톰한 인물 표현은 스승 의균이 그린 기림사 불화와 닮아 그 화풍을 잘 이었음을 보여줘요. 다만 적색과 녹색의 강한 대비, 권속을 빽빽하게 채운 구성은 스승과 다른 개성으로, 이후 불화 화풍을 이끌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큽니다.
발원문과 후령통 등을 갖춘 복장주머니도 함께 지니고 있어, 그려지던 순간의 정성까지 오늘에 전해줍니다.

조선이 사랑한 한 여인의 자태, 옷고름 매만지는 손끝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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