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언호 초상
작가 미상
- 제작 시기
- 1787년
- 분류
- 회화
- 문화권
- Korean
- 지역
- 동아시아
- 라이선스
- 국가유산청 (공공누리)
조선후기의 학자 유언호(兪彦鎬, 1730~1796)의 58세 때의 초상화이다. 유언호는 본관이 기계(杞溪), 자는 사경(士京), 호는 칙지헌(則止軒)으로 정조 연간의 대표적인 문신이다. 세손 시절부터 정조를 잘 보좌하여 총애를 받았으며, 정조가 왕위에 오른 이후 규장각 창설에 참여하여 규장각 직제학을 역임했고 좌의정에까지 올랐다. <유언호초상>은 그림 왼편에 “崇禎三丁未 畵官 李命基 寫”란 기록이 있어 1787년에 이명기(李命基)가 그렸음을 알 수 있다. 이명기는 정조의 어진(御眞) 제작에도 참여했던 당대 최고의 화가 중 한 사람이었다. 또, 그림의 윗부분에는 정조의 어평(御評)이 기록되어 있다. <유언호초상>은 오사모에 흉배가 딸린 단령포 차림의 관복입상 그림으로, 유복이나 평상복 차림의 입상은 없지 않으나 관복정장의 입상 초상화로는 첫 사례가 아닌가 생각된다. 입상이면서 왼팔 소매 끝을 쥔 오른손이 살짝 보이도록 그린 것은 이명기 작<강세황 71세상>과 비슷하다. 이명기의 다른 초상화들과 마찬가지로 안면 표현의 입체감이 선명하고 옷주름의 음영이 뚜렷하다. 소맷자락 아래로 짙은 농묵표현과 관복의 밑으로 화문석에 떨어진 그림자의 묘사가 두드러진다. 또 “容體長闊 視元身減一半”, 곧 “얼굴과 몸의 길이와 폭은 원래 신장과 비교할 때 절반으로 줄인 것이다”란 글을 기술하고 있어, 유언호의 실제 키와 그림의 키 배율을 계산하여 그린 작품으로 주목된다. <유언호초상>은 유언호의 후손인 기계유씨(杞溪兪氏) 문중에서 보관해 오다가 1997년 12월 11일 규장각에 기증한 것이다.
정조를 가까이서 보좌하며 규장각 직제학과 좌의정까지 지낸 문신 유언호의 쉰여덟 살 모습을 담은 초상화예요. 그림 왼편의 기록 덕분에 1787년 당대 최고의 화가 이명기가 그렸음을 알 수 있고, 위쪽에는 정조가 직접 남긴 평도 함께 붙어 있답니다.
오사모와 흉배 딸린 단령포 차림으로 선 채 그려진 이 그림은 관복을 정식으로 갖춘 입상 초상화로는 첫 사례로 꼽힐 만큼 특별해요. 입체감 있는 얼굴과 뚜렷한 옷주름의 음영, 소맷자락 아래 짙은 먹빛과 화문석에 드리운 그림자까지 이명기 특유의 섬세한 필치가 살아있죠.
흥미롭게도 그림 속 키는 실제 유언호의 키를 절반으로 줄여 계산해 그렸다고 전해와요.

조선이 사랑한 한 여인의 자태, 옷고름 매만지는 손끝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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