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잉군 초상
작가 미상
- 제작 시기
- 18세기초
- 분류
- 회화
- 문화권
- Korean
- 지역
- 동아시아
- 라이선스
- 국가유산청 (공공누리)
<연잉군 초상>은 화면의 좌측 상단에 “初封延仍君古號養性軒”이라 적혀있어 이 본이 영조가 임금이 되기 이전에 제작된 延礽君 시절 圖寫本임을 알 수 있다. 紗帽, 白澤 胸背를 부착한 綠袍團領, 犀帶, 검은색 녹피화 등으로 구성되어 있는 정장관복차림에 공수자세로 앉아 있는 좌안8분면의 전신교의좌상이다. 이 상은 영조 21세(1714년) 때 진재해(?-1735 이전)가 그린 것으로 영조 21년(1745)에 慶熙宮 泰寧殿에 봉안되었다가 정조가 즉위하자 잠시 景賢堂에 두었다가 정조 2년(1778년) 3월에 선원전으로 이봉되었다. 이 본은 가장자리가 불에 타서 1/3이 결손되었으나 얼굴, 흉배, 관대, 족좌 부분이 완전한 상태로 남아 있어 당시의 초상화의 기법을 연구하는 데 귀중한 자료이다. 현전하는 조선시대 어진은 전주 慶基殿의 태조어진, 고궁박물관 소장의 철종어진과 익종어진 등 극소수만이 남아 있는 실정이라 이 상은 영조가 연잉군 시절의 초상이라 할지라도 어진 연구에 참고 자료가 된다. 특히 1713년(숙종 39년) 肅宗御眞圖寫에 主管화사였으며, 이후 조영석의 형 <趙榮福像> 등 사대부들의 초상화 제작에도 참여한 진재해의 초상화 연구에도 귀중한 자료가 된다. 또한 이 상은 보물로 지정된 <강현 초상>과 함께 18세기 초기 정장관복형식의 초상화의 형식을 대표하는 기준작으로 평가된다. ㅇ 규격(세로x가로) : 183×87㎝
이 초상 속 인물은 아직 임금이 아니었어요. 그림 왼쪽 위에 적힌 글씨를 보면, 훗날 영조가 되는 연잉군 시절에 그려진 것임을 알 수 있답니다.
사모를 쓰고 녹포단령을 갖춰 입은 채 의자에 앉아 두 손을 모은 이 전신상은, 스물한 살이던 1714년 화가 진재해가 그린 것으로 전해져요. 이후 경희궁 태녕전에 모셔졌다가 정조 때 선원전으로 옮겨졌지요.
안타깝게도 가장자리가 불에 타 삼분의 일이 사라졌지만, 얼굴과 흉배, 관대 부분은 온전히 남아 당시 초상화 기법을 살필 수 있는 귀한 자료가 되었어요. 조선시대 어진이 거의 남아 있지 않은 지금, 이 그림은 더욱 소중하답니다.

조선이 사랑한 한 여인의 자태, 옷고름 매만지는 손끝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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