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est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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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시방 초상

작가 미상

제작 시기
1623년경
분류
회화
문화권
Korean
지역
동아시아
라이선스
국가유산청 (공공누리)
작품 소개

이시방(李時昉, 1594 ~ 1660)은 인조반정의 주역들인 연평부원군(延平府院君) 이귀(李貴, 1557 ~ 1633)의 차자(次子)이자 연양부원군(延陽府院君) 이시백(李時白, (1581 ~ 1660)의 동생이다. 이시방은 아버지와 형을 따라 1623년의 30세 때 인조반정에 참여하여 정사공신(靖社功臣) 2등으로 연성군(延城君)에 봉해지고, 이후 여러 차례 판서를 지낸 뒤 현종 즉위년(1659) 가을에 판의금부사(判義禁府事)를 지냈다. 현재 대전의 후손가에 전하는 이시방의 초상은 모두 6점인데, 본래는 이시방의 후손들이 세거(世居)하던 홍성(洪城)의 사당(祠堂)에서 주로 봉안해오던 것들이라고 한다. 먼저 1623년의 인조반정에 참여하여 정사공신에 녹훈되던 30세 때의 젊은 모습을 그린 것이 3점인데, 이 중에서 관복본(官服本) 전신상(全身像) 1점은 17세기 초반의 전형적인 공신도상(功臣圖像)의 형식과 화법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에 이것이 바로 이시방의 정사공신상(靖社功臣像) 원작으로 생각된다. 그리고 이와 도상(圖像)이 같은 반신소상(半身小像) 1점은 훗날 연평부원군 이귀의 사우(祠宇)가 있는 공주(公州) 목동면(木洞面)의 성봉서사(盛峰書社(성봉서원(盛峰書院))에 이시방 상(像)을 모시기 위해서 이 공신상(功臣像)의 일부를 다소 거칠고 조악하게 모사(摹寫)한 것이라고 생각된다. 또 1점의 유지(油紙) 초본(草本)은 이 흉상(胸像)을 그릴 때 전신상에서 떠냈던 초본이 아닌가 생각된다. 또 다른 한 종류의 초상 3점은 얼굴 모습이 거의 동일한 노년상(老年像)인데, 2점은 종이에 그린 흉상 초본이고, 나머지 1본은 이 초본을 토대로 하여 비단에 그린 정본(正本)의 반신상(半身像)이다. 이 중 17세기 공신 도상의 양식을 잘 보여주고 있는 <관복본 전신상>에 대해서만 보물로 지정한다. ㅇ 규격(세로x가로) : 169.0x93cm(화면), 224.0x106.3cm(전체)

도슨트 이야기

인조반정의 주역 이귀의 아들이자 이시백의 동생인 이시방은, 서른 살이던 1623년 반정에 참여해 정사공신 2등에 책록되었습니다. 이후 여러 판서를 지내고 1659년에는 판의금부사에 올랐지요.

후손가에는 이시방의 초상 여섯 점이 전하는데, 본래 홍성의 사당에 모셔져 있던 것들이라고 해요. 그중 서른 살 젊은 시절을 그린 관복본 전신상은 17세기 초반 공신도상의 전형적인 형식을 보여주어, 정사공신 책록 때 그려진 원작으로 여겨집니다.

같은 도상을 옮긴 반신소상과 초본, 얼굴이 닮은 노년의 초상 세 점도 함께 전해, 한 인물의 젊은 날과 노년을 함께 살필 수 있는 드문 사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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