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익 초상
작가 미상
- 제작 시기
- 17세기초
- 분류
- 회화
- 문화권
- Korean
- 지역
- 동아시아
- 라이선스
- 국가유산청 (공공누리)
<이원익 초상>은 오리 이원익(1547~1634)이 1604년 호성공신(扈聖功臣) 2등에 녹훈(錄勳)된 것을 기념해 제작된 것으로 같은 해 조성된 청난공신(淸難功臣)과 선무공신(宣武功臣)의 도상에 비해 사모(紗帽)의 모양이 다소 변한 것으로 보아 책록된 시기보다 몇 년 뒤에 그려진 것으로 추정된다. 초상의 주인공인 오리 이원익의 자(字)는 공려(公勵), 호(號)는 오리, 본관은 전주이며 태종의 아들 익녕군(益寧君) 치의 현손(玄孫)이며 이억재의 아들로 태어났다. 1569년(선조 2년)별시 문과에 급제하여 대사헌, 호조판서, 이조판서 등을 지냈으며 조선시대 대표적인 청백리로 유명하다. 초상의 형태는 축으로 장정되어 있으며 의자에 앉아 있는 모습의 전신상으로 그 모습은 오사모(烏紗帽)에 흑단령(黑團領)을 입고 공수(拱手) 자세를 취하고 있는데 사모의 양쪽에는 운문(雲紋)이 들어가 있다. 얼굴에는 음영 효과가 거의 들어가 있지 않고 이목구비의 형용은 선묘 위주로 되어 있으며 족좌대 위에 흑피혜(黑皮鞋)와 채전(彩氈)이 깔려 있어 공신상의 전형을 보여주고 있다.
이 초상의 주인공 이원익은 조선을 대표하는 청백리로 이름난 문신이에요. 1569년 문과에 급제해 대사헌과 호조판서, 이조판서를 두루 지냈고, 1604년 호성공신 2등에 녹훈된 일을 기념해 그려졌답니다.
의자에 앉은 전신상으로, 검은 사모에 검은 단령을 갖춰 입고 두 손을 공손히 모은 모습이 눈길을 끌어요. 사모 양옆엔 구름무늬가 곱게 들어가 있고, 얼굴은 그림자 없이 선묘 위주로 단정하게 표현되었습니다.
같은 해 그려진 다른 공신 초상과 사모 모양이 조금 달라, 녹훈 후 몇 년 지나 그려진 것으로 짐작돼요. 검은 신과 채색 깔개까지 공신 초상화의 전형을 보여줍니다.

조선이 사랑한 한 여인의 자태, 옷고름 매만지는 손끝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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