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est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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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문수 초상(2006)

작가 미상

제작 시기
18세기 중반
분류
회화
문화권
Korean
지역
동아시아
라이선스
국가유산청 (공공누리)
작품 소개

흔히 조선시대 御使의 대명사로 일컬어지는 靈城君 朴文秀(1691-1756)의 초상화이다. 박문수는 38세인 1728년의 奮武功臣 錄勳 때 奮武功臣像을 하사받았으며, 이때 功臣像으로 그려진 全身像과 半身像이 天安의 후손가에 전해져 1994년 2점 모두 보물로 지정되었다. 이 박문수 반신상은 천안의 후손이 소장하고 있는 1728년의 鶴頂金帶를 착용하고 얼굴도 젊은 奮武功臣像과 달리, 1品官이 착용하는 犀帶를 착용하고 얼굴도 노년의 모습이다. 따라서 이 초상화는 1728년의 奮武功臣像보다 후대에 다른 맥락에서 새로 그린 초상화라고 생각된다. 그런 점에서 특히 주목되는 것이 같은 奮武功臣이었던 趙顯命(1690-1752)이 1751년에 생존한 奮武功臣 14명의 半身像을 그려 勳府畵像帖을 만든 뒤 紀功閣에 갈무리했는데, 이때 豊原君 趙顯命 자신과 靈城君 朴文秀, 彦城君 金重萬, 仁平君 李普赫은 초상화를 새로 그리고, 나머지 10명은 집에 소장하고 있던 舊本을 移摹했다고 한 『歸鹿集』 卷18 「勳府畵像帖記」의 기록이다. 왜냐하면 1751년에는 박문수가 61세의 1品官으로서 이 半身像의 圖像과 정확히 일치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초상화는 조선시대 肖像畵史와 조선시대 功臣圖像史에서 매우 각별하고 중요한 의미가 있다. ㅇ 규격(세로x가로) : 121.4 x 49.7 cm(전체), 40.2 x 28.2cm(그림), 41.2 x 28.2cm(발문)

도슨트 이야기

영성군 박문수는 서른여덟이던 1728년 분무공신에 오르며 초상을 하사받았고, 그 전신상과 반신상은 천안의 후손가에 전해져 보물로 지정되었어요. 이 그림은 그 젊은 시절 초상과는 다른, 노년의 박문수를 그린 또 하나의 반신상입니다.

젊은 시절 그림 속 학정금대 대신 1품 관원이 두르는 서대를 갖추고 얼굴도 나이 든 모습인 점으로 미루어, 훗날 새로 그려진 것으로 짐작돼요. 함께 공신에 오른 조현명이 1751년 생존한 분무공신 열네 명의 반신상을 화첩으로 엮으면서 자신과 박문수 등 네 명의 초상만은 새로 그렸다는 기록이 있는데, 이때 박문수는 예순한 살의 1품관이었습니다.

조선시대 초상화와 공신 도상의 역사를 잇는 각별한 의미를 지닌 작품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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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이 사랑한 한 여인의 자태, 옷고름 매만지는 손끝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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